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겨울이 지나갔다.
수술 후 겨울 동안 쉬며 나의 몸은 거의 회복을 다했고, 아버지는 한 달간의 입원생활을 끝내고 본가로 들어오셨다. 조심해야 하는 그를 위해 우리는 방 한 칸을 아버지 방으로 만들고 웬만하면 그곳에서 지내게 하셨다. 음식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간을 맞춰서 먹어야 하는 약들이며,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맑게 핀 아버지의 얼굴과 조금씩 회복해가는 건강이 우리 가족을 안심하게 했고, 그건 참 다행이었다.
몸이 거의 회복을 다했다는 건 나의 간이 거의 다 자랐다는 것. 몇 달 후, 간 CT를 찍고 얼마큼 자랐는지 확인을 했는데 정말 30프로 남아있던 간이 98프로 재생된 것을 보고 놀랐다. 내가 새로운 간을 지니게 되다니. 기분이 좀 묘했다.
그러던 중, 기다리던 영국 워킹홀리데이 신청 접수가 떴고, 준비한 서류를 제출했다. 이식 수술과는 별개로 근 1년 동안 돈을 모으고 영어공부를 하며 영국 워홀을 기다렸던 나였다.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이다. 영국 워홀은 추첨형이었기 때문에 되고 안되고는 순전히 운이었고, 발표 날짜가 다가올수록 은근 긴장이 되었다. 제발 돼라. 당첨돼라. 정말 가고 싶다. 됐으면 좋겠다. 주문을 걸길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2월 말, 당첨자 발표 당일. 그날은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다. 약속시간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두근두근. 아 어떡하지. 됐을까. 안됐을까.
2018년 영국 청년교류제도(YMS) 참가 정부 후원보증서(CoS) 발급대상자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됐다.
'잠깐만... 나 진짜 됐네? 나 이제 비자 준비하고 가면 되는 거네? 나... 영국 가네?'
믿기지 않았다. 진짜 추첨식이라 내가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는데 감사히도 이번에 된 것이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얘들아, 나 영국 워홀 됐다! 나 이제 진짜 영국 갈 수 있게 됐어!"
"헐 대박. 언니 되다니. 와 이제 진짜 가겠네! 좋겠다."
"축하해! 될 줄 알았어. 언니 예전부터 영국 가고 싶어 하더니 결국 가네!"
"에? 내가 예전부터 그렇게 말했다고?"
"어. 언니 예전부터 영국 노래 불렀어. 이럴 줄 알았어."
친구 H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녀의 말로는,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20대 초반부터 영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 H는 어느 순간 유럽여행을 생각했을 때, 영국에 가고 싶어 하는 내가 생각날 정도였다고. 그 나라에 정말 가고 싶어 했지만 내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다닐 정도인 건 몰랐네. 이 사실에 꽤 놀라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더니 내가 그렇게 영국~ 유럽~ 노래를 불렀다고.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 부모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예상했던 것처럼 덤덤히 축하해주셨고 아버지는 달랐다. 조금 흠칫, 하셨다. 마치 놓기 싫은데 놓아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한 사람처럼.
어쨌든 막연히 준비했던 영국 워홀이 진짜 갈 때가 된 것이다. 이제 비자 신청을 하고, 출국 날짜를 정하고, 다니던 학원은 정리를 하고, 티켓팅을 하고. 그런 것들이 남았다. 몹시 원했던 것이 이뤄지고 나니 간이식 수술을 하며 느꼈던 모든 우울과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아 감사했다. 그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 감사했던 것도 있고.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나는 본격적으로 영국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나의 몸도 활기를 되찾았다. 아프고 피곤한 겨울이 결국 지나갔고 설레는 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