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헝가리에는 세멜바이스 대학, 페치, 세게드, 데브레첸 대학에 치의학과가 있었고 나는 세멜바이스 대학을 먼저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혹시나 메일을 보낸 곳에서 연락이 와있을까 했지만 메일은 와있지 않았다. 단지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네덜란드 의사한테 연락이 와 있었는데, 그 또한 외국인들에 관한 편입 시스템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고 했다.
헝가리는 이번이 두 번째다. 언제 와도 평화롭고 멋진 곳이다. 대학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도시를 둘러볼 마음으로 겔레르트 언덕을 찾았다. 부다페스트 전경이 모두 다 보이는 언덕. 햐- 좋다! 언덕에 앉아 부다페스트의 엔틱 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네팔 지진, 캐나다에서의 강제추방, 리투아니아의 한인들, 아우슈비츠. 짧은 시간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구나. 내 친구들은 미국 국가고시 1차 NBDE 합격을 하고 2차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내게도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미국으로 넘어오라고 말한다.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우면 내가 지금 이 언덕에 이렇게 앉아 있겠냐고. 그들이 내심 부럽다. 평탄한 길. 앞이 보이는 길. 목표가 보이는 길. 사실 그들도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을 테고, 국가고시 준비를 하느라 얼마나 하루하루 전쟁이겠는가(말하는 걸 들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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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워 눈만 끔벅끔벅거릴 때도, 바르샤바로 이동하는 야간 버스 안에서도, 아우슈비츠의 수용소를 거닐 때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나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걸까.
앞이 컴컴하다. 어떨 때는 흐리멍텅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의심이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쳐들고 머리를 쪼았다.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정신은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와도 같다. 만약 아틀라스의 정신이 무너졌다면 하늘 또한 무너졌을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은 얼핏 단단해 보이지만 누군가 그 속을 톡- 하고 건드린다면 금세 둑이 터져버릴지 모른다. 사실 세상살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이의 속은 이미 곪아버렸을지도, 어떤 이의 속은 터지기 일보 직전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속이 문드러져 가고 있는지,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인지, 마음속 내면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안아주고, 토닥 거려 줄 수 있을까? 그때는 힘들면 힘들다고, 지치면 지쳤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까?
언덕에서 내려와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세멜바이스 대학을 방문해 학생들과 교수들을 만났다. 헝가리 의, 치대야 워낙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어 해외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겐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직접 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인터넷에 나와 있는 것만큼 그렇게 많은 돈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알아본 바 학비 약 1700에 생활비 2000, 연간 4000 정도가 들 줄 알았는데 막상 살아보면 물가가 그리 비싸지 않아 생활비를 더 아끼면서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학비나 생활비 따위가 아니다. 그 누구도 나 같은 케이스를 본 적이 없단다. 아니, 졸업을 했는데 왜 다시 편입을 하려고 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또 받는다. 리투아니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설명을 한다.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해서, 그래. 나도 답답해 죽겠어. 꼭 편입이 아니라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시험이라도 볼 수 있냐는 거야. 어찌 됐든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시험만 볼 수 있다면 학교를 조금 더 다니든 상관없으니까 그거라도 알려주라. 음. 미안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네. 좀 기다려봐.
형의 경우, 편입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야 하겠지만 길이 보인다. '가. 능. 성' 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는.. 나느은... 학생이고 교수고 행정 담당이건 간에 모른다는 답변만 나온다. 혹은, 알아볼 테니 이메일을 달라. 네가 가져온 서류,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그거라도 놓고 가라. 연락 주겠다. 대체 언제? 얼마나 걸리는데? 그건 우리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http://blog.daum.net/oshwang/12190562
지친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세체니 다리를 걷는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나 같은 케이스는 아무도 없을 거야. 그렇겠지? 누가 이런 그지 같은 상황에 놓이겠어. 나 같은 재수 없는 놈이나 이러는 거지. 형과 맥주를 마셨다. 인생이 뭘까요 형. 인생? 몰라. 그냥.. 이렇게 뭣 같은 게 인생인가 보다. 정신은 술에 흐트러지고, 지친 마음은 괜히 부다와 페스트를 향해 원망 섞인 소리를 내지른다. 결국 이게 내 인생이고, 내 업보고, 내 실패고, 내 실패고... 내 실패야. 나는 실패자니까.
다음 날, 우울한 상태로 일어나 다시 세멜바이스 대학을 찾았다.
- 혹시 데브레첸이나 세게드 대학도 마찬가지일까요?
- 아마도 그럴 거 같은데? 걔네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 볼 거야. 잠시만 기다려봐. 데브레첸 대학에 내 친구가 있으니 전화로 해서 한번 물어봐줄게.
- 앗, 감사합니다!
