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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Apr 11. 2021

기다림의 미학

  어릴 때부터 심한 비염을 달고 살던 나는 병원에서 기다리는 일이 익숙했다.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면 꼭 겪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훌쩍이는 코를 고쳐보려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 가니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병원은 물론이고, 옆 동네에 있는 용하다는 이비인후과나 한의원은 버스까지 타고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잘 고친다고 소문난 병원엔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나보다 먼저 온 앞사람이 몇 명이나 남았는지 세어 보면서 하염없이 기다렸던 기억도 난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다. 그 날 갔던 이비인후과엔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기다리다 지친 나는 결국 진료를 마치고 가야 하는 한자학원의 숙제를 가방에서 꺼냈다. 오죽 지루했으면 학원 숙제를 꺼내서 거기서 했을까. 책상도 없이 소파에 쭈그려 앉아 한자를 쓰고 있던 나를 보고 옆에서 같이 기다리시던 아저씨는 한자 잘 쓴다고 칭찬을 해줬다.

  몇 년 전까지 살던 집 앞엔 유명한 이비인후과 하나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실력이 좋았던지, TV에도 여러 번 출연했던 걸로 보였다. 방송 당시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병원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진료를 하려면 두세 시간도 기다려야 했던 병원이었다. 그렇게 사람이 많으면 의사 선생님도 지칠 법도 한데, 막상 진료실에 들어가면 오래 기다렸다는 말을 시작으로 친절한 진료를 받고 나왔었다. 생각해보면 괜히 사람들이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그 병원에 가려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병원 하면 떠오르는 여러 경험이 있을 텐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기다림이 아닐까 한다. 특히 내 기억 속에서 최근 10개월 간 병원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장소였다.




  시험관 시술을 하기 위해 찾은 병원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유명한 난임 병원이었다. 그래서일까 찾는 사람들도 많았고, 당연히 기다리는 시간도 끝이 없었다. 접수를 하고 원장님을 만나려면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가끔씩 간호사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말 고는 조용한 병원 대기실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뭐해 항상 그냥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그래서 병원을 갈 때면 스마트폰 배터리를 반드시 꽉 채워서 가야만 했다. 손가락으로 톡톡 휴대폰 화면을 봤다가, 또 창밖을 멍하니 봤다가, 그다음엔 벽에 걸린 TV도 봤다가. 그래도 더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다.

  멀뚱멀뚱 기다리다 보면 병원을 찾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배 주사와 아이스팩이 담긴 작은 가방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묘한 동질감이 들기도 했고, 임신 확인서나 초음파 사진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료실에서 간호사 분이 나와서 아내 이름을 불렀다. 조금 김이 빠지는 건 그렇게 기다려서 막상 들어선 진료실에서 있는 시간은 대부분 10분도 채 안됐다. 아내는 이걸 보고 아이돌 팬사인회 같다고 말했다. 끝도 없이 긴 줄 기다리고 기다려서는 아이돌 얼굴 잠깐 보고 악수하고 끝나는 사인회 말이다.



  무슨 복인지 시험관 시술 결과가 아주 좋았고, 그 이후론 병원도 난임 전문병원에서 산부인과로 옮기게 됐다. 병원이 바뀌었어도 병원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건 여전했다. 병원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고 놀라는 것부터가 진료의 시작이었다. 심각한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라고 하는데 매번 아내와 같이 산부인과를 가면 두, 세 시간 걸려 진료를 받고 나오니 정말 그런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나마 산부인과 대기실은 조금 웅성웅성 거리는 분위기라서 아내와 대화도 하면서 시간을 죽이지만 지루하긴 마찬가지다. 진료실 문 옆에 대기자 이름이 순서대로 나열된 모니터 하나가 있었는데, 아내 이름 위에 적힌 이름들은 뭐 그렇게 안 없어지고 있던지. 아까도 분명 7명이었는데, 다시 봐도 7명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 번씩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없는 채로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큰 낭패였다. 긴 시간을 병원 벽을 쳐다보고 명상을 해야만 했다. 병원에 갈 땐 꼭 휴대폰 배터리를 가득 채워가도록 하자.


  그나마 예전에는 아내와 같이 병원에 들어갈 수라도 있었지, 한 달 전부터는 보호자는 병원도 못 들어가고 있다. 코로나 때문이다. 예정일이 한 달 정도 남자 일주일마다 한 번씩 병원에 가고 있는데 난 매번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아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한 번은 날씨가 좋아서 아내가 병원에 들어가고 병원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고 걷고, 걷고, 또 걸어도 아내는 병원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혹시나 하고 하루 걸음수를 볼 수 있는 어플을 열어봤는데, 만 걸음이 훌쩍 넘어있었다. 당연히 0걸음부터 시작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카운트된 걸음 수가 만 걸음이 넘다니.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래도 가장 길었던 기다림은 아내가 난자 채취를 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 날 전까지 아내는 2주 정도를 매일 같이 배에 주사를 놨다. 어떤 날은 주사를 두 개씩 놓은 날도 있었다. 배에는 여기저기 주사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과정 하나를 마치자마자 아내는 난자 채취를 해야 해서 시술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시술실에 있는 동안 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감성이 뒤엉킨 마음에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건강하지 않아서 고생을 하고 있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그렇게 끝없이 양보를 하고 있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 모든 시험관 시술이 잘 끝나길 바라는 간절함. 여러 감정들은 날 가만히 앉아있게 두질 않았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나와 병원 주변 길 가 여기저기를 걷고 걸었다.

  간호사가 다시 시술실 앞으로 오라고 했던 시간에 맞춰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시술 과정에서 전신마취를 해서 아직은 마취 기운에 몽롱해서 나온 아내가 어찌나 고맙던지. 또 어찌나 미안하던지. 유난히도 길었던 기다림이었다.




  그래도 기다림 끝에 낙이 온다고 하고, 존버는 끝내 승리한다고 하지 않던가. 긴 기다림의 터널의 끝엔 눌 달콤함이 있었다. 얼마를 기다리더라도 그 잠깐 듣는 아기 심장소리면, 손에 쥔 작은 초음파 사진이면 그저 상글벙글하다. 이런 기다림이라면 얼마든지.


  그래도 꼭 기억하자. 병원에 갈 땐 휴대폰 배터리를 꼭 꽉꽉 충전해서 가자. 뉴스에서 보고 듣던 저출산 문제가 정말 있는 게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산부인과엔 사람은 얼마나 많고, 대기시간은 또 얼마나 길던지.

  시간을 때울 뭔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끝이 달콤해도 어쨌든 기다림은 지루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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