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의 악순환 - 참다 욱하고, 화내고, 자책하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모래 놀이터가 있어서 종종 아이들과 함께 가곤 한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손과 발의 피부로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고, 조그마한 콩벌레를 데리고 노는 게 아이들의 놀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몇몇 가족들이 오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큰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한 엄마가 아이에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앞뒤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아이에게 다른데 가자고 했는데 아이가 싫다고 한 것 같았다. 그 엄마는 "너만 재밌게 놀자고 왔냐고!" 라고 소리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도 많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분위기는 금세 싸해졌고 남편은 무안했는지 "소리 지르지 말라고.."를 연신 이야기 했다. 결국 그 엄마는 씩씩거리며 혼자서 걸어가고 그 뒤를 풀이 죽은 아이와 아빠가 뒤 따라갔다.
오랜만에 나와서 모래 놀이터를 만나 즐거웠을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랜만에 가족들과 바람쐬러 나온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럼 소리지르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은 편안했을까? 그 엄마는 얼마 못가 아이의 손을 꽉 잡고 갔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미안했을 것이다.
이려러고 시작한 게 아닌데, 분노를 참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하고야 만다"라고 말했다. 감정은 누른다고 하여 눌러지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잠잠해 보일 수는 있지만 억눌린 감정은 반드시 곱절이 되어 튀어 나온다. 결국 내 감정을 억누른 채 하는 행동은 시한폭탄 같은 배려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폭탄말이다. 폭탄이 터지면 이성도 잃는다. 상대가 한 번에 받는 충격과 상처는 몇 배가 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감정을 억누른 세대였다. 힘들어도 버틸 것, 싫어도 싫은 티 내지 말아야 할 것. 긍정적인 감정은 너도나도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그 자체로 거부감이 든다. 그러한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엄마라 해도 자기가 난 자식이 미울 때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불편해서 어쩔 줄 모른다. 감추려하고, 부인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노와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사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다. 억눌린 분노를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연습해야 할 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올바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