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인은 과거 육식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고
비채식인은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말 진심으로 궁금증을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릴 때 봤던 주말연속극에서 결혼한 여주인공이 임신 사실을 알아차리는 시기는 대개 3개월 차였다. '욱'하고 헛구역질을 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임신 3개월입니다' 하는 대사로 축하하는 장면은 가족 드라마에서 빠지면 섭섭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현실에서는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에 알게 되는 걸까.
애초에 계획한 임신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신기했다.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보기 전, 전에 없이 피곤해서 낮잠을 자는데 무언가 따듯한 것이 몸을 훅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말을 하면 정말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이상한 얘길 더 해보고 싶다. 그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나 찌뿌둥해서 커피를 한 잔 사 가지고 집에 오는데 맞은편에 나이 든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여성이 갑자기 내 귀에 대고 '당신은 임신을 했습니다' 라고 얘기할 것만 같았다.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 몇 주 전, 친한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그걸 질투해서 상상 임신을 한 게 하닌가, 내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의 생리주기를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었다. 생리하는 몸을 부러워한다나, 어쩐다나. 별 걸 다 부러워한다, 우스갯소리로 넘기면서도 실제로 친구따라 생리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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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약국 문 닫기 30분 전에 급하게 달려가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아침에 해야 정확하다고 하는데 잔뜩 긴장한 와이의 얼굴을 보니 지금 당장 결과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이걸 쓰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애 없이 행복하게 살겠다고, 큰소리 치던 나였는데. 30초도 되지 않아 선명한 두 줄이 떴다.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혹시 임신 테스트기가 불량인 건 아닐까.
확실한 결과를 위해 병원을 방문해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진행했다. 피검사를 하면 임신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댔다. 작은 유리병으로 여섯 통의 피를 뽑았다. 의사가 궁금한 게 없냐고 물었다. 채식을 하고 있는데 고기를 먹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었다. 의사는 괜찮다고 했다. 비타민 B12를 따로 챙겨먹으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 피검사 결과가 바로 나왔다. 임신 3주차였고 모든 수치는 정상이었다. 한국인에게 부족하다던 비타민 D 수치도 정상 범위 안에 있었고, 피로할 때마다 혼자 의심해보곤 했던 갑상선 수치도 좋았다. 철분은 오히려 살짝 과다였고, 육고기의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하지 않으면 부족할수 있다던 비타민 B12도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채식을 한 지 2년이 되었고 몸과 마음의 변화에 만족하고 있던 터라, 그 결과가 내심 반가웠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영양소가 결핍되지 않는다는 걸, 책이나 신문기사가 아닌 내 몸으로 직접 증명한 것 같았다.
채식을 하고 먹거리에 대한 뇌의 회로가 바뀌었다는 기분었다. 고기 맛을 알기 때문에 '먹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들지만 고기를 먹는 상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기를 씹으면 동물의 비명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는 상상하기도 전에 끔찍하게 들려왔다. 기르던 반려견의 얼굴이 떠오르듯, 돼지와 소와 닭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 되기 전의 생고기가 나올 때마다 채널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입덧이었다.
속이 비어있으면 어김없이 울렁거림이 찾아왔다. 어느날은 '차 멀미', 어느날은 '배 멀미'의 강도였다. 뭐라도 먹으면 괜찮았는데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모든 채소에서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감자나 오이 정도를 간신히 먹을 수 있었다. 간이 슴슴한 시금치나 도라지 나물을 먹으면 헛구역질을 하던 일곱 살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자꾸 고기 생각이 났다. 콩알보다 작은 애는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남들은 임신을 하면 고기는 냄새도 맡기 싫어진다는데, 임신 6주차의 나는 고기를 먹어야 살 것 같았다. 며칠을 버티다가 결국 한인마트에서 삼겹살을 사서 구웠다. 뭘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여서, 고기 서 너점 정도를 네 번에 나눠 먹었다. 고기를 먹으니 먹기 싫던 흰 쌀밥도 들어갔다. 꾸역꾸역 먹고 나면 그나마 숙취같은 멀미가 잠잠해져서 독서나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동물의 비명소리고 뭐고,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주차에 들어서자 다시 식성은 바뀌었다. (원래 이런 건가요...) 고기 냄새는 다시 역해졌고, 시원한 면 종류나 빵, 끓인 오트밀같은 걸로 연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6주차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채식주의자란 무엇인가' 하는 도돌이표 같은 질문에 다시 봉착하게 됐다. 아무리 강한 신념도 생존 앞에서는 무너지기 쉬웠다. 고통받는 동물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내 고통이 우선이었다. 거기에 죄책감같은 윤리의식을 느꼈다면 과한 반응일 것이다. 그저 그동안 아름답게 포장된 인간성의 민낯을 마주한듯 우스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채식에 대한 가치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데, 내 몸 하나 조금 힘들어지면 언제든 다시 고기를 먹게 되는데, 내가 과연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채식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비건 지향인'과 '가끔 고기를 먹는 사람'은 무엇이 다르지. 혹시 나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기분에만 취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질문에 답하는 데 영상 속 안백린 셰프의 발언이 도움이 됐다. 우리는 채식을 하는 이유보다 얼마나 완벽한 채식을 하고 있는지, 채식/ 비채식이 각각 옳고 그른지 따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더 옳은지 증명하는 게임이 어쩌면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덜 싸우면서 순하게 갈 수 있는 방향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덜 싸우고 싶다. 변명이나 타협은 하지 않되 갈등은 심화하지 않는 쪽으로, 나름대로의 채식을 이어 나가는 인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