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트레이더스 찍고 남한산성

by 권냥이



트레이더스 찍고 남한산성


고등학교 교사인 그녀들이 반 학생들을 위해 한국 간식을 산다고 어떤 게 좋냐고 묻는데, 집에서 10분 거리의 트레이더스보다 더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용량으로 사기엔 정말 그만한 곳이 없다. 그녀들과 함께 만든 김밥으로 든든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외출 채비를 했다.

한국판 코스트코냐고 묻는 그녀들. 네, 맞아요.


평소 거의 매주 찾던 곳이지만, 일본인과 함께 온 트레이더스는 새삼스럽게 달리 보였다.

모든 것이 다 새로울 그녀들에게 어떤 걸 보여주고 어떤 제품을 소개해 주면 좋을까 고민하며 커다란 카트를 끌고 걸었다. 간식, 디저트 코너에는 약과, 쿠키, 파이, 캔디가 대량 포장으로 줄지어 있었다.

그녀들은 우리의 추천을 참고해 신중히 미니 약과, 양반김, 예감 감자칩, 츄잉캔디 등을 구입했다.

명동 같은 외국인이 밀집한 관광지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입하게 한 것 같아 나름 가이드로서 보람을 느끼며, 서둘러 계산을 하고 다음 코스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트레이더스도 외국인이 잘 가지 않는 현지인 코스인데, 성남, 하남, 광주에 걸쳐 자리 잡은 남한산성이야말로 진짜 한국적인 곳이다. 성남, 하남, 광주에 걸쳐 있는 이 산성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인 장소이기에 외국인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지이지만, 일부러 찾아오기는 힘들다. 버스나 자가용, 혹은 등산을 통해서 가야 하는데 깊숙한 산속에 있어서 접근성이 쉽지 않다.

명동, 종로, 인사동, 강남, 남산…. 일단 서울 관광으로도 빠듯한데 굳이 성남까지 남한산성 하나를 보러 오기에는 좀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나 홈스테이로, 한국인과 함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찐 한국 가정의 주말 코스를 보여주겠다며 트레이더스 찍고 남한산성을 데려간 것은 가이드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코스였다. 사실 그녀들이 뭐든 '스고이~' 해주어서 이 코스를 짠 나를 한 번 더 셀프 칭찬했다.


굽이굽이 아슬아슬한 산길을 십여 분 달리자 웅장한 남한산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은 흐렸지만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습도가 꽤 높은 날이었다.

고향은 40도라고, 한국은 시원한 편이라고 말해주는 그녀들이었지만 이렇게 불쾌지수 높은 날 괜히 여기까지 데려왔나 살짝 미안해졌다. 그러나 그녀들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곳, 외국인이 오기 쉽지 않은 곳에 데리고 와 주어 고맙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녀들을 오후에 시청역의 호텔로 데려다주어야 했기에 시간 여유가 많지는 않았고, 전체를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속성으로 남한산성 행궁을 둘러보았다. 한남루를 지나 외행전, 내행전, 좌승당, 일장각 등을 둘러보고 오래도록 기억될 단체 사진도 몇 장 남겼다.


우리에겐 새로울 것 없는 풍경들이었지만, 그녀들은 유적지 앞의 안내 비석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남한산성 행궁 입구에 비치되어 있던 일본어로 된 안내문을 번갈아 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려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는데 그녀들은 여기서도 역시나 신중히 기념품을 고른다.

우리는 그녀들의 태어난 연도를 기억해 내 우리 가족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도자기로 만든 귀여운 12 간지 캐릭터를 선물해 주었다.

남한산성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쿠미상은 나중에 한국에 와서 남한산성을 따로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홈스테이가 아닌 그저 내 지인으로 우리 집에 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덥고 습하고 시간에 쫓긴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그녀들을 시청역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주말 오후 서울 한복판에 차를 끌고 가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남한산성에서 잠실역까지는 차로 신랑이 데려다주었고, 잠실역부터는 내가 그녀들과 함께 지하철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었고, 뭔가 제대로 보여준 것 없이 시간은 흘러버린 것 같았지만,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좋은 추억이 되었다. 아이들 또한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함께 TV를 보고,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장을 보고, 마주 보며 웃었던 모든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그녀들을 호텔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쿠미상에게 장문의 카톡이 하나 날아왔다.

감사와 감동,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빼곡히 담긴 글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잘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음식도 정말 다 맛있고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남한산성도 정말 제 취향에 딱 맞아서 즐거웠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었어요.

한국어를 잘 못해서 실례가 많았지만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도 정말 반가웠어요!

또 꼭 기회가 있으면 만나고 싶습니다.

일본에 올 때는 연락해 주세요!

야마나시에는 후지산도, 와인도, 놀이공원도 있어요. 언젠가 와 주세요.

반드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정말 감사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찔끔.

대한민국에 놀러 온 수많은 외국인 중 나나세상과 쿠미상이 우리 집에 와 준 건 나에게도 정말 행운이었어요!

잘 가요! 꼭 다시 만나요!

























keyword
이전 26화그녀들과 김밥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