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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Sep 23. 2020

꽃게찜좀 배워 놀걸 그랬다.

  아내가 꽃게찜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난 알았다고,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대답했다.

  최근 아내가 먹고 싶다는 건 거의 다 먹을 수 있게끔 노력했다. 퀄리티가 떨어져도 내가 직접 해준 음식도 있었고, 안 되겠다 싶은 건 사주기도 했다. 그 전에야 먹고 싶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중에 먹거나, 못 먹고 지나친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예비 아빠들이 그렇듯 나 역시 임신 초기 아내가 원하는 건 다 해줘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나도 갖고 있었다.

  

  겨우 백종원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요리 몇 개 익힌 내게 꽃게찜은 차마 시도도 못할 음식이었다. 잠깐 유튜브에서 꽃게찜 요리를 찾아보니까, 꽃게 손질부터 해야 한다는 말에 겁에 질려 영상을 끄고 근처에 식당을 찾아봤다.

  그런 날 보고 아내는 양념 가득 묻은 식당에서 파는 꽃게찜 말고, 말 그대로 꽃게만 담백하게 찐 꽃게찜이 먹고 싶다 한다. 그러고 아내는 집에서 해 먹어야 되겠는데라고 말한다. 

  오 마이 갓. 꽃게찜을 먹을 식당을 찾아보던 나는 약간 당황을 했다.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이번은 그러지 못했다. 지금까진 음식 맛은 크게 신경도 쓰지 않고 딸랑 자신감 하나로 여러 요리에 시도해 봤던 나였지만, 꽃게찜은 뭔가 차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음식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것저것 요리하기 쉬운 세상이다. 블로그나 TV에는 각종 요리의 레시피들이 넘쳐났고, 특히 유튜브는 친절하게 요리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까지 한다. 나 역시 이런 친절하고 디테일한 자료들에 도움을 받고 있다. 평소에 쉬운 밑반찬이나 국은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고, 닭볶음탕이나 찹스테이크 같은 그럴싸한 요리도 몇 번은 해봤다. 그렇지만 꽃게찜은 오케이, 내가 해줄게란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막상 해보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꽃게찜이란 이름부터가 요리 초보인 나를 바짝 쫄게 만들었다.


  그래도 신경이 쓰여서 며칠을 인터넷에 꽃게찜을 검색해 봤었다. 꽃게 고르는 법, 꽃게 손질 방법, 꽃게 찌는 방법. 꽃게찜 레시피들은 넘쳐났다. 그래도 선뜻 시도를 못하고 머뭇머뭇거리다가 며칠이 지났다.

  결국, 아내가 먹고 싶다던 양념 없이 담백한 꽃게찜은 장모님이 해주셔야 먹을 수 있었다. 난 말로만 꽃게찜 해볼게, 해볼게 하다가 끝나버렸다.




  아내는 장모님이 해준 꽃게찜을 세상 맛있게 먹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너무 맛있었다고 몇 번을 말했다. 아내가 딱히 나에게 꽃게찜을 빨리 해달라고 조른 적은 없지만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괜스레 내가 초라해졌다. 남들은 레스토랑 같은 한 상차림도 뚝딱뚝딱 내놓는다고 그러는데 여태 뭘 한 건지. 

  아내는 나를 조리왕이라고 불렀다. 요리를 좀 그렇지만 라면, 만두, 인스턴트식품 조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조리왕은 임신한 아내의 입맛을 백 프로 만족시키기엔 너무도 하찮은 능력이었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장모님 집에 자주자주 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 달라고. 여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차리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여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나는 바로바로 맛있게 해 줄 수 없지만, 장모님은 입맛에 맞게 금방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며칠을 꽃게찜을 해달라고 했는데, 결국은 장모님이 해줘야 먹게 한 것이 미안하다고.

  오히려 아내는 쿨했다. 미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애초에 내가 꽃게찜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단다. 저 말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지, 나빠야 하는지는 모르겠데 어쨌든 아내는 그렇단다. 임신한 후 그래도 내가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단다. 뭔가 인정하기 싫지만 이럴 때 보면 아내가 나보단 훨씬 속이 깊은 것 같긴 하다.


  요즘 들어 부쩍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입맛도 수시로 바뀌는 아내다. 입맛에 꼭 맞는 내가 직접 만든 요리를 뚝딱뚝딱 내놓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다. 지난번에도 한 번 이모가 해준 것 같은 잡채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시도조차 못해보고 어영부영 넘어간 적이 있다. 이번 꽃게찜도 마찬가지였고.


  이럴 줄 알았으면 꽃게찜 하는 법 좀 배워 놀 걸 그랬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면 우선은 요리실력부터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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