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를 갈 때 중국을 경유해서 갔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중국을 경유해서 왔다. 상하이에서 20시간을 머물러야 했기에 항공사 측에서 호텔을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5성급 호텔이었다. 우와 5성급 호텔이네. 짱 좋다. 짱 좋아...... 좌절과 실패로 버무려진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날의 긍정은 언제나 부정으로 끝을 맺었다.
나는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 중 어디에 와있을까를 생각했다.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의 단계 중 수갑을 차고 사진을 찍었을 때 '수용'의 단계에 와 있는 줄로만 알았다. 모든 것은 끝났다. 나는 돌아가야 해. 이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하자.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라는 마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깨끗하고 널찍한 호텔 안에 누워 캐나다에서의 일을 복기했을 때도, 분노가 자꾸만 치밀었다. 멍청한 새끼. 실패자 새끼.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냥 죽는 게 나아. 상하이에서의 밤은 분노와 저주로 들끓었다.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겨우 2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괴로운 밤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 놓인 별들은 촘촘히 하늘에 박혀 있었다. 하늘은 이리도 아름다운데, 내 마음은 지옥이라니. 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바라보는 모든 풍경이 분노와 아름다움의 적절한 향연을 이루고 있었다.
40시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낯설지도, 무언가 새롭게 바뀌지도 않았다. 당연한 소리였다. 겨우 40시간 만에 뭐가 낯설겠고, 바뀌겠는가. 다만 내 안의 무언가가 아주 많이 바뀐 느낌이었다. 긍정적인 느낌은 결코 아니었다. 우울의 감정이 주를 이뤘고, 실패자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집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소파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렸다. 뭐라도 할라 치면 네가 할 수 있겠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와중에 친구들에게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캐나다 어때?', '잘 도착했어?', '밴쿠버 너무 이쁘지!'. 답장을 안 했다. 할 수 없었다. 뭐라 한단 말인가? 하루가 지났다. 카톡은 점점 쌓여만 갔다. 답장을 하기가 싫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있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분노의 단계를 거쳐 현실과 타협하고, 우울의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아직 완전히 수용하진 못했지만 시간은 나를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미국과 유럽의 치과 자격증 따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단지 두려웠던 건 캐나다와 미국이 정보를 공유해 내가 캐나다에서 쫓겨난 사실을 알고 또 한 번 쫓아낼까 봐, 그것이 두려웠다. 미국은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 상태에서 같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또 간다는게 무엇보다 싫었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
유럽을 둘러봤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룩셈부르크, 헝가리, 불가리아. 한국인들의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외국인들의 정보는 많았다. 그 정보를 기반으로 각 나라의 학교와, 병원, 치과의사들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불가리아 교수와 연락이 닿아 스카이프를 하기도 했다.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새 '어느 나라의 자격증' 보단 '자격증 자체'를 따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나라는 상관없었다. 그렇게 메일 답장을 받고, 스카이프를 하고, 끊임없이 정보를 모았다. 그러나 그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구글링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느꼈다.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없이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히 앉아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본과 1학년 때 같이 공부했던 형과 연락이 닿게 되었고, 그 형이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에서 치대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리투... 어디요?
- 리투아니아! 발트 3국 중 하나야.
- 아 그런 나라도 있었군요.
나는 어디에 붙어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나라 이야기를 과연 믿어도 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본과 2학년까지 마치고, 리투아니아에서 졸업을 하기 위해 그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형의 말을 들으니 기회가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정보를 검색해보고, 결정을 내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가보자, 리투아니아로. 그렇게 나는 3일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이틀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계속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간 패배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엇이든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은 어이없는 이유로 세계일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세계일주라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지만, 여행이 다 끝나고 돌아보니 이때의 실패가 없었더라면 내가 세상을 둘러볼 기회도 없었으리라는 생각에 이 실패가 조금은 감사하기도 하다. 아마 당시의 기억이 미화돼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모스크바, 러시아에 도착했다. 경유지였다. 불과 며칠 전에 유럽과는 정 반대인 캐나다에 있었는데 지금은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가면 좀 나아질까? 잘 알 순 없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나를 밀어 넣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긴 했다.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에 도착했다. 캐나다처럼 비자 검사를 깐깐이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무런 질문 없이 그냥 들여보내 주었다. 형과 P는 수도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우테나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는 빌뉴스에 며칠 머무른 후에 우테나로 넘어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발코니에 앉아 내리는 비 냄새를 맡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신기했다. 피로가 쌓였는지 침대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눈을 뜨니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씻고 준비해 빌뉴스의 대학교로 찾아갔다. 큰 일을 두 번이나 겪은(네팔과 캐나다) 나로선 거리낄 게 전혀 없었다. 치의학과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 다짜고짜 물었다.
-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조르바입니다. 치과 자격증 따는 방법을 알아보러 왔는데요.
- 오 안녕하세요 조르바. 치과 자격증이요? 그렇군요, 우선 조금 기다려야 해요. 지금 저희가 매우 바쁘거든요. 조금 기다릴 수 있나요?
- 네 그럼요 물론이죠! 얼마나요?
