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태어나면 새벽에도 몇 시간 간격으로 깨서 잠을 못 자. 애가 통잠 잘 때까지 진짜 힘들어. 태어나면서 손 가는 게 한, 두 개 아니다. 몇 년은 내가 없다 생각해야 돼. 초등학교 가도 똑같더라, 아직도 신경 쓰고 챙겨줄게 엄청나다니까.
주변에 출산, 육아 선배님들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육아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큰 일 났다, 진짜 힘들다, 그런 소리뿐이지만 그 소리들이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던 건 아마 하나같이 죽겠다 소리들만 늘어놓으면서도 정작 자식들한테 전화라도 오면 눈에선 꿀이 떨어지고, 아주 그냥 전화기로 들어갈 것처럼 통화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그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 힘들다고 투덜대도 그 고생을 한 방에 사르르 녹일 무언가가 있는 게 육아 아닐까 싶다.
결혼을 한 후부터 육아의 무시무시함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많이 들었다.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뜻에서 귀담아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고생길 얘기를 들었음에도 내가 듣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입덧이 힘들다는 얘기 말이다.
모르겠다. 내 주변 사람들이 굳이 짚어주지 않아서 별 걱정 없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아내의 입덧이 시작하니 입덧이 이렇게 힘든 건 줄 이제야 알게 됐다.
임신 소식에 그저 빵실 빵실 하고 있던 나와 내에게 입덧이란 녀석이 불쑥 찾아왔다.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입덧은 TV 속에서나 보던 헛구역질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겪은 입덧은 그런 헛구역질이나 구토가 아니었다. 아내가 겪는 입덧의 증상은 속이 비어있을 땐 속이 타는 듯이 쓰리고, 그래서 뭔가를 먹으면 그땐 속이 느끼하고 울렁거린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빈 속으로 있어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뭘 먹어도 불편했다. 좀처럼 싫은 티, 힘든 티를 잘 안내는 아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거 보면 정말 힘든가 보다 싶어 마음이 아렸다. 뭐를 먹지도, 안 먹지도 못하는 상황은 입덧 중인 아내에게 너무도 큰 스트레스였다.
임신과 관련된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증상의 입덧이 남들에게도 흔한 일인 것 같았다. 단지 내가 아직 모르고 있었을 뿐.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것저것 먹어보면서 먹었을 때도 그나마 속이 괜찮은 음식들을 찾는 것은 이제 아내와 나의 큰 숙제가 되었다.
입맛이 당기는 여러 음식들을 먹어보고 그나마 아내의 입덧을 달래줄 음식들이 아삭아삭한 야채들이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 아이비라는 이름의 달지도 짜지도 않은 밍밍한 비스킷, 떠먹는 생크림 요구르트들이었다. 이 음식들을 찾는 데만도 아내는 꾀나 고생을 했다. 이 음식 한 입 먹어보고 못 먹겠다고 밀어내고, 저 음식 한 입 먹어보고 속이 불편하다고 그만 먹고를 수 없이 반복해서 그나마 괜찮은 음식들을 찾아낸 것이다.
안타까운 건 샌드위치도, 크래커도, 요구르트도 아내의 속을 완벽히 편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사람이 이것들만 먹으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내는 하루하루, 아니 매 끼니를 그렇게 불편한 속을 묵묵히 참고 있었다.
물론, 입덧을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큰 고생을 하고 있는 만큼 옆에서 지켜보는 내 맘 역시 편치만은 않았다. 내가 해줄 게 없냐고 물어보면 아내는 괜찮다고만 한다.
곧 괜찮아질 거야. 우리 둘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 이렇게 말하는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에 나 역시 힘이 빠진다. 그렇다고 내가 축 쳐질 수는 없기에 옆에서 응원이라도 열심히 하고, 잔심부름도 최선을 다하고는 있는데 이게 아내에게 도움이 좀 되는지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니 답답함은 커져가고 그저 얼른 입덧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왜 아무도 입덧이 이렇게 힘들다고 말해주지 않은 걸까? 다들 새벽에 깨우는 아기의 울음소리 나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아기를 쫓아다니려면 필요한 무한체력이 너무 깊은 인상을 남긴 나머지 잊어버린 걸까? 그리고 누가 입덧이 이만큼 힘들다고 말해줬으면 난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했었을까?
지금 막 육아를 시작하자마자 입덧이란 놈에게 기선제압을 제대로 당한 듯하다. 아무래도 좋은 아빠 되려면 맘 단단히 먹어야겠다.
무엇보다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이고 지고 가는 아내에게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할 뿐이다. 여보야, 좀만 힘내자! 도움이 못돼서 미안해.
그리고 나중에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라테는 말이야 하면서 육아 경험 썰을 풀 때면 반드시 입덧도 힘들다고 말해주련다. 그놈 보통 아니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