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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0

이집트 밖은 위험해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블로그 글들을 보니 카이로 공항은 삐끼질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공항만 그런 게 아니라 이집트 자체가 삐끼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인도를 여행할 때 지긋지긋한 삐끼들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 고생을 여기서도 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떤 나라를 가던, 커다란 배낭을 메고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공항에서 택시를 탄다면 바가지 맞기 딱 좋은 타깃이 된다. 그래서 난 공항에서 택시를 타지 않는다. 귀찮더라도 로컬 버스를 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시내까지 가는 방법을 이용한다. 물론 엄청 귀찮지만 돈이 많지 않은 장기 여행자들은 이런저런 방법들로 숙박비, 교통비 등을 아끼곤 한다. 어느 순간 보면 흥정의 달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의 많은 상점들은 가격 정찰제가 아닌 부르는 게 값인지라 그 나라에서 몇 달이고 머무르려면 흥정은 필수다. 흥정하지 않는 자, 200원짜리 손톱깎이를 2만 원에 구입하기도 하고, 3000원이면 갈 거리를 5만 원을 내고 가기도 한다. 장기 여행자에겐 흥정의 기술은 필수다.


카이로의 시내에 도착했다. 숙소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이용했다. 카우치 서핑이란 쉽게 말하면 소파(Couch)를 서핑한다는 의미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소파)을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내어주고 시간이 된다면 투어를 시켜주기도 하고 같이 hang out을 하기도 하는 그런 서비스다. 유럽에서도 많은 시간을 카우치 서핑으로 돌아다니곤 했는데, 나는 대부분이 좋은 경험이었지만 여성 여행자들에겐 호스트가 샤워실에 몰카를 설치한다던지 하는 불쾌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카우치 서핑을 이용하는 여행자라면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주의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카이로 대학의 주소를 파악하고 Faculty of Dentistry를 요리조리 찾아내 학생들을 만났다. 몇몇 학생들은 한국에서 온 나를 신기해했다. 치대에 관해 묻긴 했는데 사실 이곳에선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의 수업은 아라빅(Arabic)과 영어로 이뤄졌고, 학교 내에도 온통 지렁이 같은 글자들이 써져있었다. 고대 유적지에 온 느낌(...). 이 나라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아라빅을 구사해야 했고, 여러 가지 뭐 무슨 이유가 많았지만 사실 이집트는 별로 마음에 가는 나라가 아니어서 귓등으로 흘려듣기도 했다. 내 마음은 벌써 남아공으로 가 있었다. 


한 친구는 자기도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이집트 밖은 위험하다며 절대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집트에 간다고 했을 때 몇몇 친구들은 이집트는 위험한 나라기 때문에 절대 가면 안된다고 했다. 이집트에 살며 이집트 밖은 위험하다고 하는 이집션과 이집트 밖에 살며 이집트는 무조건 위험하다고 하는 친구들.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경험해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세상엔 이런 아이러니가 넘쳐난다. 본인이 직접 경험을 해보지도 않고 타인의 생각, 도전, 꿈을 비웃으며 그게 될 것 같냐고 말하는 좁은 사고를 가진 이들이 세상엔 넘쳐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대부분 미디어에서 학습된 결과이거나 아는 사람의 누군가가 해봤는데 결과가 결국 이렇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이다. 말인즉슨, 누군가도 그렇게 해봤는데 안됐어, 너라고 별반 다를 것 같아?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그러면서 너는 이런 걸 해야 돼.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라고 강요 섞인 꼰대질을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많이 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과 나라는 사람은 명백히 다른 존재이고,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경험을 가진 존재다. 그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걸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과는 명백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경험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들은 '남의 경험'이 팩트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현명하고 깨어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그저 웃음만 난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은 생각이고, 다른 의견을 수용할 자세를 갖지 못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사회는 결국 좁은 사고에 갇힌 닫힌 사회를 만들어 낼 뿐이다. 반성적 사고로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 병들어버린 이 사회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카이로 대학을 다녀온 후 다음 일정을 짰다. 수단으로 바로 내려갈 것인가,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다합을 가볼 것인가. 산티아고가 끝나고 일정을 강행하느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제대로 쉬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해 다합을 가보기로 했다. 8시간의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인도에서 28시간 기차를 탔을 때 했던 개고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야간 버스를 탔는데 중간에 깨워서 내리라고 하더니 총을 든 군인들이 다가온다. 뭐야 뭐야. 나 IS에 끌려가는 거 아니지? 군인들은 우리에게 소지품을 다 꺼내라고 했다. 불안하게 왜 이러는 거야. 카이로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며칠 전 기사가 뇌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음, 여행하며 온갖 재수 없는 일은 다 당한 것 같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테러집단에도 끌려가 보는 건가?라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당시는 엄청 쫄아있었다는 사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승객 모두를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든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며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짐들을 밖으로 내던지는 상황. 그리고 한 명 한 명씩 여권과 얼굴을 대조하고 우리의 개인 소지품을 검사하는 상황. 머리에는 온통 극단적인 테러 상황에 대처해야 할 시뮬레이션이 풀가동하고 있었다.


