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알겠어. 내가 잘못한 거 알겠어.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너 잘못했어. 누가 거짓말하래? 한 번만 봐줄 테니 다음부턴 절대 그러지 마!라고 말하길 기대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란 걸 했었다. 혹여나 그렇게 말해줄까 봐. 한국인 통역관이 내 처량한 눈빛을 보고, 내 편에 서서 통역을 잘해줄까 봐. 당연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공항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다.
구치소 안에는 콜롬비아 할아버지와 미국 아저씨가 있었다. 그들을 힐끗 바라보고는 내게 지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1인실의 멀끔한 방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천장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눈물이 계속 흘렀다. 뒤통수와 베개가 눈물로 젖었다. 차마 소리 내어 울 수는 없어, 끅끅대며 울었다. 지난 6년간의 대학생활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예과 1학년 때 배운 해부학부터, 대체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를 식물학과 동물학 같은 교양과목들. 학년이 올라가 본과생으로써 배우는 병리학과 생화학 같은 과목들. 점점 치의학에 관련된 수업을 듣고, 기술을 배우고, 환자들을 치료하며 느끼는 뿌듯함, 부족함, 나의 한계, 역량, 쪽잠 자며 공부했던 시험들. 이 모든 기억들이 눈물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오로지 하나의 시험만 보고 이 힘든 시간을 다 견뎌왔는데. 이 모든 걸 단 한 번의 실수로 다 날려버리고 있는 나 자신이 무엇보다 싫었다. 멍청한 놈. 멍청한 새끼. 바보 등신 새끼. 살고 싶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6년의 시간도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어느새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한밤중이었다. 쇠창살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콜롬비아 할아버지와 미국 아저씨가 나를 반겨준다. 저녁 안 먹었지? 배고프지? 이거 먹어라. 내게 줬던 건 스팸 두 조각에 빵 한 덩어리, 그리고 계란국 비슷한 국물. 그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몹시 허기가 진 상태였다. 우울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않고,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본능과 이성은 따로 놀았다. 이성은 먹지 말라고 말하고 있어도 본능의 손길은 자연스레 빵 한 덩어리로 향했다. 나는 우거적 우거적 빵을 씹어먹었다. 아저씨와 할아버지는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다. 밥을 굶주린 개처럼 먹고 있으니, 한마디 툭 던진다. 어쩌다 들어왔니?
나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지만 같은 구치소원들끼리의 동질감 비슷한 것이랄까, 그런 게 느껴져 자초지종 털어놓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할아버지는 가만히 듣더니 욕을 하기 시작했다. 에이 캐나다 개 같은 놈들. 아니 지들은 거짓말 한 번도 안 하고 사나? 에이 개 같은 놈들. 할아버지는 개 같은 놈들과 사랑에 빠진 듯 보였다. 캐나다 얘기가 나오면 말 끝마다 개 같은 놈들도 따라 나왔다. 옆에 있던 미국 아저씨도 그에 동조해 캐나다를 씹기 시작했다. 마더 퍼커 같은 놈들이라고. 미국 아저씨는 마더 퍼커를 사랑했고, 콜롬비아 할아버지는 개 같은 놈들을 사랑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 웃긴 건 두 분 다 캐나다에서 불법체류를 하다 걸려서 쫓겨나기 직전 이곳 구치소에 갇혔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잘못을 했음에도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라고 말하며 캐나다인들을 개 같은 놈과 마더 퍼커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덕분에 조금 웃을 수 있었다. 나에게도 단어를 하나 만들라고 했다. 나는 애쓰ㅎ홀을 소환해냈다. 캐내디언 애쓰ㅎ홀.
아저씨와 할아버지는 새벽까지 캐나다의 이민 시스템에 대해, 콜롬비아 정부의 무능함에 대해, 미국 동부 서민층의 고달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 동부 서민들에게도 개 같은 놈들과 마더 퍼커는 따라왔다. 나는 먼저 자야겠다고 말하고 어느새 내 방이 되어버린 쇠창살을 열고 들어갔다. 한숨이 끊임없이 나왔다. 돌아가면 친구들한테 뭐라고 하지? 부모님은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치과의사의 길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지? 공부를 다시 해야 하나? 시험을 볼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미국에 가면 그래도 괜찮을까? 아니야 미국도 무서워. 같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잖아. 캐나다와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돼. 미국과 캐나다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잖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다시 누워있는 동안 끊임없는 물음과 한숨 속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덩치 큰 경찰 두 명은 나를 데리러 왔다. 콜롬비아 할아버지와 미국 아저씨는 각자 방에서 자고 있었다. 며칠 후에나 나가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에 그곳이 집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경찰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경찰을 따라나서며 옆에 있는 이민국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어떻게 하죠? 아 그거? 괜찮아~ 알아서 다 마련해줄 거야. 나는 그 말을 믿고 아무 걱정 없이 그들을 따라 나왔다.
