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억나지 않을 5시간

2017년 12월 10일

by 아름나무


1.

시간은 또각또각 흘러가 수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하던 학원은 수술부터 회복까지 휴직을 한 상태였고, 본가로 내려가기 전 몇몇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수술을 앞두고 며칠 전, 아버지와 나는 미리 입원을 한 후 대기를 했다. 둘이 2인실을 같이 쓰며 시간을 보냈다. 텔레비전도 보고 아버지의 농담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당신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그때의 내 상태는...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면서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고.


12월 10일 오전 7시. 수술 날짜와 시간이 정확하게 잡혔고, 수술을 앞두고 담당 의료진들이 와서 수술 설명을 해주었다.


간이식. 말 그대로 공여자의 간을 수여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다. 보통 공여자 간의 70% 정도를 이식하여 수여자는 그 간으로 살게 되고, 재생 가능한 기관이기 때문에 공여자의 간은 새로 자라난다.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여자는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계속 복용하고, 사람마다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공여자인 나는 5시간, 수여자인 아버지는 7시간이 걸리는 수술이었다.



2.

수술을 앞두고 아버지와 나는 잠을 설쳤다. 오전 6시부터 수술 준비는 시작되었고, 2인실 병실에 우리 가족은 모여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꽤 덤덤했다. 얼른 지나가라. 제발 빨리 지나가라.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으로 우리 네 식구 사진을 찍고 나니 의료진이 들어와 곧 수술을 할 거라고 했다.


공여자인 내가 먼저 수술실로 들어갈 거라고 말하며 코에 호스를 낄 준비를 했다. 아, 그 호스 끼는 게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여담이지만 몇 달 전 귀국해서 코로나 검사를 했을 때 나는 이때 경험했던 호스 덕분(?)인지 코로나 검사가 별 것도 아니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덤덤히 호스를 끼는 동안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부모가 되어야 알 수 있는 마음이겠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러 번 봤던 장면 말이다. 이동침대에 누워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 장면. 그 장면이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되었다. 양갈래 머리를 하고 코에 호스를 낀 채로 수술실 앞에서 같이 걷던 엄마와 잠시 헤어졌다. 그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것도 내가 부모가 되어야 알 수 있겠지. 실은 알고 싶지 않다.


"곧 마취를 할 거예요. 수술시간은 5시간이고요. 편하게 눈 감으셨다가 뜨게 될 거예요. 어쩌고 저쩌고."


수술이 곧 시작되는 건가? 의료진의 말이 굉장히 빨랐다.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그 뒤는 들리지 않았다.




3.

"일어나세요. 정신이 드세요? 일어나 보세요."


내 정신을 깨우는 소리들이 들리고 훅! 하는 느낌과 함께 깨어났다. 5시간의 마취상태에서 깼고, 공여자인 나는 수술이 끝났던 것이다.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엄마를 찾았고, 엄마와 동생이 내 곁으로 왔다.


"엄마 나 죽다 살아났어."


정신이 들고 제일 먼저 이 말을 했고, 내 손을 잡은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동생은 그 중환자실에서 생명이 다한 환자들도 있었다고, 그래서 조금 힘들었다고 했다. 정신이 또렷하지 않았던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중환자실에서 계속 잠을 잤고 내 옆에는 라디오가 한 대 있었다. 그 라디오에서 음악이 몇 곡씩 흘러나왔는데 은연중에 내가 좋아하던 노래가 나왔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떤 곡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느낌이 기억이 난다.


'와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이상하게 그때 그 느낌이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나의 간은 아버지에게로 갔다.


2017년을 정리하며 썼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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