1시간여를 기다렸지만 역시나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에 이어 세멜바이스에서도 이런 부정적인 답변을 들으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데브레첸이니 세게드 대학이니 어느 곳도 가기가 싫어졌다. 다른 대학들은 부다페스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다. 학교를 나와 다시 겔레르트 언덕을 찾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바, 옆 나라인 루마니아도 세계 각국에서 의, 치대를 들어가려 하는 국제학생들이 몰린다고 했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루마니아로 가기로 하고 버스와 저가항공 비행기를 알아봤다. 조금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블라블라 카라는 Car sharing 시스템이 있었다.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로 바로 가고 싶었지만 블라블라카 친구는 '클루지 나포카'라는 도시로 간다고 했다. 클루지 나포카에도 Iuliu Hațieganu University of Dentistry라는 곳에서 치의학을 가르치고 있긴 했다. 다만 이전 나라들과 별 다른 결과를 줄 것 같지 않기에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Ministry of Education, 교육부와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보건복지부를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판사판인 심정이었다.
블라블라카 친구는 프랑스 출신 흑인이었다. 그는 흥이 넘쳤다. 이동하는 시간 동안 레게음악을 크게 틀고, 몸을 들썩였다. 한 손은 운전대를, 한 손은 엄지와 중지를 튕기며 리듬에 맞춘다. 가끔 양 손을 핸들에서 떼고 나를 쳐다보며 리듬을 튕긴다. 하얀 치아를 들어내며 활짝 웃고, 입으로는 어설픈 비트박스를 따라 한다. 두, 파, 두, 두, 파! 츳, 파, 츳, 츳, 파! 덕분에 우리의 몸도, 고개도 들썩인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레게 음악을 듣고 이 친구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듣자니 지난 시간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덕분에 클루지 나포카에 즐겁게 도착했다.
간단히 짐을 풀고 거리에 나왔다. 한산한 거리였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도시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쿠레슈티 같은 회색 도시와는 비교도 하지 말라고 한다. 루마니아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부쿠레슈티라는 도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는 점인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조차 자신의 도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 곳 또한 공산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통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 얘긴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주말이어서 월요일에 다시 움직이기로 하고 이틀 동안은 여독도 풀 겸 푹 쉬기로 했다.
Iuliu Hațieganu University
월요일이 됐고 우린 Iuliu Hațieganu University of Dentistry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행정 담당관도 역시나 비슷한 반응을 보였고 나와 형은 가지고 있는 서류를 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기대를 별로 안 했기에 실망도 크지 않았다. 차라리 부쿠레슈티에 있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기대를 더 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행정 담당은 이런 문제를 물어보려면 수도에 있는 교육부로 가보라고 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처음부터 학교로 갈 것이 아니라 교육부처로 가볼걸! 밖으로 나와 치의학 건물을 들어갔다. 독일에서 온 여학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의 시스템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몇 년제인지, 어떤 나라 학생들이 있는지 물어봤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고, 자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물가도 싸고, 치의학 수업의 난이도 또한 낮기 때문에 이곳으로 많이들 온다고 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편입은 있어도 나 같은 케이스는 없다고 한다. 알겠다고 한 뒤 한 톨의 미련 없이 바로 부쿠레슈티로 가는 버스를 예약한다. 왠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오후 버스였다. 9시간이 걸렸는데 도착하니 새벽 3시였다. 날씨는 몹시 추웠고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었다. 노숙을 해야했다. 조금만 버티고 날이 밝으면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침낭을 펼쳤다. 가지고 온 캐리어를 옆에 두고 누웠다. 10분쯤 잠이 들까 말까 한 상태였는데,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 사람들 또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자리를 접고 앉아야 했다. 불편한 상태로 앉아서 잠을 청했다.
동유럽의 새벽바람은 몹시 찼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날이 밝았다. 뻐근한 근육들이 겨울잠에서 막 벗어난 듯 욱씬거린다. 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잡고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묵직한 피곤이 몰려왔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다음 날 가기로 했다. 짐을 풀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꿈에서 레게음악이 흘러나왔고, 내가 있는 곳은 보건복지부였다. 스피커에서 레게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많은 담당관이 몸을 흔들고 있다. 리듬을 타고 있다. 어떤 이는 헤드폰을 끼고 일어나 두 손으로 양 귀를 움켜잡고 춤을 춘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꿈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우리를 데려다준 블라블라카가 중앙 책상에 앉은 채 엄지와 중지를 튕기고 있다. 나 또한 그 안으로 들어가 몸을 흔든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몰려든다. 엄숙한 표정과 권위를 보여주던 꼬부라진 짙은 눈썹은 떼 버리고 다 함께 춤을 춘다. 꿈에서 나는 한없이 즐겁다. 같잖은 스트레스는 지중해에 던져버린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잠에서 일어난다. 저녁 놀이 지고 있다. 루마니아의 새빨간 놀이 나를 보듬어준다. 창문 앞에 앉아 헝클어진 머리로 눈곱을 떼고 멍하니 앉아 꾸었던 꿈을 복기한다. 리드미컬한 꿈이었다. 블라블라카가 선물해준 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행복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