경찰관 두 명은 나를 데리고 구금소 밖으로 나왔다. 나는 경찰관에게 물었다. 이렇게 쫓겨나는 일이 한 달에 몇 번이나 발생하나요? 한 달? 말도 마~ 하루에 열명씩 쫓겨나는 판이야. 이 말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나는 멍청한 놈일까 이기적인 놈일까.
우리는 공항 라운지로 올라갔다. 100미터 앞에 공항 밖으로 나가는 회전문이 있었다. 밴쿠버 땅에 한 발자국이라도 디뎌보고 싶어 옆에 있던 경찰관에게 물었다. 저기 땅바닥 한 발자국만 디뎌보고 오면 안 돼요? 안돼. 무뚝뚝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바로 철벽을 쳐버리는 우리 캐내디언 경찰관님. 그래 안 되겠지. 빌어먹을 내 인생, 뭐가 되겠냐. 앞에 보이는 공항 밖 밴쿠버의 풍경은 따사로워 보였다. 그 햇살에 몸을 맡긴 채 공원에 누워 뒹굴뒹굴 거리며 '월든'을 읽으려 했던 나의 꿈은 한 줌의 파편으로 흩어져버렸다. 경찰관은 이윽고 나를 공항 안에 있는 항공사로 데려갔다. 나는 그 앞에서 멀뚱멀뚱 서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관이 물었다.
- 뭐해? 비행기 표 안 끊고?
- 네? 잘못.. 들었습니다?
- 비행기 표 안 끊고 뭐하냐고.
- 어.. 어제 이민국 직원이 말한 바로는 이민국에서 끊어준다고...
- 그랬어? 우린 모르는 일이야. 얼른 다시 끊어. 시간 없어.
- 아 아니, 저기요. 잠시만요. 그러면 안되죠. 쫓겨나는 것도 짜증나 죽을 판에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도 내 돈으로 내라고요?
-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헤엄쳐서 갈래?
- .....
몹시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꾹 참고 항공 직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몇 시간 후에 있을 편도 항공편의 가격은 170만 원. 뜨억. 절대 못내. 아니, 안내. 미쳤어? 나는 경찰에게 다가가 말했다.
- 가격이 170만 원이네요. 못 내요. 돈 없어요.
- 허 참, 미치겠네. 그럼 어쩔 건데?
- 몰라요, 어제 그 이민국 직원 불러오던가 아님 밴쿠버에 들여보내 주던가.
키가 족히 190은 돼 보이는 경찰관 두 명의 얼굴은 빨개지기 시작했다. 화가 난 듯 보였다. 나도 이판사판이었다. 지들이 쫓아내면서 비행기 값도 나보고 다시 내라고? 미쳤냐 내가? 뭐가 맞는 건진 모르겠다만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었다. 경찰관과 내가 여행사 앞에서 투닥투닥거리고 있으니 매니저로 보이는 어떤 여자가 다가왔다.
- 안녕하세요, 무슨 일일까요?
- 아 안녕하세요. 제가 어제 캐나다에 도착을 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쫓겨나게 됐어요. 근데 어제 분명 이민국 직원이 돌아가는 비행기 값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을 했거든요. 근데 그 직원은 사라지고 여기 이 경찰관들이 저보고 빨리 편도 티켓을 사라고 하네요. 근데 편도 값이 170만 원이잖아요. 너무 비싸서 안사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에요.
- 아 그러세요? 저는 이 항공사의 매니저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혹시 그러면 최대 얼마를 지불하실 수 있으세요?
투박한 경찰관과는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로 도와주려는 매니저의 말을 듣고 1000달러가 있다고 말했다. 어찌 됐든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내야 한다면 1000달러라도 내고 간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매니저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말했다.
- 그럼 1000달러만 내시고 타시죠. 제가 그렇게 해드릴게요.
잠깐만, 뭐야. 이게 가능한 거였어? 내 얍삽한 머리는 순간 잽싸게 돌아갔다. 이 사람의 권한과 역량으로 700달러나 깎아서 누굴 태울 수 있다면,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적용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부터 세상 모든 불운을 다 가진 사람처럼 눈꼬리를 내리고 두 손 두 발을 공손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곤 세상 제일 불쌍한 표정으로 어제 일을 다시 한번 자초지종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제가 있잖아요........ 한 번만 어떻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매니저님?
매니저는 다시 한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좋아. 작전이 먹히고 있어. 제발, 제발, 제발. 1000달러를 태평양 한가운데 뿌릴 순 없지. 마침내 매니저는, 오케이 좋아요.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에 남는 자리가 있는지 보고, 있으면 태워줄게요.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이게 환호성을 지를만한 상황일까. 모르겠다. 다행히 남는 자리가 있었고, 매니저는 웃으며 조심히 가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감사하다고 말을 하며 매니저의 메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캐나다로 출국한 지 약 40시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게 되었다.
꿈이 있었다. 6년간 꿔왔던 꿈이었다. 그 꿈은 멍청한 실수 하나 때문에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나는 머저리 같은 놈이었다. 인생의 패배자였고 어디에도 쓸모없는 놈이라 여겼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