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바람과 황량한 땅의 시간

욕심의 먼지 털어내기.

by 아름나무


1.

수술 날이 잡히고 일정에 맞게 검사는 진행이 되었다. 그중에 나의 간이 아버지에게 이식하기 적합한지 알아보는 조직검사가 있었다. 나는 그 검사를 위해서 2박 3일 동안 대학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간이식 수술을 앞두고 힘들었을 무렵, 2~3일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정말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3일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병원 입원은 전혀 다른 3일이었다.


체력이 무척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디가 많이 아픈 적은 없던 나여서 입원을 한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병원생활이, 입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전혀 몰랐다. 전혀. 아, 지금은. 그러니까 간이식 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 지금의 나는 대학병원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 되었다.


3일간의 시간 동안 필요한 검사란 검사는 다 했고, 검사를 위해서 금식을 해야만 했다. 30시간이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심지어 물도 마실 수 없는 건 생각보다 더 답답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검사 시간이 되어서 간호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 검사를 받고 그 외에는 핸드폰에 다운로드하여 온 TV 프로그램을 몰아서 보며 시간을 보냈다. 으으 금식과 몇 시간 동안 누워있기, 그리고 주삿바늘과 검사는 고문이었다.


입원한 지 3일째 되는 날 아침, 드디어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물 한 모금 마시며 느낀 그 상쾌함이란! 아무 맛이 안나는 병원식 미음은 영 성에 안차 죽집에서 호박죽을 사서 한술 뜨니 그제야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내내 마시고 싶던 커피 한 잔과 간식으로 나온 귤 하나를 까먹으며 조금은 새로운 아침을 보냈다. 별거 없는데 그 아침은 전혀 새로운 시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2.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나는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회사 고민, 애인 고민을 들을 때마다 부러웠다.


'너네들은 좋겠다. 너네가 선택해서 책임질 수 있는 고민이잖아. 나도 그런 고민 하고 싶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심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를 살리려면 내가 나서야만 했던. 왜 내가 나서야 하냐고, 의의를 제기할 수도 없던. 도망갈 수도 없는 그 상황 속에서 나는 간신히 버텼고,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던 와중, 나의 일상을 멈추고 병원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니 삶이 다시 새롭게 보였다. 특히 30시간 금식을 하며 너무나 간절했던 커피를 한 잔 마시던 그 순간에 말이다. 나의 삶이 지금은 너무나 황무지 같아서 나는 도저히 감사할 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벅찼는데. 커피 한잔 마시고 귤 하나 까먹으며 평소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새삼 감사했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공기를 듬뿍 마실 수 있는 것.

햇빛을 쬐며 산책을 잠시 할 수 있는 것.

걷는 것. 뛰는 것. 운동을 하며 개운한 땀을 흘릴 수 있는 것.

먹고 소화를 하고 잠을 푹 잘 수 있는 것.

앉는 것. 서 있는 것. 누워있는 것. 팔을 휘이~ 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


지금 이 글을 쓰며 덕분에 다시 그 병실에서의 아침이 눈 앞에 그려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매일 아침 커피를 두 잔씩 마시고,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먹고 있네. 날씨가 좋아서 조깅을 하며 땀도 흘리고, 자전거 타고 산책도 하고. 먹을 수 있고, 앉거나 서있을 수 있고, 누워있을 수 있고. 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고, 웃을 수 있고, 열심을 낼 수도 있고 쉴 수도 있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또 잊고 살았구나 싶다.



그때 그 병실에서 썼던 문장들을 다시 적어보며 마음속 욕심의 먼지들을 털어내 본다.




인생에서 중요시 여겼던 돈이나 여행 혹은 문화생활처럼 내가 즐기고 싶은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소중한 걸 소중히 여기려면 어쩌면 칼 같은 바람과 황량한 땅의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병실에서의 아침을 기억하며 살길.



Walking through the darkest valley, 2018 / Photographed by Largotre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