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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10. 2021

미친 어른들의 소꿉장난

싸우는 와중에도 아기는 생기고







비슷한 주수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임신+**주차+일상'이라는 키워드를 심심할 때마다 검색해 본다. 재밌다. 역시 나는 짜임새 있게 쓰인 글보다 맥락 없이 쓰인  일상 포스팅에 마음이 간다.




일상 포스팅에는 글을 써서 뭘 좀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도가 없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하루 일과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어린이 같은 면모가 좋다. 자기 일상에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들. 광고글이라도 가끔은 본다. 모든 밥벌이의 흔적을 사랑한다. 대가 없이 정보를 주는 사람들은 더 사랑한다. 자신이 겪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누군가는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질 땐 더 그렇다.


세상 곳곳 어딘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아, 임산부들은 다 힘들구나. 허리도 아프고 골반도 아프고 소화도 잘 안 되고 응가도 시원하게 안 나오는구나.



그래도 시간은 가고 아이는 태어나고 육아는 더 힘들지만 아기들은 정말 눈물 나게 아름답구나.





*


왜인지 모르겠지만 배가 부른 내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샤워할 때 일부러 거울을 보지 않는다. 얼마나 배가 나왔는지 궁금해서 흘깃 볼 때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적응이 안 된다.  그래도 요즘엔 내 몸의 이미지를 똑바로 응시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자주 봐야, 몸도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뱃속에 생명이 있다는 느낌, 매일 정체모를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신묘하다. 흔히들 얘기하는 것처럼 귀여울 때도 있다. 태동의 위치에 따라 아기의 손과 발의 모양을 상상해볼 때 그렇다. 그런데  (좀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징그럽다는 느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들 한다. (임신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카더라'를 듣게 되는지) 아무튼 마냥 '어머 귀엽다' '건강하게 잘 놀고 있네'라는 생각만 들지는 않는다.



나는 아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혈육이지만 아직은 낯선 존재다. 침입...이라는 말을 쓰면 너무 과격하고 아기에게도 무례한 표현이 될 것이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몸 내부의  움직임을 거부감 없이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더 미스터리하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게 어떨 땐 좀 섬뜩하다. 내가 좀 유별난 인간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사회적으로 학습된 효과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지 의심하는 습관이 있다. 한마디로 좀 피곤하다. 그런데 나는 이 방식이 좋다. 주입된 모성애와 나의 진짜 감정을 혼동하지 않고 싶다.





*

지난 이틀을 제대로 못 잤더니 신경이 과민해졌다.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려고 나갔는데 남편이 지갑을 잃어버린 건지, 집에 두고 온 건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보통 같으면 '어딘가 있겠지' 하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어제는 버럭 짜증이 났다. 내 지갑이었고, 다시 발급받기 어려운 중요한 카드들이 있었다.


"집에 다녀올게"

"음식이 곧 나온다고"


"중요한 거 들어 있다며"

"빨리 먹고 가서 찾는 게 낫지, 이제 와서..."


보통 내 직설을 받아넘기는 그가 오늘은 물러서지 않는다.

옆에 있던 미혼의 지인이 당황한다.

'아, 부부 싸움은 이렇게 번지는 구나' 하는 표정이다.

이상한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무마한다.



우리가 서로 말다툼한 게 두 달 전쯤이었으니까.....

안 싸운 지 한참 되기는 됐다.

오래 같이 산 사람들은 다투는 와중에도 싸움의 주기에 대해 생각한다.


나보다 정신을 먼저 차린 와이가 (뱃속의 애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먼저 사과를 했다.


여전히 굳어있는 내  표정을 본 지인의 이상한 농담은 계속됐다.

감정 노동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해져서 얼른 기분을 풀었다.

오만상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깔깔대고 웃는 나를 보면서

결혼은 피곤한 일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그날 밤 남편과 나는 언제나처럼 꼭 껴안고

 "좋아해, 좋아해. 세상에서 제일" 그러다가 깜빡 잠에 들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기도 그런 식으로 생겼을 것이다.



결혼은 미친 어른들의 소꿉놀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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