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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0

웰컴 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육로로 가기 위한 계획을 짰다. 약 3박 4일의 일정이 나왔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죽음의 일정이란 걸 이 때는 모르고 히히덕거렸다. 에티오피아에선 야간 버스가 없었고, 새벽 5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첫 버스였다. 고로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이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은 숙소에서 20분을 걸어야 했다. 우리를 그곳까지 픽업하러 온 사람이 숙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어디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서 떼강도한테 팔아먹을 거 아니지..? 우리 장기 팔아봤자 돈도 얼마 안돼.. 다 그지들이라 튼튼하지도 않아.. 


새벽의 에티오피아는 무섭다. 아니, 어느 여행지든 위험한 사건이 일어난 때를 보면, 돌아다니면 안 되는 시간과 장소에 우리 몸뚱이를 가져다 놓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새벽의 시간은 위험한 시간이라고 생각진 않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시간이었고, 현지인들이 보기에 돈 많은 외국인이었고, 더군다나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대륙에 완전히 적응을 하지 못했을 때였기에 두려움이 있었다. 일행들과 다 같이 핸드폰으로 길을 비추며 일부러 무섭지 않은 척 우스갯소리를 하며 걸었다.


아디스아바바 - 아와사(5시간)

아와사 - 딜라(3시간). 

딜라 - 야벨로(6시간)

야벨로 - 모얄레(4시간 반)

모얄레(에티오피아와 케냐의 국경마을) - 나이로비(15시간)


에티오피아 수도(아디스아바바)에서 케냐의 수도(나이로비)로 가는 일정이다. 비행기를 타면 한 번에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지만 우린 주머니가 넉넉지 않다. 100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갈 순 없으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행들끼리의 의견이 잘 맞았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쉬는 시간도 없이 바로바로 이동을 해야 했을 것이지만 우리 팀은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 느긋하게 가자~ 급할 게 뭐 있어~ 라며 지칠 때쯤이면 푹 쉬고 마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https://adventuresinthehorn.wordpress.com/southern-ethiopia/arba-minch/



제일 힘들었던 건 버스를 타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였다. 버스 예약을 하려면 호객행위를 하는 수많은 사기꾼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이들은 틈만 나면 버스값으로 사기를 쳤다. 티켓을 구매할 때는 만원이라고 해서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올라탔는데 정작 돈을 낼 때는 3만 원을 달라고 한다거나, 가격 흥정을 잘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하더라도 인원이 꽉 찰 때까지 출발하지 않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둥, 출발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금 과장 보태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 마냥 오래 걸렸다. 기존에 했던 말과 다르지 않냐고 물으면 '아~ 마이 쁘렌! 하쿠나 마타타~'로 일축시킨다. 하쿠나 마타타는 라이온킹의 티몬과 품바가 쓰던 단어로, '문제 없어, 잘 될거야, 걱정하지마'의 의미를 담고 있다. 관광객들이 이 단어를 많이 알고있다는 걸 간파한 현지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이 단어를 써서 우리를 진정시키곤 했다. 티비에서 들었던 단어를 실제 현지인들이 사용하니 웃기기도 해서 나도 문제가 생길 때면 스스로 되뇌이곤 했다. '하쿠나 마타타!!!!' 


그러나 하쿠나 마타타만 외친다고 모든 일이 끝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기까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이제는 육체적 스트레스를 맞이해야 할 때였다. 북쪽에 위치한 아프리카의 도로는 한국의 고속도로처럼 완만한 도로가 많지 않았다. 거진 비포장 도로였고,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몸을 들썩거리게 해 주었다. 천장에 머리를 찧는 일은 다반사고, 앉았던 의자는 90도 직각 의자였다. 허리를 꼿꼿이 피고 앉아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흙먼지를 그대로 마시며,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아무리 가도 변화 없는 에티오피아의 풍경을 고통스럽게 바라봐야 했다. 길고 긴 버스에서의 이동 시간 동안은 쪽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버스가 잠시 조그마한 마을에 정차할 때면, 열린 창문으로 뜬금없이 노르스름한 옥수수가 들어왔다. 길거리에서 옥수수를 팔던 상인이 긴 막대에 옥수수를 꽂아 버스 창문 안으로 불쑥 집어넣는다. 창문 넘어 옥수수를 들이밀고 있는 그를 바라보면 활짝 웃는다. 내 또래나 되었을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옥수수를 사 먹는다. 짭쪼름한 옥수수가 맛있긴 하다. 앞에 있는 다른 창문들을 보면 다들 옥수수니 바나나니 하는 것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있다.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대량 이런 풍경.

https://www.pinterest.co.kr/pin/57913545193349503/






나이로비에 도착하니 온 몸이 구석구석 쑤신다. 잘 때 누군가 내 몸에 난타질을 한 것 같다. 장시간의 버스는 언제 타더라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몸이 삐걱댔다. 나이로비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와 마찬가지로 강도질과 테러로 악명이 높다. 인터넷 기사를 봐도, 가이드북을 봐도, 다른 sns 친구들이 써놓은 글을 보더라도 나이로비는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하기 몇 달 전 가리사 대학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 알샤바브 조직원들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다. 교내에 있던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무슬림이냐고 물은 뒤 기독교인이라고 답하면 총질을 해댔다고 한다. 총 14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집트에서 만난 여행자는 나이로비에서 자기가 당한 사례를 말해줬다. 오후 7시쯤 나이로비 시내 식당을 찾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 소매치기범을 잡으려 쫓아갔고, 뛰다 보니 이상한 골목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앞 뒤로 떼강도가 있었다고 한다. 가지고 있던 여권, 지갑, 스마트폰, 카메라, 가방 등 모조리 빼앗겼다고 한다. 목숨은 건져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들을 듣고 나이로비에 도착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고 누가 말을 걸기만 해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루 이틀 지나고 도시에 적응을 하다 보니 괜찮아졌다. 이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테러가 매일 일어나진 않겠지. (소매치기는 자주 일어난다.)



ㅇㅡㅇ? 인기가 좋았..?



우리는 주로 대도시에 있기보다는 외곽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조그마한 동네에 사는 로컬 사람들과 어울렸고 동네 미용실에서 만원을 내고 레게 머리를 했다. 잔뜩 무거워진 머리로 익숙해진 동네를 활보했다. 우리를 만나는 대부분의 현지 주민들은 우리를 신기해했고, 말을 걸어왔다. 인기가 아주 좋았다. 한국에서 드레드를 하면 10~2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곳은 너도 나도 드레드를 하기 때문에 값이 싸다. 나는 여자들의 똥머리가 그렇게 편한 것임을 이때 알았다. 레게 머리는 가벼운 체인들을 머리에 달랑달랑 걸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자꾸 치렁 대는 머리를 위로 올리면 그나마 가벼워졌다. 머리를 올리면 뒷목을 휘감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감을 때도 한쪽 방향으로 전부 넘겨서 감아야 했다. 한밤 중 호수에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목욕을 게재하는 뮬란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레게 머리를 하고 다녔던 약 2개월의 시간 동안 가는 도시마다 좋든 싫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더 들어가면 있는 조그마한 도시에 한인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고아원과 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에 가서 일주일 간  봉사활동을 했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케냐 아이들과 교실에서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아이들은 외국인이 낯설지 않은 듯 내게 잘 다가왔고, 수줍어하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악명이 높은 나이로비의 명성과는 다르게 귀염 뽀짝 한 미소를 가진 아이들. 부디 그 미소를 잃지 말고 잘 살아가주길.




얘야 표정이...


뽀시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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