다행히 30분 정도 검사를 하더니 버스 안으로 다시 들여보내 줬다. 휴. 별것도 아닌 게 쫄게 만드네(사실 굉장히 쫄아있었음). 그로부터 다합에 도착할 때까지 두 번이나 더 내려서 검사를 했다. 처음에야 무서웠지만 두 번, 세 번째에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승객들도 투덜투덜, 군인들도 투덜투덜. 버스 운전사도 투덜투덜. 다들 투덜 투덜대며 이집트의 새벽길을 헤쳐나갔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 피곤이 진득이 쌓인 몸으로 다합에 도착했다. 길거리에 황토색 모래 바람이 잔뜩 휘날리고 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한국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선 게스트 하우스였나. 길을 물어물어 게하를 찾을 수 있었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건 한국 음식 메뉴판이었다. 한식을 먹은 지가 꽤나 오래되어서 김치찌개라고 쓰여있는 글자만 보는데도 군침이 흘렀다. 당장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하나씩 시켰다. 주인은 이집트 사람이었고, 와이프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국제결혼을 해 이런 척박한 곳에서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때까지는 다합이 얼마나 천국 같은 곳인지 몰랐기에 척박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배가 떵떵 부른 상태에서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이런. 좁아터진 방에 3개의 2층 침대가 있다. 이 좁아터진 방에서 6명이 생활을 한다고? 그리고 방은 몹시 더러웠다. 나도 한 더러움 하긴 하지만 여긴 정말 더러웠다. 이 인간들이 다 한국인일 텐데 이렇게 더럽게 하고 산다는 건 가. 그러나 며칠 후 나란 인간도 그 환경에 아주 잘 적응되어 세상에 둘도 없는 히피 마냥 그 안에서 먹고 마시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방인지 돼지 우린지



다합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모두가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인생이 항상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행복할까? 밤에는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과 다 같이 모여 왁자지껄 파티를 연다.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침낭 속에 들어가 누군가가 불러주는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든다. 뜨거운 아침 햇살이 우리의 눈꺼풀을 자연스레 들어 올려줄 때면 느지막이 일어나 눈곱을 떼고 아침을 먹으러 간다. 아침을 먹고 홍해 앞바다를 바라보며 카페에서 바나나 셰이크를 한 잔 마신다. 날씨가 더워질 때면 바다 수영을 하거나 스쿠버, 프리다이빙을 연습하며 바다를 탐험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지겨울 법도 한데 이런 생활을 6개월, 1년, 2년 동안 하는 사람을 다합에서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아예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다합


프리다이빙


다합 식구들. 다들 잘 살고 계시려나-



12월 31일, 다른 한국 게스트하우스인 따조에서 다합에 머무는 한인들을 모두 불러 모아 파티를 열었다. 홍해 앞 카페에서 오며 가며 만났던 사람들도 보이고, 같이 프리다이빙을 연습했던 사람들도 보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일주를 떠난다고 호기롭게 외치고 다합에 왔지만 다합의 매력에 빠져 6개월간 프리다이빙만 주구장창 배우고 있는 분, 초등학교 교사 생활에 권태를 느껴 무작정 다합으로 떠나오신 교사 분, 갈색 레게머리로 긴 머리를 땋은 3년 차 세계 여행자, 7만 원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사진 무료 나눔을 하며 여행을 하는 세계 여행자, 그 밖에도 여러 취준생들과 대학생들이 모여 새해를 맞이했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뛰쳐나온 이들이었다. 이들 한 명 한 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꿈틀꿈틀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표정에서도,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입술에서도 '살아있는' 사람 특유의 그 생생함이 튀어나왔다. 그 생생함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져 이야기를 듣는 자도, 말을 하는 자에게도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시나이 산


다합에서의 흐르는 시간은 아쉽게만 느껴졌다. 이곳은 말 그대로 여행자들의 블랙홀이었다. 너무 떠나기 싫어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있을까? 조금만 더 있는다고 뭐가 바뀌진 않을 텐데. 아예 여기서 6개월을 지내다가 몰타로 다시 들어갈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거기까지고, 결국은 일정에 맞춰 떠나야 했다. 


마침 남아공까지 육로로 종단을 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고, 그 사람들과 일정이 맞다면 같이 가도 괜찮겠다 싶었다. 나는 다합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카이로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육로를 통해 수단으로 갈지, 비행기를 타고 에티오피아로 넘어갈지 결정을 해야 했다. 1년 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아프리카의 종단 계획,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인생이 재밌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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