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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21. 2020

만둣국


중학교 2학년 때였어.


엄마가 싸 준 반찬을 들고

혼자 부산에서 고성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던 날,



마침 할아버지는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어.



풍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옆에서 보살피는 건

온전히 할아버지의 몫이었지.



- 저 왔어요

- 어, 민이 왔나


-예

-혼자 왔나


-예



시골집 작은 부엌,

할아버지는 만둣국을 끓이고 있었어

끓인 물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고향 만두 너댓개만 들어간

쓸쓸한 만둣국


- 밥 뭇나

- 아뇨


- 같이 묵자



엄마가 싸준 반찬을 그릇에 담아

밥상 차리는 할아버지를 도왔어.

그리고 먹었어.

할아버지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어.

지난 생을 속죄하며 살아가는,

무기징역수 같았달까.

할머니의 마비된 몸처럼

할아버지의 마음도 그런 것 같았어.



어쩐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는데

맹물같은 만둣국이 맛없어서라기보다

너무 일찍, 인생이 흘러가는 모양을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산다는 건, 늙는다는 건 외로운 일이구나.


그래서일까,


학교 다닐 때 나는 언제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집에 가고 혼자 앉아있었는데

하나도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았어.



진짜 외로움이라는 게

뭔지 알아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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