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콩 Sep 20. 2020

육아의 악순환 끊어내기

3단계의 악순환 - 참다 욱하고, 화내고, 자책하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모래 놀이터가 있어서 종종 아이들과 함께 가곤 한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손과 발의 피부로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고, 조그마한 콩벌레를 데리고 노는 게 아이들의 놀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몇몇 가족들이 오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큰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한 엄마가 아이에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앞뒤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아이에게 다른데 가자고 했는데 아이가 싫다고 한 것 같았다. 그 엄마는 "너만 재밌게 놀자고 왔냐고!" 라고 소리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도 많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분위기는 금세 싸해졌고 남편은 무안했는지 "소리 지르지 말라고.."를 연신 이야기 했다. 결국 그 엄마는 씩씩거리며 혼자서 걸어가고 그 뒤를 풀이 죽은 아이와 아빠가 뒤 따라갔다.


오랜만에 나와서 모래 놀이터를 만나 즐거웠을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랜만에 가족들과 바람쐬러 나온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럼 소리지르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은 편안했을까? 그 엄마는 얼마 못가 아이의 손을 꽉 잡고 갔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미안했을 것이다.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다 보면 감정 조절하기가 너무 어렵다.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는 그럭저럭 나 자신을 잘 포장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트러블 없이 지내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나 자신을 생각했다. 그러한 환상은 아이를 낳고 서서히 금이 가더니 깨져버리고 말았다. 작고도 약한 내 아이에게 나는 나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내 모습이었다. 사실 나 조차도 내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익명의 맘카페에는 엄마의 감정 조절이 힘들다는 글들이 하루에도 몇십 개씩 올라온다. 매일 밤 잠든 아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수 없이 되뇌지만, 아침이 되면 어젯밤의 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다시금 악순환이 반복된다. 참다가 욱하고, 소리 지르고, 자책하고. 이 3단계의 악순환은 다람쥐의 쳇바퀴처럼 끊임없이 굴러간다.



한번은 몸살이 나서 누워있는데 아이가 물감 놀이를 하고 싶다고 해서 허락했다. 아파서 함께 놀아주지 못하니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미안했다. 가만히 앉아서 붓으로 곱게 놀았으면 좋겠다만 내가 생각한대로 아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는 손과 발, 그리고 온몸에 (심지어 바닥까지) 물감을 묻혀가며 놀고 있었다. 잠깐 누워 있다가 아이의 꼴을 보니 순간적으로 욱하니 화가 난다. "누가 이렇게 다 묻히면서 놀래!!"

결국 즐겁게 시작했던 물감 놀이는 나의 화로 끝나 버렸다. 안 하느니만 못한 굴욕적인 흑역사다. 엄마들과 대화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러한 흑역사를 경험하는 듯싶다. 순간적으로 욱하고 난 후, 뒤돌아서면 후회가 어김없이 물 밀듯이 밀려온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화내지 않았을 텐데."

이려러고 시작한 게 아닌데, 분노를 참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하고야 만다"라고 말했다. 감정은 누른다고 하여 눌러지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잠잠해 보일 수는 있지만 억눌린 감정은 반드시 곱절이 되어 튀어 나온다. 결국 내 감정을 억누른 채 하는 행동은 시한폭탄 같은 배려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폭탄말이다. 폭탄이 터지면 이성도 잃는다. 상대가 한 번에 받는 충격과 상처는 몇 배가 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감정을 억누른 세대였다. 힘들어도 버틸 것, 싫어도 싫은 티 내지 말아야 할 것. 긍정적인 감정은 너도나도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그 자체로 거부감이 든다. 그러한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엄마라 해도 자기가 난 자식이 미울 때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불편해서 어쩔 줄 모른다. 감추려하고, 부인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노와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사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다. 억눌린 분노를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연습해야 할 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올바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부모이기 이전에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러기에 육아서에의 조언처럼 항상 일관되게 행동할 수도 없을뿐더러, 아이 앞에서 항상 조곤조곤 말할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육아의 악순환은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끊어내야 한다. 그저 나의 지극히 인간다움을 인정하는 것, 인간으로써 다양한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악순환을 끊어나갈 수 있는 시작이 된다.



이전 01화 둘째 출산 한 달 전, 첫째 어린이집을 퇴소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