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 궁상떨지 말고 맛있는 거 먹자.
1.
미련하지만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다 쏟은 공부였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시험장에 들어갔던 그날 일요일 오전.
그 시절 아버지는 경기도 화성에서 (몸이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 계셨고, 시험이 끝나면 시험장소 앞에서 우린 만나기로 했다. 당연히 시험이 끝나고 수고 많았다는 의미의 점심식사라고 생각했다.
시험의 난이도는 내가 온갖 열정을 쏟은 거에 비해서 쉬웠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고작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그렇게 많이, 열심히 공부했나 싶을 만큼. 내 시간이 허무할 정도였다. 허무했지만 진짜 이젠 끝이다! 다시는 안 할 거다!라는 마음으로 시험지와 답안지를 제출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날이 맑았다. 헛헛한 건지 허무한 건지 아니면 시원한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낡은 차가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고 보니 아버지의 낯이 어두웠다. 아파 보였다. 당신의 얼굴은 꽤 핼쑥했고 나는 조금 놀랐다.
"점심 먹으러 갈까?"
"아빠 이 근처에서 먹어요."
그날 나에게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 라는 소리를 하셨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아파 보이는 당신의 얼굴을 본 후로 눈치보기 바빴다.
어디가 많이 아픈 건가.
무슨 일이 있던 건가.
크기가 큰 냉면집에 갔다. 냉면을 한 그릇씩 먹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험도 끝났는데 홀가분하기는커녕 체할 것 같았다. 그리고 계산을 할 때쯤, 아버지는, 머뭇, 거리셨다.
"아빠 내가 계산할게요."
"그럴래...?"
2.
냉면집에서 나와 아버지와 나는 바로 헤어졌다. 다시 일을 가야 하신다면서. 버티고 버티던 내 마음은 그때 무너지고 말았다. 고작 냉면 두 그릇 14000원에.
나의 아버지는 저렇게 몸이 아프면서까지 돈을 버시는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던 건가.
큰 딸내미 공부를 위해 인터넷 강의며, 시험 접수비며, 생활비며 어떻게든 해주시려고 했으면서 당장 냉면 두 그릇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던가.
왜 이리도 당신을 혹사시키며 사시는 건지.
그렇다면 나는, 당신의 바윗덩이 같은 짐은 아닌 건지.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버지의 잿빛 같은 얼굴을 보니 내가 지금 잘한 게 맞는 건가 싶어서.
초라한 아버지와 나의 모습에, 우리의 초라함이 꼭 냉면 두 그릇 값 같아서.
3.
속수무책으로 마음은 무너졌는데, 이를 드러내고 싶진 않아서 애쓰던 그날이었다.
시험이 다 끝나고 나니 친한 언니들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고생했다고. 수고 많았다고. 잘 봤을 거라고.
그때 난 그 말에 고맙다고 답변을 해줄 여력도 없어서, 퉁명스럽게 이렇게 답했다.
"나 오늘은 그냥 집에 갈게."
지독히도 의리파(?)인 언니들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내 표정을 읽었다는 듯이.
지지리 궁상떨지 말라는 듯이.
"야 가긴 어딜 가. 모여. 맛있는 거 해 먹자."
그날의 우울과 지지리 궁상은 다행히 그녀들 덕분에 모면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그날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해주신 적이 있다. 정확히는 그때 당신의 상황을. 시험날 딸내미를 응원하고 싶어서 일을 빼야 했는데 빼지 못했다고. 그래서 굳이 빼려고 그 전 날 밤을 새워서 일을 했다고. 나에게로 오는 길이 너무나 고되고 힘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