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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다정을 위해

by 푸른새벽

조급하게 내달리진 않지만 느릿한 것은 성에 안 차고, 딱딱하게 굴진 않지만 마냥 무른 것은 또 싫다. 나 홀로 구역을 사수하고 싶은 마음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매번 아슬아슬 타협한다. 이렇듯 나는 늘 스스로 안온해지는 중간 지대 어딘가를 찾아 좌표를 찍는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다정하되 서로 불편하지 않은 거리와 온도를 감지하려 애쓴다.


언젠가 가수 양희은 님의 세바시 강연을 보다가 '사람과 사람의 적당한 거리'를 '선선한 바람이 통하는 관계'라고 비유한 걸 듣고 감탄했었다. 어쩜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게 긴밀하고 밀착된 거보다는 조금 바람이 통하는 관계,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는 사이, 그러면 좀더 오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수 양희은님 세바시 강연 中)


난 정이 넘쳐서 마구 퍼주거나 먼저 싹싹하게 다가가는 천성은 못 된다. 그래도 나와 닿거나 스치는 사람들에게는 그윽한 다정함을 실천하자고 다짐한다(물론 상대가 대놓고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라면 예외다). ‘그윽한’이라는 수식어로 선을 긋는 이유는 과도한 친절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오지랖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는 마지노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물없는 일방적 베풂이 때로는 관계에 금을 내기도 하니까.




적당한 온도의 다정을 베풀기 위해 꼭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냉정을 기본값으로 장착하기’다. 냉정을 깔고 가는 다정이라니, 뭐 그리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나 싶겠지만 여기서의 ‘냉정’은 차갑고 쌀쌀맞은 ‘冷情’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함의 ‘冷靜’이다. 기질적으로 즉흥의 영역에 취약한 나는 뭐든 밖으로 꺼내 놓기 전 머리와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야 안심이 된다. 다정에 앞선 냉정의 구간도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생각에 뜸들이고 언어와 감정을 필터링하는 단계인 셈이다. 내 딴에는 신중하자는 차원이지만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어 젖히는 사람들에게는 다분히 계산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일대다의 만남에서 난 대화를 주도하기보다 들어주는 입장을 자처하는데, 이걸 두고 누군가는 웃음 뒤에 감춰진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했다나. 건너서 들은 이야기지만 나름의 호의가 왜곡될 수도 있음에 적잖이 당황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친절은 여전히 신중하고 절제되어 있다. 사적 공간을 함부로 넘나드는 과잉 다정은 상대에게 마음의 빚을 떠넘기고, 목적이 불순한 가식적인 다정은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뿐이다. 마구 퍼붓는 뜨거운 다정함보다는 편안하게 오래 가는 따끈한 다정함이기를 바란다.


둘째, ‘이름 불러주기’다.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순간부터 다정함은 시작된다.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역할이 겹겹이 늘어나고, 내 이름은 직함이나 신분으로 대체되었다. 자기, 딸, 에미, 선생님, 교수님, 번역가님, 사모님, 누구 엄마, 어머님, 아줌마, 저기요 등. 어느덧 이름 석 자가 여러 대체 호칭에 파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왕이면 상대의 이름을 고이 불러주는 사람이 되자고 항상 되새긴다.


매 학기 개강 무렵이 되면 출석부 명단과 학교 시스템 내에 탑재된 수강생 사진을 비교하며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운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동안 한번이라도 더 불러주고 싶어서다.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한 학생이 보내준 카톡 메시지. “한 해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항상 따뜻하게 이름 불러 주시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길지 않은 인사말이었지만 무심한 듯한 내 나름의 다정함이 따뜻한 온도로 가 닿았음에 안도했다.




<워너 브롱크호스트 전시: 온 세상이 캔버스> 中

휘몰아치는 감동은 없을지 언정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잔정으로 채워가는 관계가 좋다.


김영정의 『마음을 치유하는 컬러 테라피』에는 ‘컬러 미러(Color Mirror)’라는 용어가 나온다. “컬러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컬러를 통해 나를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최애색 ‘초록색’은 “사람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평화주의자들의 컬러”란다.


문득 내가 추구하는 다정함도 빛깔을 입힌다면 초록색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초록은 냉철함의 상징인 파란색과 따뜻함의 대명사인 노란색의 절묘한 배합이다.


초록빛 다정함.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차고 넘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편안한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 나의 다정 철학이다. 오늘도 내 곁을 오가는 사람들을 안전 거리 내에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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