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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Oct 11. 2020

예비 아빠 준비도 작심삼일이 될 순 없어!

  작심삼일.

  부끄럽지만 나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또 있을까 싶다. 빈둥빈둥 놀고먹는 거 말고는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적의 문구가 바로 작심삼일이다. 새해 다짐 작심삼일, 공부도 작심삼일, 운동도 작심삼일, 다이어트도 작심삼일, 말이 안 되는 게 없다. 착실하게 글쓰기를 해보자고 마음먹고 시작했던 글쓰기도 이런저런 핑계만 남고 어느새 뜨문뜨문하다. 남들은 잘만 하던데 나는 착실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그런데 이놈의 작심삼일의 기질이 출산, 육아 준비에도 여지없는 것 드러나는 것 같아 큰 걱정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임신 소식이 우리 부부에겐 쉬 찾아오질 않았다. 매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해봐도 역시나 기다리던 소식은 없었다. 3년에서 4년. 참 긴 시간 동안 아내와 나는 매달 한 번씩 찾아오는 실망감을 견뎌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좀 더 성숙하게 대처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때 난 아내가 나만큼이나 힘들 거란 생각은 못하고 그저 답답한 내 감성 풀어내기만 급급했던 찌질이었다. 아내를 토닥여주고 다시 으쌰 으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게 미안함으로 남는다.

  오히려 아내는 그런 속 좁은 내손을 꼭 잡고 다독이며 난임 병원을 찾았다. 얼마 후 정말 다행히도, 너무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는 예비 엄마, 아빠가 될 수 있었다.

  아기가 생기고 깨달았다. 지난날 힘든 시기 난 어른스럽지 못했고, 아내에게 힘이 돼주지도 못했단 걸.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잘하자고 굳게 굳게 마음먹었다. 


  시작은 열정이 넘쳐흘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내가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해도 되는 임신 라이프를 보낼 수 있게 해 줄 것만 같았다.


  조금 우습긴 한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게임을 뚝 끊는 것이었다. 담배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뜬금없이 게임 끊는 게 무슨 임신한 아내를 위한 큰 일이냐고 얕보지 말아 달라. 잠깐 쉬는 사람은 있어도 완전히 끊은 사람은 없다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주 중독성 강한 게임을 곧바로 털어냈다. 아내는 임신 초기까진 좀 즐겨도 된다고 말했지만 내 딴에는 세상 둘도 없는 좋은 아빠가 되겠다며 임신 소식을 알고 당장 게임부터 삭제했다. 자식같이 정성 들여 키웠던 게임 캐릭터는 진짜 자식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취미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내 결심이 얼마나 결연했는지. 내가 떠다 줄 테니 아내는 물 뜨러 일어나지도 말라고 했던 게 그때 내 마음이었다.


  할 수 있는 요리를 총동원해서 먹는 것을 잘 챙겨주려고 애썼다. 뭐 물론 못하는 요리가 워낙 많아서 엄마나 장모님, 그리고 각종 식당 사장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세 끼 든든하게 챙겨주려고 나름대로는 신경을 많이 썼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한 동안 내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먹고 싶다는 건 어떻게든 먹게 해 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때도 있었다.

  아내가 도맡아 하던 고양이 양치시키기도 이젠 내가 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도 들어봐야 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나 스스로는 평소에도 잘해왔다고 자부하던 집안일도 좀 더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넘쳐나던 예비아빠의 열정은 어느샌가 푹 식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놈의 작심삼일 기질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나 보다.

  언제부턴가 늦잠을 자고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부시시 일어나서 아내에게 아침 먹었냐고 물어보면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내는 혼자 일어나고, 혼자 밥을 차리고, 혼자 밥을 먹는 동안 난 세상모르고 잠만 자고 있던 것이다. 다시 내일은 일찍 일어나자고 마음먹어도 다음 날이면 또 나는 늦잠을 잤다.

  아내가 소파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같이 일어나던 나의 모습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하는 밥보다는 아내가 한 밥이 더 맛있으니까. 어설프게 차리느니 아내 입맛에 맞게 밥을 먹는 게 더 좋을 테니까. 이런저런 핑계만 늘어놓으면서 아예 아내에게 요리를 맡긴 날도 많아졌다. 아차 싶다가도, 다음부턴 안 그래야겠다 하다가도 조금만 방심하면 게을러지기 십상이었다.


  최근에는 급기야 임신 소식을 알고 내가 하기로 했던 일들도 이젠 열심히 하지 않아 준다는 실망감 가득한 아내의 속마음을 듣기까지 했다. 없는 말도 아니었고,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라서 할 말이 없었다. 아내에게도 아기에게도 미안했고 나한테 조금 실망했다.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붉은 두 줄을 처음 볼 때만 해도 난 좋은 남편, 좋은 예비 아빠가 될 줄 알았는데... 얼렁뚱땅하려는 마인드로는 턱도 없어 보인다.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다. 예비아빠가 되는 일을 며칠 하다마는 다른 일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얼마 전의 나처럼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 남은 몇 개월 동안만이라도 아내가 말만 하면 뭐든 들어줄 수 있는 리모컨이 되어야겠다.


  명심하자! 예비 아빠 준비는 절대로 작심삼일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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