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히말라야의 지진 속에서 살아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캐나다 치과 국가고시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필리핀 치대를 나온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옵션은 미국과 캐나다 두 곳이었다. 몇몇의 선배들은 졸업 후 미국이 아닌 캐나다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시험을 치고, 인턴 과정을 거쳐 의사 면허를 땄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내 가슴 또한 빠르게 뛰었다. 애초에 필리핀에선 치대를 졸업해봤자 외국인에게 면허시험을 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그 대안으로 캐나다를 선택한 것이었다. 졸업을 해도 면허를 딸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나라에 왜 굳이 가서 죽어라 공부했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필리핀 치대를 들어갈 때만 해도 6년이란 기간 동안 공부를 하고, 졸업할 때가 되면 한국에서도 외국 치대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시험 볼 수 있는 자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리로 넘어간 것이다. 6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법이 바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나의 어린 시절,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그때는 군대가 없어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친한 친구들 중에 혼혈인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상위 클래스에 몰려있었다. 나는 그다지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열심히 하고자 하는 노력은 누구보다 강해서 성적이 되지 않음에도 교수님께 바득바득 우겨 상위 클래스로 들어갔다. 우리는 친해졌고, 따로 시간을 만들어 졸업 후에 있을 미국, 캐나다 국가고시 준비를 같이 했다. 졸업 후 나는 히말라야로, 친구들은 시험을 보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로 돌아갔다.
네팔에서 돌아와 3개월간의 휴식기를 가졌다. 졸업도 했겠다, 지진에서 살아 돌아오기도 했겠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시험? 그까짓 공부 한번 죽어라 해서 붙으면 되지! 패기가 넘쳤던 나는 밴쿠버행 비행기를 끊고, 잠시 멈춰있었던 시험공부를 이어나갔다.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우선 캐나다에 살고 계시는 이모집에 기거하면서 적응을 할 계획이었다. 3개월이 후,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흥분과 설렘, 내 마음은 벌써 밴쿠버의 멋진 의사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한적한 호수를 거닐며 꽥꽥거리는 오리들을 놀라게 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인생과 캐나다에서 만날 상상 속의 여자 친구와, 새로운 인연들. 조금만 더 마음잡고 빡세게 공부를 해보자! 시험 때까지는 죽어라 공부를 해서 꼭! 이뤄내자! 부푼 가슴을 안고 파이팅 넘치게 다짐하며 태평양을 건넜다.
드넓은 바다를 건너 도착한 밴쿠버 국제공항은 또 다른 설렘을 안겨줬다. 아! 이곳이 바로 내가 뼈를 묻을 땅이구나! 마치 런던의 빨간 2층 버스를 보고 설렌 가슴을 쓸어내리는 심정으로 나는 밴쿠버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공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냄새는 나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은 복작복작 줄을 섰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짐을 내리고 이민국을 통과하려 긴 줄에 합류했고 곧 내 차례가 되었다. 당시 내가 선배들에게 들었던 조언은, 캐나다에 불법체류자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 인터뷰를 잘못하거나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 입국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으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잠깐 여행하러 왔다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시험을 보러 왔다고 했다가 시험을 패스하지 못했을 경우 그대로 남아 불법 체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워낙 여러 가지 이유로 불법체류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캐나다 이민국의 경계 또한 삼엄해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이민국 직원에게 그렇게 말했다.
-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 아, 잠시 여행하러 왔어요.
- 그래요? 근데 여행하러 온 사람치곤 짐이 꽤 많군요. (나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이모에게 드릴 한국 물품과 선물이 잔뜩 담긴 박스를 가지고 있었다.)
- 아 네, 에드먼튼에 이모네 가족이 거주하셔서요. 이건 선물이에요.
- 가방엔 뭐가 들었죠? 왜 가방이 세 개나 되죠?(큰 백팩, 작은 크로스백, 조그마한 캐리어)
- 아니, 여행자가 가방 여러 개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방을 한번 검사해보도록 할게요. 잠시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직원은 내게 가방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안에 들은 물품들을 다 꺼내라고 말했다. 가방 안엔 성적 증명서, 졸업 증명서를 포함한 치과에 관련된 서류들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직원은 다시 내게 묻기 시작했다.
- 여행하러 왔는데 이런 서류들은 뭐죠? 성적 증명서와 졸업증명서라니?
나는 당황했다. 어느새 이마와 눈썹, 귓등과 인중에 굵은 땀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직원은 내 가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손바닥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어느새 설렘은 긴장으로 바뀌었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양손은 서로의 손가락을 조물딱 거리기 시작했다. 직원은 이내 모든 물건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친구들이 써준 편지, 사진, 옷가지, 몇 개월치는 돼 보이는 한국음식, 노트북, 선물, 현금 1000달러.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비행기에서 나와 같이 내린 사람들은 어느새 다 나가고 그 자리엔 나만 남아 있었다. 직원은 한 명이 아니라 세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바싹바싹 말랐다. 생각은 꼬이고 동공은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잘못한 건가? 그래, 내가 거짓말한 거잖아. 내 잘못이지. 안 그래?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무슨 불법 체류를 한다던가 그러려고 온 건 아니잖아.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 이 서류들을 왜 가지고 있는 거죠?
