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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Sep 18. 2020

둘째 출산 한 달 전, 첫째 어린이집을 퇴소했다

다들 무모하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곳은 들어가기 정말 어렵다는 시립 어린이집. 1년 전부터 대기를 걸고 기다렸던 곳인데 마침 입소 연락이 왔다. 게다가 그 어린이집은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곳이라 거리 상으로도 최적이었다. 나는 당시 워킹맘이었다. 시댁에 첫째를 맡기고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아이를 봐야 하는 시어머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그때 당시 첫째가 딱 두 돌, 24개월이었다.




아이와 매일 어린이집 앞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안 들어가겠다고 우는 자와 어떻게든 보내려는 자의 보이지 않는 팽팽한 줄다리기 전쟁. 출근 시간에 맞춰 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매번 뛰어나오다시피 갔다. 하지만 내 마음은 종일 편치 않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선생님은 종종 등원 한 시간 후쯤 문자를 주셨다.

"어머니, 아이 지금 잘 놀고 있어요. 어머니 가시고 난 다음 울음 금방 그쳤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면 어린이집에 적응을 한다고 했다. 딱 한 명만 빼고, 바로 우리 아이 말이다. 어린이집에 다닌 지 4달 째까지 아이는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가지 않겠다고 울었다.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아이도 느꼈을까. 사실 나는 좀 더 가정 보육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이가 또래보다 말도 느려서 더욱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봐주시는 어머님은 아이가 심심할 것 같다며 어린이집에 보내길 원하셨다. 맡기는 입장에서 내 고집만은 할 수가 없었다. 현실적 타협을 했지만 나는 말도 아직 잘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마냥 마음 편치만은 않았다. 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읽고 등원 거부를 한사코 했던 것 같다.







그즈음, 나는 출산을 한 달 남겨두고 있어서 출산&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매일 밤 고민을 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올까. 하지만 신생아와 첫째를 혼자서 보는 건 감히 엄두가 안 났다.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 갔다.



나와 같은 상황을 경험한 엄마가 있다면 조언을 얻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보통 둘째가 생기면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보냈지 나처럼 반대로 하는 엄마들은 거의 없었다. 사실 내 마음은 이미 답정너였다. 그저 "괜찮아요. 해보니까 할 만하던걸요. 힘들지만 그럭저럭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뿐일지 모른다.




결국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육아휴직이 시작되는 날, 나는 어린이집에 퇴소 신청을 했다. 이 길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원하니까, 따라가고 싶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나를 뜯어말렸다. 심지어 친정 엄마까지. 엄마는 나에게 왜 그리 유난을 떠냐고 하셨다. 힘들어할 딸이 뻔히 예상되니 어떻게든 말리고 싶은 마음이셨을 거다. 함께 어린이집을 다녔던 엄마들도 진지하게 나의 앞 날을 걱정해주었다.

"여긴 그만두면 다시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곳인 거 알지? 잘 생각해 봐."

아무리 주변에서 말렸지만 이미 내 마음은 결정한 상태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힘들면 얼마나 힘들까. 뭐 죽기야 하겠어?"라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서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아이의 퇴소를 아쉬워했지만 한편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 주셨다. "이제 못 본다니 아쉽지만, 아이는 정말 좋겠어요. 어머니도 정말 큰 결심 하신 것 같아요. 힘드시겠지만 또 잘하실 거예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나는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아오른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부터 줄곧 아이는 죽을 때까지 원하든, 원치 않든 사회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와 살 부대끼며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유아기가 유일하다. 아이의 사회생활을 좀 더 뒤로 미뤄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과정이다. 그중에서 최고의 선택이 어디 있으랴. 내가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은 언제든 남기 마련이다. 그저 내가 한 선택을 최선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면 되지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나는 나의 선택, 내 진심을 믿기로 했다.




어린이집에서 짐꾸러미를 받아 나왔다. 아이와 손을 붙잡고 나오는 길에 민들레 씨가 보였다. 아이와 구부려 앉아서 함께 민들레 씨를 훌훌 불어 날렸다. 내 마음속의 걱정과 두려움도 함께 훌훌. 이렇게 남들과는 또 다른 우리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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