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나 좀 놔줘.
1.
3월. 비자 센터를 방문해 비자 신청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자가 나왔다. '6개월 안에 영국에 가세요. 그 후에는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이런 공고문과 함께. 영국에 가려고 시작한 단기 적금은 만기가 5월이었고, 곧이 었다. 학원도 4월까지만 일을 하기로 했다.
"어머 선생님. 영국에 가신다고요? 더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써놓고, 비행기표도 알아놓고 적금도 타고 학원 퇴직금도 받으니 그 돈으로 사야지, 하고 기대하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자꾸만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셨다.
"아휴 자꾸 배가 아프네."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 아픈가 봐. 몸 좀 더 조심해 아빠. 약 챙겨 먹고. 외래 때 교수님께 물어봐요."
며칠이 지나도 아버지는 자꾸 배가 아프셨다. 교수님도 회복 중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만 하셨고,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우리 가족도 이식 수술은 큰 수술이고, 아무래도 환자니 회복 중에 아플 수 있을 거라고 불안하지만 넘겨짚었다. 나는 본가를 떠나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전화로 그의 안부를 묻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정말 못 참을 정도로 아프셔서 응급실에 가셨고, 생각지도 못하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원인을 모른 채 열이 오르고 증상이 심각해져서 응급실에선 수면유도제를 처방했고 아버지는 그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긴 잠이 드셨다. 그렇게 갑자기, 아무런 인사도 없이 그는 일주일 넘게 누워 계셨다. 나는 너무... 그러니까 어이없을 만큼...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또 갑자기?' 그러나 이 당황스러움도 잠시, 아버지가 정말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에 무너지려는 하늘을 붙잡고 있는 심정이었다. 정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저희도 지금 최대한 원인을 찾고 있는데 확인이 되고 있지 않아요.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
의료진도 이 말 뿐이었다.
만약에 이제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무서웠다.
2.
10여 일이 지나는 동안 기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나날들을 보내다 어느 날 밤,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왔다.
"중환자실인데요. 아버님 장 내시경을 하다가 구멍이 하나 발견됐어요. 아무래도 이 부분이 원인인 거 같은데요. 당장 개복수술을 해야 할 거 같으니 병원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 집도의이신 내과 교수님께 수술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가셨다. 나와 동생과 어머니는 4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말을 기억한 채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 시침과 분침은 어찌나 느리게 움직이던지.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가나 싶은데 왜 분분초초마다 마음은 초조한 건지. 내 인생에 가장 긴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이 긴 기다림을 또 겪는 거구나, 내가 수술했을 때도 그녀는 이 마음이었겠구나.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조금 우셨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집도의 교수님이 나오셨다.
"아버님 수술은 잘 되셨고요. 수술 상황 설명드릴게요. 이 쪽으로 오시겠어요?"
일종의 이식 후 합병증이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고, 하늘의 도우심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하늘이 살리셨다. 기적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거짓말처럼 안심이 된 채 귀가를 했던 그 날 새벽, 나와 어머니는 정말 기적이라고, 정말 죽을 수도 있었겠다고, 다행이라고, 그랬다.
다음날, 아버지를 보러 중환자실에 갔더니 거짓말처럼 아버지는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셨다. '아 아버지가 살아났구나. 저 세상 문턱 갔다 다시 돌아왔구나.'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버님 솔직히 그때 아버님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기적이에요 정말."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3.
다시 입원. ㅡ 자로 새겨졌던 첫 번째 수술 흉터에 ㅣ자가 두 번째로 새겨져 아버지의 배 전체엔 ㅗ 자의 수술 흉터가 생겼다. 이식 환자가 합병증으로 수술을 다시 했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은 그전보다 더 힘든 일이었고, 그는 겨우, 겨우 회복하였다.
아버지의 재수술로 집안 친척들이 병원에 다시 오시며 한분, 두 분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영국에 간다고? 지금 네가 영국에 갈 때는 아닌 것 같다. 네가 장녀인데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니?"
나는 쉽사리 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나서 너무 감사한데... 그런데,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내가 내 돈 모아서 준비해서 나 하고 싶은 거 하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왜 내 삶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지. 나는 심청이가 아니에요. 내 인생은 그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몫이 아니에요.
"딸내미가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데 왜 그러셔요. 나 괜찮아요."
친척 어르신들에게 아버지는 겨우 목소리를 내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 출국 날짜 얼른 정하고, 준비해서 가. 아빠는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