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떠나 먼 곳으로 가

거기서 훨훨 날아.

by 아름나무


1.

아버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회복하셨다. 그 사이에 나는 학원 일을 정리했고 7년여간의 서울살이도 모두 정리해 본가로 완전히 내려왔다. 출국날짜를 정했기 때문이었다. 6월. 다행히 그가 회복되는 게 눈에 보여 나도 티켓팅을 할 수 있었다. 본가로 내려온 후엔 오후마다 종종 아버지의 병실에 들러 그의 옆에 머물러 있었다. 병실에 햇살이 따사롭게 들어오던 오후 어느 날, 드디어 비행기표를 샀다.


"아빠. 나 티켓팅 했어. 6월 13일로 정했어."

"그래. 잘했어."


그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냥 잘했다고만 했다. 티켓팅을 한 후 친구들에게 출국날짜를 정했다고 알렸다. 이젠 정말 가는구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시원하진 않았다. 회복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버지를 두고 한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으니까. 꼭 이기적인 것 같아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야 그냥 네 인생 살아."라고 말해줬으면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 말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 저 6월에 영국 가요. 2년 있다 올 거 같아요."

"응 그래 조심히 가라. 너는 부모 떠나 먼 곳으로 가야 훨훨 날 팔자야. 가서 훨훨 날아."

옆에 같이 있던 이모가 외할머니 말씀에 추임새를 넣었다.


"너 할머니 말씀 새겨들어. 할머니 그냥 하는 소리 아냐."


그 누구 한 명은 외할머니였다. 두렵고 생각 많고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던 그때에 나에게 당신의 말씀은 내가 꼭 듣고 싶던 위로이자 나를 안심시키는 손길이었다.




2.

다행히 출국을 앞두고 2주 전, 아버지는 퇴원을 하셨다. 아직 몸이 온전치 않지만 집에서 회복할 수 있을 만큼의 컨디션이 되셨고 나는 출국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몇몇의 친구들을 만나 안녕을 하고 카드와 선물을 받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한동안 그리울 음식들을 먹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떠나기 전날 밤, 가져갈 짐들을 모두 캐리어와 배낭에 넣었다.


"사막이 보고 싶어서 두바이에서 스톱오버를 하기로 했어. 사막에서 해지는 걸 볼 거야."


인천에서 떠나 두바이에서 24시간 머물다 런던에 도착하는 여정. 그 여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떠나는 당일, 배낭을 메고 캐리어 두 개를 양 손으로 끌 준비를 하며 강아지와 동생 그리고 아버지와 인사를 했다. 그는 몸이 성치 않아서 바깥으로 나올 수 없어 우리는 집안에서 안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잘 다녀와."


어머니와 나는 공항에서 헤어졌다. 마음이 여린 그녀는 애써 덤덤히 나를 한번 안아주고 먼저 가셨다. 그리고 나는 공항까지 배웅 나온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 내가 진짜 이제 가는구나. 드디어 가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던 늦은 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캄캄한 한국을 바라보며, 떠나는 건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일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마음 한켠에 두고 살 지도 모르겠다고도. 갑자기 노래 한 곡이 떠올라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그 곡을 들으며 나는 계속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최고은의 '순간에 바로 서서'였고, 그때와 닿았던 가사를 다시 적어본다.



Take a breath

hold your hand

I'm in opened empty pages

You said

'relax take a journey by yourself

이제야 떠나가네

멀어진 나의 기억들

스쳐가는 나의 풍경들

보고 싶어 지는 순간들






그렇게 나는 한국과 잠시 굿바이를 했다.


비행기 착륙 후 동생이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는데 아버지를 찍은 영상이었다. 영상 속 그는 공항까지 못 가서 미안하다면서, 잘 다녀오라면서, 보고 싶을 거라면서, 아기같이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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