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eIssue Apr 11. 2021

너의 심장소리를 듣던 날

  처음으로 임신 사실을 알았던 그 날 아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배아 이식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시험관 시술도 일단락이 되었다. 사실 끝맺음을 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바라던 임신과 건강한 출산이라는 최종 목표가 아직은 남아있었으니까. 간호사님은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다시 병원에 오는 날은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시험관 시술을 했던 수많은 부부들이 이 기간, 그러니까 배아 이식한 후부터 임신 확인하러 가는 시기가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 십 번, 아니 수 백번씩 벅찬 희망과 막막한 좌절을 오가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게 아주 애가 달는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나라고 다를 바 있었겠는가. 당시에 난 아내 앞에서 기대에 차서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차분한 모습을 보이려 애를 썼다. 담담한 척했고, 혹시 임신이 되지 않았더라도 먼저 아내를 위로해주는 남편이 돼보려고 했었다. 아무리 그래 봐야 태연한 척하는 겉과는 달리 속은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지난 일이라 이렇게 글 몇 줄로 땡이지만 그땐 정말 뭘 해도 맨 정신은 아니었던 듯하다. 

  임신이 됐을까? 에이, 안 됐을 수도 있지 뭐. 그래도 됐으면 좋겠는데. 침착하게 기다려보자.

  무슨 일을 해도 임신 여부가 궁금할 뿐, 다른 일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가 않는 나날이었다.


  서로가 뻔히 이럴 줄 알았기에 배아 이식 후 나와 아내가 했던 약속은 병원에 가는 날까지 임신 테스트를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결과야 어떻게든 그 날 알게 될 텐데 굳이 그전에 사서 맘고생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아내 역시 중간중간 궁금해 미칠 노릇이었겠지만, 그래도 나와 아내는 어떻게든 다른 일에 집중하려고 애써봤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별 일 없는 척하면서 다시 병원 갈 날만 기다렸다. 아마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면 별 일 없는 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기 전날 밤, 난 잠을 못 잤다. 누워있어도 그냥 잠이 안 왔다. 굳이 자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냥 잠이 안 왔다.

  일어날 시간이 한참 남은 새벽에 잠에서 깼다. 채 뜨지도 못한 눈에는 뒤척이는 아내가 보였다. 벌써 깼나 싶다가도 아내 역시 잠이 안 오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뒤척였는지 아내는 내가 깬 걸 알아챘다. 그리고는 내 눈 앞에 자기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내 눈 앞에 갑자기 다가온 아내의 얼굴은 그저 쌩글쌩글 이었다. 이른 새벽 치고는 너무 밝은 표정이라 살짝 귀신같아 느낌이 들어 약간 놀라기도 했다. 갑자기 왜 이러지 라고 생각이 드려는 순간 한껏 들뜬 목소리로 아내는 잠에서 막 깬 내게 말했다.

  여보! 화장실 가 봐.


  사실 화장실에 가고 말 것도 없었다. 아내의 표정과 멘트만으로도 우리 부부가 지난 5년 동안 그토록 원하던 소식이 눈앞에 와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그 순간을 놓칠 수 있겠는가. 부랴부랴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다 떠지지도 않은 눈으로 어딘엔가 있을 임신테스트기를 손을 더듬어 가며 찾았다. 선명한 붉은 선 두 줄. 남들은 쉽게도 보고, 여러 번도 본다는 그 임테기의 빨간 두 줄. 얼마나 보고 싶었던 상황이었나. 모든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는 나도 쌩글쌩글 해져서 밖으로 나왔다.

  평소보다 한참을 늦게 잠들고, 또 한참을 일찍 일어난 날이었지만 그 날 전혀 피곤하지 않았었다.




  아내의 임신소식을 바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실 나와 아내는 시험관 시술을 한다는 이야기도 부모님에게 하지 않았었다. 이유는 혹시 모를 기대했다가 더 큰 실망을 하는 일을 부모님에게까지 안겨드리고 싶진 않아서였다. 그런 속상함은 우리가 감당하고, 엄마, 아빠에겐 곧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거라는 좋은 소식만 들려주고 싶었다.


