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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Apr 11. 2021

부끄러워말고 얼굴 좀 보여주지

  아내는 원래 결혼상대의 외모를 많이 보려고 했다 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는 자기가 그렇게 따지는 얼굴은 하나도 안 보고 나와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얼굴 빼고 다른 점은 다 맘에 들어서 외모는 포기했다가 어쨌다나. 기가 막혀서 참. 난 이 말에 전혀 동의를 할 수 없다.

  우리 집엔 세상 어떤 고양이들 사이에 내놔도 절대 꿇리지 않을 잘생긴 고양이, 예쁜 고양이, 귀여운 고양이가 한 마리씩 있다. 아내는 자기가 만날 고양이들에게 외모운을 다 써서, 남편에게는 외모운을 못 썼다는 우스갯소리를 가끔씩 한다. 어이가 없어서 정말. 우리 고양이들이 잘생기고, 예쁘고, 귀여운 건 맞는데, 저 말의 뒷부분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아내는 그렇게 한 번씩 외모 타령을 하곤 한다. 그래도 그 모습이 밉상은 아니다. 말만 그렇게 하지 사람을 절대 외모만 가지고 판단할 사람이 아닌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도 하고 솔직히 훈훈한 외모가 주는 긍정적 요소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한들 나랑 결혼하면서 얼굴은 1도 안 봤다는 말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렇게 외모도 중요하다 생각하는 태어날 아기 얼굴을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다. 이왕이면 잘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굳이 잘 생겼는지를 보자는 것은 아니다. 눈은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닮았는지, 코와 입은 어떤지 보고 싶은 거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요즘은 배 속에 있는 아기 얼굴도 미리 보는 예비 엄마 아빠들이 많다. 대부분 정밀초음파를 보면서 처음으로 입체 초음파 사진을 통해 아기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블로그나 커뮤니티에는 선명하게 찍힌 아기 사진을 게시한 분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입체 초음 파이 물론 실물과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그래도 그렇게라도 아기 얼굴을 볼 수 있는 엄마 아빠들은 꾀나 흡족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아기는 다음 달이 출산 예정일인데도 여태까지 한 번도 얼굴을 비춰준 적이 없다.


  정밀초음파를 보는 날, 다른 것보다는 아기의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약간은 설래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정작 아기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 말이 두 손으로 얼굴을 딱 가리고 태반에 콕 박혀서는 좀처럼 얼굴을 보여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심 아쉬워하는 아내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의사 선생님은 이 각도, 저 각도 초음파기기 위치를 바꿔가면서 얼굴 사진 한 장을 우리 부부 손에 쥐어 보내려고 노력하셨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 산부인과 검진 때도 이 녀석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때는 두 손에 더해 두 발까지 얼굴까지 가지고 와서는 철통방어를 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얼굴 전체를 태반에 푹 박고 있어 도저히 볼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남들은 애가 태어나기 전에 다 얼굴 한 번씩은 본다는데, 사진을 들고 눈은 아빠를 닮았네, 코는 엄마를 닮았네 한 번쯤은 한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나나 아내나 어디 가서 부끄럼을 타는 성격은 아닌데 누굴 닮아서 이렇게 비싸게 구는지 모르겠다.


  임신 마지막 달이 되면서, 3주나 한 달에 한 번씩 가던 병원을 요새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고 있다. 3월 들어 매주 병원에 갔는데도 우리 아기의 얼굴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코로나 때문에 요새는 아예 나는 병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내만 병원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오고 있다. 난 병원 밖에서 아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아내는 매주 오늘도 축복이가 얼굴을 안 보여줬어라는 말과 함께 내게 돌아왔다. 결국 아내는 아기 얼굴 보는 것을 포기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태어나서 보는 게 낫겠다 싶은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잘 생긴 얼굴이기에 이렇게 궁금해하고 있는 엄마 아빠 속도 모른 채 비싸게만 구는 건지 모르겠다.




  10개월을 옆에 있었으면서도 얼굴 한 번 안 보여준 것이 서운해서 괜스레 툴툴거리긴 했지만 사실 건강하게만 태어나줬으면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만날 때 얼굴은 전혀 보지 않았다는 아내의 말은 여전히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축복이가 얼굴은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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