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네가 왜 울어

아무에게도 내비치지 못한 내 눈물을 그녀가 대신 흘려주었다.

by 아름나무


1.

간이식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본가 근처의 지방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셨고, 서울에서 진행하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그곳에서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방대학병원이라고 해도 간이식 수술이기 때문에 비용을 제일 많이 걱정했는데 가난한 우리 집에서 모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잘 해결이 되었다.



"아휴 이게 무슨 일이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너무 고맙다."

"비용은 우리가 힘을 합칠 테니 둘은 수술만 잘 받아라. 쾌차해야지."



아버지와 나의 간이식이 결정된 후 친척들이 모이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은 추석이었다. 아버지는 꽤 안 좋으신 상태로 간이식을 진행하고 싶다고 친척들에게 얘기를 꺼내셨고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 고모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고, 나는 이렇다 할 대답 없이 그저 묵묵히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나 정말 살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누나 형들, 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성하지 않은 몸으로. 나는 마치 심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가 수술을 받고 건강해질 수 있다면 괜찮다고 나는 나를 다독여야만 했다.

감사하게도 친척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수술 전 검사 비용부터 수술비용까지 도와주셨고, 아버지의 간에는 암세포가 생겨 간암으로 진단이 되어 중증환자 산정특례제도에 따라 의료비 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병원 내에 있는 사회복지팀의 도움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

추석이 지난 후, 늦가을부터 여러 가지 검사 일정이 순식간에 잡혔다. 조직검사부터 피검사, CT, MRI, 정신과 상담 등등. 수술하기 전부터 만만치 않았다. 검사를 진행하면서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얘기하나 싶었달까. 요즘 간이식 수술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내 주변엔 간이식 공여자도, 수여자도 없었다. 경황이 없었고, 누군가에게 기대기에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엔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왔는데 바로 내가 일하던 학원 때문이었다. 검사 일정이 잡히고 아버지의 입원으로 인해 일을 빼거나 늦게 출근해야 할 일이 빈번해졌고, 결국 나는 결근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말씀드려야 했다.



"실은... 저희 아버지랑 제가 간이식 수술을 해요."

"아... 네 선생님. 선생님이 아버님께 간을 드리는 거.. 죠?"

"네..."



실장님은 꽤 당황하셨고 나는 애써 담담한 척했다. 일로만 만나는 학원 실장님과 선생님들에게 알리고 나니 친구들에게 안 알리고 뭐하나 싶어 그때부터 친한 친구들에게 나의 간이식 소식을 알렸다. 사실 정확히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아마 다들 많이 놀랐겠지만 내 앞에선 놀란 티를 안 냈던 것 같기도 하고. 그중 J의 반응은 다른 친구들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J는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셨고, 그녀를 간병했던 경험이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 간이식을 하기로 했어."

"뭐? 간이식?"

"응. 내가 아빠한테 간 주기로 했어."


카페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나는 덤덤히 그동안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일을 얘기했고, 아무렇지 않게 간이식 소식을 흘려 말했다. 정적이 흘러 J를 바라보니 그녀는 곧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흘렸고 나는 당황했다.


"야 네가 왜 울어. 아 왜 울어. 울지 마아."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겪어봐서 알잖아. 수술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야 이 지지배야 왜 진작에 말 안 했어."


큰 병원에서 가족이 수술을 하는 게, 그 가족을 간병하는 게, 병원비가 얼마나 사악한지 너무나 잘 아는 그녀였다. 그녀는 한참을 울었고, 나는 그녀가 뚝 그치도록 자꾸만 말했다.


"그만 울어. 나 괜찮아."


속으로는 이렇게 얘기했다.


'맞아. 나 정말 힘들었어. 지금도 힘들어.'



지금까지도 J를 생각하면 카페에서 울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당황해서 얘기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녀가 울었던 건 나에게 의미가 컸다. 정말 힘들다고 말하면 모든 게 무너져 내릴 거 같아 괜찮은 척해야만 했던 나를 안아준 것 같아서. 누구 앞에서 울어버리면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을 거 같아 꾹꾹 참기만 하던 나를 대신해서 울어준 것 같아서. 그녀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 두 곡의 노래가 생각난다. 어반자카파의 위로, 그리고 강아솔의 그대에게.




위로, 2019 / photographed by Larg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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