  시험관은 그렇고, 임신 소식조차 바로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이유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소심해서 그런 건지,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그런 건지 어릴 때부터 좋은 일이 있으면 마냥 좋아하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의심과 걱정을 품었었다. 아내와 처음 교재를 시작했을 때도 두근거리는 설렘 반대편엔 이렇게나 좋은데 나중에 이별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다. 어디에 합격을 했다고 해도 공식적인 합격증 같은 게 내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뭔가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옹졸한 심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디선가 언뜻 이런 심리가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왜 너무 행복하면은 마냥 행복하기보다는 이 행복이 금방 달아나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 한 편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임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아마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임신 극초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리기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시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것이 소심한 나의 선택이었다. 아 내가 진짜 임신을 했구나 하는 안정감을 줄 합격증과 같은 증빙자료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나와 아내가 판단하기에 '안심하고 임신을 기뻐하고 주변에 알려도 됩니다.'를 증명할 증빙자료는 다름 아닌 아이의 심장소리였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가족의 등장을 가족들에게 말하기 적당하다고 판단한 날이 임신 6주 차쯤 있을 아기 심장소리를 듣는 날이었다. 일반적으로 안정기라 불리는 임신 16주 차를 얼핏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건 비밀유지가 너무 과하다 싶었다. 아무리 걱정이 많고 소심하다 해도 가족들한테 임신 16주가 지나서 말하는 건 좀...


  가득 찬 물컵을 들고 걷는 것처럼 조심조심하면서, 어떨 땐 별것도 아닌 거에 벌벌 떨면서 8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남들은 6주 차쯤이면 다들 심장 소리를 듣는 다는데, 우린 아기의 심장소리를 8주 차가 되어야 들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의사 선생님이 그때 들려줬다.

  처음 듣는 아이의 심장소리는 보통 심장소리를 뜻하는 두근 두근이라는 의성어랑은 전혀 딴 판이었다. 오히려 쿵쾅쿵쾅쿵쾅이 더 어울렸다. 빠른 박자에, 다소 거친 소리. 예상했던 소리가 아니라서 좀 당황했는데, 원래 그렇단다. 처음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금방 출산을 앞둔 지금까지 여러 번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는데 난 여전히 그 소리가 적응이 안되긴 한다. 지금껏 알고 있었던 두근두근이라는 의성어는 순 거짓말인가 보다.




  심장소리를 듣던 날, 지금껏 모아뒀던 초음파 사진 몇 장을 손에 꼭 쥐고 엄마 집에 갔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여동생네 부부도 모이는 자리였다.

  늘 그렇듯 우릴 반기는 부모님에게 다 멈추고 잠깐 와 앉아보라고 했다. 뭔 일인가 하고 모여있는 가족들 앞에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작은 봉투에서 초음파 사진 몇 장을 꺼내 보였다. 잠깐 동안 뭔가 하고 지켜보던 엄마는 상황 판단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 엄마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맺히더니 또르르 하고 흘러내렸다.

  손주를 많이 기다렸던 엄마였다. 며느리가 심적으로 부담될까 봐 아내에겐 아기 얘길 꺼내지도 못하고 나에게만 몰래몰래 답답한 마음을 여러 번 내비치던 엄마. 너 어릴 때 엄마가 먹는 걸 더 신경 써야 했다, 너 때려서라도 늦게까지 게임 못하게 했어야 했다 하며 기다리던 손주 소식이 늦어질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가며 자기 탓을 하던 엄마. 그런 엄마를 알고 있었기에 초음파 사진을 손에 쥐고 눈물을 닦는 엄마의 모습이 진심 찡했다.

  옆에서는 엄마를 따라 동생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조카가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을 테지만, 엄마의 눈물을 보고 내가 느낀 찡함보다 더 큰 찡함이 밀려와서 그랬을 것이다. 나보다 더 엄마와 가까웠던 동생이, 엄마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잠깐 훌쩍이는 시간이 있었지만 식구 모두가 들떠있고, 신나 있던 밤. 동그란 점만 보이는 초음파 사진을 몇 번이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신기해하던 엄마, 아빠를 보면서 뭔지 모를 뿌듯함이 생기기도 했다.

  그날 이후 8개월가량, 우리 식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온통 태어날 아기 얘기뿐이었다. 슈퍼스타도 이런 슈퍼스타가 없었다. 물론, 다 모여봐야 몇 명 안 되는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긴 하지만.


  쿵쾅쿵쾅하는 심장소리 하나로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많은 사람에게 눈물 날 만큼의 기쁨을 준 우리 아기에게 너무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태어난다는 걸 알고 소중하게 소중하게 자라주면 좋겠다.

이전 02화 드라마를 못 보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