- 우선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면 저희가 연락을 드리도록 하지요.
- ....
바쁘다는 데 어쩌겠는가. 땡깡을 부릴 수도 없고. 핸드폰 번호도 없어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온다고 하고 혹시 몰라 이메일을 남겨놓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왔지만 할 일이 없었다. 무료하고 심심했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무턱대고 떠나온 이 행동이 과연 잘한 일일까.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이곳에 남아야 할까. 또 떠나야 할까. 복잡하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 마음은 곧바로, 두려워하면 뭐해? 이미 왔는 걸. 밖으로 나가서 구경이나 하지 뭐, 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공원을 걷고, 쇼핑몰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계셨다. 뭐지. 왜 이렇게 반가운 거야?
-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 분이세요?
- 어, 네. 한국인이에요."
- 우와, 여기서 한국인 처음 봐요.
- 네 여기는 한국인이 많진 않아요.
그분은 내게 이곳까지 어떻게 오겠냐고 물었고 나는 캐나다에서의 일은 말하지 않은 채 치과 자격증 따는 법을 알아보러 왔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분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더니,
-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 네? 뭐가요?
- 여기 리투아니아 치대요. 어떻게 아셨어요?
- ??? 어.. 어떻게 알다뇨? 그냥 서치 해보기도 하고, 아는 형이 여기 거주해서 왔는데요.
- 신기하네요. 보통 그렇게 오진 않거든요.
이분은 나를 계속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이야기를 더 들어봤더니, 이곳에 한국과 리투아니아의 치대를 이어주는 유학원이 있다고 한다. 치과의사가 되고는 싶은데 한국에선 성적이니 뭐니 해서 들어가기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외국 치대로 눈을 돌린 사람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단지 다른 건 이 사람들 사이엔 유학원이 껴 있었다. 어떤 유학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루트를 가지고 수익을 발생시키고 있었고, 리투아니아 치대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딴 사람들의 자격증을 한국 자격증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유학원은 리투아니아 치대에 관한 설명과 학교 입학 절차를 밟아주고 수수료를 받는 듯했다. 졸업 이후의 삶까진 어떻게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유학원이 받는 비용을 들어보니 어마 무시했다. 그 큰돈을 내고 이곳까지 온 한인 학생들은 리투아니아 치대에 관한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걸 꺼려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필리핀에서 치대를 졸업하신 한인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자격증을 바꾸고 일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 정보를 알고, 그 루트대로 자격증을 따다 보니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 그 방법을 막았다고 했다. 이처럼 리투아니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루트가 막힐 거라는 생각에 이곳에 있는 한인 치대 학생들은 외부인을 멀리했다. 그렇기에 갑자기 화성에서 뚝 떨어진 듯한 나의 존재는 가히 이상하고 신기하게 보였으리라. 그래서 그 한국분은 내게 자꾸 어떻게 오셨냐고만 물었을 테고. 나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해준 그분에게 내 스토리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그분은 그나마 내게 호의적이었고, 치대 한인회에 연락을 해서 다 같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하루가 지났고, 그분에게 카톡이 왔다.
- 안녕하세요, 저 어제 만났던 그 사람인데요.
- 아 네, 안녕하세요.
- 그.. 제가 물어봤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올 수 있냐고,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도 왜 그런 정보를 알려주냐고, 앞으론 만나지 말라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하하하하. 정말이지 이 말을 듣는데 너무너무 어이가 없었다. 사실 그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생각도 하지 않고 왔는데 아니, 그런 사람들이 이런 외딴곳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하고 왔는데 저런 식으로 사람을 매도한다고 해야 할까. 무척이나 어이가 없는 말에, 네 알겠습니다~라고만 답장을 보냈고 그분은 한 번 더 죄송하다고 했지만 더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다. 더 웃긴 건, 그 다음날 한인회 전 회장이었나 하는 사람에게 카톡이 왔다.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아니, 이게 그렇게 큰 일인 거야? 무슨 뭐, 누가 들으면 국가기밀이라도 털린 줄 알겠네.
다음 날 그녀와 만나게 됐다. 그 사람은 참 똑 부러졌던 여자로 기억한다. 그분은 벌써 졸업을 하고, 유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더랬다. 이야기를 나눈 건 대부분 위에 말한 내용과 비슷했다. 오해하지 마시고, 이러이러한 상황이니, 이해를 해달라. 그러나 내가 이곳에 있는 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원치 않을 것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아니 저기요, 이 나라가 당신네들 거냐고요. 유학원 거야?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요. 나는 당신들하고 어울릴 필요도 없고, 안 어울려도 돼. 영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하하하하. 그리고 우린 헤어졌다.
한 편으론 씁쓸했다. 정보, 루트, 중요한 거 알겠어. 중요하지. 얼마나 큰돈을 내고 왔고, 자기들 인생이 걸려 있는 문제일 텐데. 이해는 했지만 씁쓸한 맛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은 민족, 국가, 대한민국 뭐 이런 거 끼워 맞추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같은 나라 사람인데 타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니 차-암 씁쓸했다. 하하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