- 아, 사실 저는 치대 졸업생인데 미국에 가서 시험을 보려고 했어요. 캐나다 여행을 마친 후예요. 이 짐들은 저희 이모, 이모부를 드릴 음식이고, 캐나다 여행을 조금 한 후에 미국으로 내려가서 국가고시를 볼 생각이었어요.
- 그래요? 그렇다면 핸드폰 한번 줘보시겠어요?
- 핸드폰은 왜요? 사적인 내용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인권침해 아닌가요?
- 공항에서는 그럴 수 있어요. 원하신다면 명시되어있는 매뉴얼을 보여드릴 수 있죠. 핸드폰 주세요.
두려운 마음에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핸드폰엔 이상한 내용이나 사진 같은 건 없을 테다. 과연 지들이 뭘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나를 3시간 동안 기다리게 했다.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 몸이 베베 꼬이기 시작했다. 3시간 후 그들이 내게 다시 다가왔다.
- 당신 핸드폰에 있는 문자와 카카오톡, 바이버, 페이스북 메시지 전부를 확인했어요. 여기 옆에 있는 한국 통역관이 확인해주었죠. 당신은 캐나다에 여행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치과 시험을 보러 왔죠. 우리는 당신 한 사람 때문에 지금까지 총 7시간이란 시간을 썼어요. 당신이 어떤 이유로든 거짓말을 하고 캐나다에 들어오려고 했기 때문에요. 자, 이제 말을 해봐요. 왜 거짓말을 했죠?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 캐나다에서 시험을 보려고 했는지, 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말은 어찌 됐든 핑곗거리밖에 될 수 없다는 걸. 메시지에는, 힘찬아~ 로 시작해, 오빠와 형이라고 부르는 친한 동생들이 캐나다의 시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캐나다 시험 잘 봐!', '넌 할 수 있어!', '캐나다 도착하면 얼마나 이쁜지 꼭 사진 찍어 보내주고!', '캐나다 치과의사! 되자!!' 등 그들은 명백한 이유를 본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밖엔.
그들은 나를 조사실로 끌고 갔다. 어떤 높은 위치에 있는 여자가 나를 보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기분? 엿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렇다고 말했다. 솔직히 엿같은데 이 모든 감정을 솔직히 다 토로할 순 없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했으니. 그녀는 내게 직원들이 물었던 질문들을 다시 한번 물어보고, 사인을 해야 하는 종이를 보여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데 이의가 없다는 내용 이래나. 나는 서류에 전부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뒤 돌려세우더니 수갑을 채웠다.
수갑을,
채웠다.
잠깐, 수갑을 채운다고? 대체 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고 물으니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한데,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건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니 조금 기분이 나쁘더라도 조금만 참고 밑으로 내려갈 때까지 조금만 참아달라고 이야기한다. 관자놀이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니, 내가 잘못을 했다고는 하지만, 수갑은 너무한 거 아냐?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수갑을 채워 채우기는!!!라고 행패를 부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잘못한 건 나였기에.
손을 뒤로하고 수갑을 채운 채 조사실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어느새 캐나다에 입국하기 위해 도착한 다른 탑승객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그들 옆으로 수갑을 찬 채로 경찰관을 따라갔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봤다. 하나같이 다 나를 쳐다봤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은 차갑고, 냉정했다. 수갑을 차고 사람들 앞을 지나갈 때의 그 기분은 참 묘했다. 수갑은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 차는 건 줄 알았는데.
경찰을 따라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그곳엔 방이 있었다. 앉아있던 직원은 내게 옷을 벗으라 말했다. 가지고 있는 물품 전부를 꺼내놓으라 말했다. 나는 옷을 다 벗고 속옷만 입은 채 멀거니 서있었다. 직원은 내게 노란색에 가운데가 뻥 뚫린 네모난 프레임을 손에 쥐어주었다. 얼굴을 그 가운데에 놓고 프레임을 양손으로 쥐어들었다. 마치 미드에서 나올법한 범죄자들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 찍는 그 프레임, 그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양 손에 쥐어들고 직원을 바라보았다. 직원은 프레임을 들고 있는 나의 정면, 양 측면 사진을 찍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웃음이 계속 났다. 하하하하하. 직원은 내게 왜 웃냐고 물었다. 하하하하하. 나는 그냥, 이 상황이 어이없어서 웃는다고 말했다. 직원은 이곳에 온 사람 중에 웃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럼 보통 어떤 사람들이 오느냐 라고 물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극도로 화가 나있거나 자기들을 죽일 듯이 노려본단다. 그러나 나는 어이가 없었고, 웃음이 났다. 그런 나를 직원은 신기하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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