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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Dec 21. 2020

뱃속의 아이가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내의 임신 소식 맞이한 지도 어느덧 24주가 되었다. 

  처음 임신을 확인했을 때는 그렇게도 시간이 안 갔었다. 너무 행복해서일까, 기뻐하는 시간만큼이나 내게 찾아온 이 행복이 혹시라도 달아나버릴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시간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내가 조금만 평소 같지 않아도 바짝 긴장을 했고, 막상 하는 것도 없으면서 걱정은 태산이었다. 임신 초창기, 물이 가득 찬 컵을 들고 걷는 것 마냥 바등바등대는 내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보통 안정기라고 하는 임신 16주가 빨리 좀 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애달고 있어도 시간은 그리 더디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예전같이 시간이 훌훌 지나고 있다. 안정기는 산모와 태아뿐만 아니라 예비아빠까지 안정이 돼서 안정기인가 보다.


  임신 24주가 되면 해야겠다고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뱃속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24주부터는 아기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제일 잘 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란다. 그래서 첫째나 둘째가 있는 집에서는 옆에서 조잘대는 형, 누나들 덕분에 배 속에 아기도 안 심심하게 지낸단다. 그다음으로 잘 들리는 목소리는 아빠 목소리고, 그다음이 엄마란다.

  왜 이 순서로 아기에게 잘 들리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뱃속의 아기가 첫째인 우리 집에서 아기에게 가장 목소리를 잘 들려줄 수 있다는 사명감을 안고 24주가 되자 매일 책 읽어주기를 시작했다.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어대도 내 목소리야 들리겠지만, 아무래도 뭐라도 읽으면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나의 독서태교가 시작되었다.


 



  아기에게 처음 읽어준 책은 오래전 읽고 책꽂이 쉬고 있던 신경숙 작가님의 짧은 소설들이 모아진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잡음이 있던 작가님이지만 한 때는 그 작가님의 글들을 참 좋아했었다. 사실 다시 읽고 있는 지금도 정말 좋은 글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분량도 짤막짤막해서 두 새게 정도 이야기를 읽어주면 시간도 딱 알맞을 것 같았고, 내용도 잔잔해서 아내와 아기와 함께 읽기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한 줄 한 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로 대화는 많이 했었도 아내 앞에서 책을 읽은 적은 없었기에 처음은 여간 어색했다. 그런 어색함이 목소리에 묻어나는지 아내는 실감 나게 연기를 섞어보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했다. 

  어찌어찌 첫 번째 이야기가 지나고, 두 번째 짧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마당에 들락거리는 고양이들에게 챙겨줬던 사료를 알고 보니 까치들이 뺏어먹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때, 아내가 뱃속 아기가 엄청 움직인다며 내 손을 자기의 배에 가져다 댔다.

 


  한 달 전쯤부터 아내는 부쩍 태동을 많이 느꼈다. 자기 배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있는 아내를 보고 놀라서 뭐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기가 배를 발로 차면 손가락으로 배를 눌러 엄마도 대답을 보내는 거라고 했다. 배속의 아기랑 놀아주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에게는 자기 소식을 잘 전하면서도 아빠에겐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었다. 아내가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나도 얼른 손을 대봤지만 내겐 좀처럼 그 느낌이 전해지지 않았다. 아내가 태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직접 내 손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줘 봐도 소용이 없었다. 

  태동 이야기를 할 때면, 매번 물방울이 통하고 떨어지며 물 표면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이 난다며 눈이 똥그래지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이유모를 박탈감과 서운함만 느낄 뿐이었다. 벌써부터 아빠는 제쳐두고 엄마랑 편을 먹은 아기가 야속했고, 둔감한 내 손바닥 탓을 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 아내가 수 없이 많은 태동을 느끼는 동안 내 손으로 정확히 태동을 느낀 적은 딱 두 번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서운했는지 난 정확히 태동을 느낀 횟수와 순간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아내가 아기가 엄청 활발하게 놀고 있다는 말과 함께 배로 내 손을 가져갔을 때도 솔직히 난 별 감흥이 없었다. 엄마에게만 인사를 하는 아기에게 은근히 삐져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그전까지 두 번 느꼈던 태동을 그때만 대여섯 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기분 탓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아니었다. 분명 내 손바닥을 향해 뽕뽕하고 두드리는 아기의 신호였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전과는 다른 활발하고 우렁찬 움직임이 너무 신기했다. 눈이 커지고, 입이 벌 졌다. 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야릇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가? 나의 비루한 표현력으로는 어떻게 말하기 힘든 그런 기분 좋음이었다.




  아내 역시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태동을 느껴보긴 처음이란다. 나만큼이나 아내도 눈이 동그래져있었다.

  책을 다 읽어주고 나서 자연스럽게 아내와 난 아까 책을 읽을 때 왜 아기가 그토록 신이 났는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처음엔 아기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며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이야기에 나온 고양이가 좋아서 그렇게 신나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아기가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아빠 목소리를 좋아하는 아기에게 날마다 책을 읽어줘야겠다. 이제부턴 날마다 아기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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