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아버지의 몸은 점점 더 안 좋으셨지만 마땅히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더 심해지지 않도록 푹 쉬고,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꾸준히 먹는 것밖엔. 간이 안 좋아서 생기는 증상은 다양했다. 간이라는 장기가 우리 몸에서 얼마나 중요하던지. 의전원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간의 여러 가지 기능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간의 해독작용. 쉽게 말해 우리 몸에 쌓이는 독성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꾸는 일. 간이 망가지니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아버지는 여기저기가 아프셨다.
그의 얼굴빛은 점점 어두워졌고, 어깨가 심하게 아프셔서 맨소래담을 어깨에 듬뿍 바르셨다. 계속해서 두통을 호소했고, 머리가 멍해지셨으며, 정신이 혼미할 때도 있으셨다. 그럴 때마다 응급실에 가셨고, 응급실에선 관장을 해서 독소를 제거했고, 그러면 다시 괜찮아지셨다. 이런 일이 반복돼서 나중엔 관장약을 박스채로 집에 들여놓고 집에서 직접 관장을 하게 되었다.
또 어떤 날은 다른 곳이 심해서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을 하셨고, 시술을 받기도 하셨다. 이래저래 아프다는 증상이 있다고 해서 검색을 해보면 하나같이 간경화의 증상으로 확인이 되었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너무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고 본가로 내려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겨우 일상을 이어갈 무렵,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였다.
"아빠가 병원을 다녀왔는데 방법은 딱 하나뿐이라네. 간이식밖에는 답이 없대. 엄마하고 네 동생 하고는 얘기를 했는데 안 하겠다고 하더라..."
그는 잠시 말을 머뭇거리다가 다시 이어나가셨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큰 딸이 아빠에게 간을 줄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내게 던져질 질문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입술을 쉽게 떼지 못했다. 정적은 꽤 길었고, 나는 그 질문에 어렵게 답을 했다.
"아빠 제가 생각을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그러렴."
정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한 대답이 아니었다. 네 혹은 아니오, 라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퇴근길 그 버스 안에서 창문 너머로 밤의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떡하지.
간이식이라니.
이 수술 아니면 아빠는 죽겠지.
내 간을 아빠에게...?
나는 20대 여자인데 수술하면 배에 큰 상처 생길 텐데.
괜찮을까.
어떡하지.
그렇게 버스 안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집에 도착할 무렵,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빠, 그래 그렇게 하자. 까짓 거 내가 간 주지 뭐. 간이식 하자."
나는 쿨한 척했고, 그는 여전히 착잡해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