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엄마가 될 수 있다면
평온한 하루들이 지나간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날이 전생처럼 까마득하다.
현생의 아기는 오늘도 뱃속에서 쾌활하게 존재감을 알린다. 남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걸로 태담은 대신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시간이 곧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될 거라고 믿으면서.
임신 5주 차부터 지금까지 저녁밥을 차린 날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처음에는 그가 내게 제공하는 안락함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는데 (몸이 점점 불편해지니까) 7개월 차쯤 되니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남편이 '엄마'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좋은 거 편한 건, 다 내가 누리게 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어려운 일 떠안고 내 앞에서 힘든 내색 안 하는 사람.
'너 때문에 나는 웃어' '너만 있으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
여태껏 나는 한 사람의 기질이나 자질이란, 부모로부터 그대로 대물림받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내 부모의 어떤 면모로부터 왔는지 종종 헤아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부모로부터 자기가 물려받고 싶은 삶의 유산을 취사선택할 줄 알았다. 결코 물려받지 않고 싶은 것은 받지 않는 방법도 알았다.
그는 어릴 때 외로웠다고 했다. 부모나 친구에게서 애정을 느껴 본 기억은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었다고. 애정을 갈구할 만큼 외롭지는 않았고, 애정을 나눌 만큼 괜찮은 인간도 못 만났다고 했다. 스무 해 넘게 잠재된 애정을 수집해두었다가 다 나한테 몰빵 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의 속뜻보다는 창의성에 감동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뻔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남편은 분명, 좋은 아빠인 동시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라는 이름을 꼭 여성이 취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 '엄마'라는 이름을 성 역할로 한정 짓지 않을 때,
여성이 아빠가 되고 남성이 엄마가 될 수 있을 때,
아이를 더 잘 길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