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사는 중
사회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을 때 몇 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회사에서 그간 사귀고 친해지며 정든 사람들과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업무 중에 잠시 티타임을 가지며 소소하게 즐겼던 담소나 서로 주고받는 농담이 직장생활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심을 했고, 이를 포기했다.
그런데 퇴사하고도 자연스레 친하게 지낸 전 직장동료에게 톡을 보냈다. 늘 그랬듯이 안부를 주고받고 가벼운 대화를 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지금 내가 뭐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 갈길을 가야 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했다.
하루에 몇 마디 말도 안 하고 혼자서 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날이 조금씩 늘었다.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잘 오지도 않았지만, 나도 선뜻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무슨 계획이 있는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할까 말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혼자서 보낸 시간일 늘수록, 인간관계는 거의 전멸에 가까울 만큼 상호작용이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들어가서 사회생활을 잘하는 게 올바른 인생길로 훈련을 받고 자랐다.
"00 씨는 사회생활을 참 잘해"는 좋은 칭찬으로 들렸고, 나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가 커질수록 나는 잘 나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포기할 것을 포기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정신이 개운하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이유도 없고,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존재감을 드러내 누군가와 엮일 생각이 없으니 다소 밋밋한 인생이지만 마음은 고요하고 생각은 차분해진다.
이렇게 살아보니 조금씩 적응을 하게 되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높은 시선이 생겼다.
과거에는 머릿속에 내가 아닌 다른이를 떠올려야 했다면, 지금은 오롯이 모든 시선이 나에게 향해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좋아했었나 와 같은 것이다.
갈수록 희미해진 과거의 기억을 애써 소환하며 추억을 해보고 싶은데, 내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퇴사 후 지금까지 기록에 힘쓰는 것도 하루의 인생이 소중하고 그게 곧 나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지 않고, 그래도 부지런히 잡아두겠다는 마음이 크다.
이제는 의식해야 할 사람이 없고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없으니 애써 부자연스러운 몸짓이나 말이 없고
마치 내 자아에 온전히 다가가며 내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인정을 받고 싶고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나는 서둘렀을 것이고 과장된 언행이 앞섰으며 되려 일을 그르쳤을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만 잘 고려해도 내 인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며 사는 즐거움을 키워나갈 수 있다.
나는 요즘 사는 게 즐겁다. 다소 무료해 보일지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실천하고 도전했으며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했을 중요한 선택을 적절한 시기에 실행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무던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보내면 에너지 소모도 적고 일의 몰입도 잘되고 단순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삶도 참 좋다.
줄일 것을 줄이니 모든 게 단순하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개인적인 인생목표가 더욱 뚜렷해지고 좀 더 즐겁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타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행동도 생각도 자유롭다.
이 자유가 내 마음속에 풍요를 가져다준다.
그 풍요의 씨앗이 서서히 외부로 발현되면 계속해서 풍요의 굴레로 들어가 인생은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