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예정일이 이젠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임신 마지막 달이다 보니 아내의 배도 볼록하니 많이 나와있다. 임신한 아내의 신체에 변화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아직은 한껏 솟아있는 아내의 배를 보면 낯설고 신기하다. 다음 달이면 아빠가 될 텐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서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임신한 아내의 배가 나오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조금 루즈하게 옷을 입으면 전혀 임산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얼핏 임산부들도 배가 많이 나오는 사람도 있고, 조금 나오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아내의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달에 눈에 띄게 아내의 배가 나왔다. 한 번씩 보면 놀라울 때가 있었다. 물론 그 놀라움에는 우리 아기가 잘 크고 있구나 하는 기쁨 마음이 많이 섞여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 처형과 처제 또한 눈에 띄기 나온 아내의 배를 볼 때마다 연신 흐뭇해했다. 아무래도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모양이다.
직장에서나 길거리에서 임산부들을 본 적은 있는데, 딱히 그 임산부들이 몇 개월 차인 지, 그 시기에는 배가 얼마큼 나왔는지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따라서 임산부들의 배가 얼마나 나오는지에 대한 기준이 내겐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느낌상으론 왠지 아내는 배가 많이 나온 편 인 듯했다. 이 말을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는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아내의 몸매와는 전혀 관계없이 아기에 대한 이야기 었을 뿐인데 듣는 아내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나 보다.
하긴 이유야 어찌 됐든 본인 배가 나왔다는데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기가 태어나면 다시 아내가 날씬해질 수 있게 어떻게든 도움을 줘야겠다. 같이 운동을 하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애를 봐야 하니까 힘들 것 같고, 맘 편히 요가라도 맘껏 할 수 있게 그동안 아기라도 잘 보고 있어야겠다.
배가 볼록하게 솟으면서 아내의 배 주변은 살도 많이 텄다. 많은 임산부들이 순식간에 부른 배 주변의 살이 트는 것을 대비해서 미리미리 튼살크림을 바른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봤을 땐, 임신 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배에도 튼살크림을 열심히 발랐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아내의 배에 튼살크림을 발라줬다. 배가 조금씩 나와도 튼살이라고는 하나 보이지 않았었다. 처음엔 아내 몸이 살이 잘 트지 않거나, 미리미리 튼살크림을 발라서 그러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배에 불긋불긋한 튼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까만 임신선과 함께 배 주변에 빨갛게 보이는 튼살을 보면서 아내는 종종 울상을 짓기도 했다. 튼살 걱정은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울상을 짓는 아내를 보니 나도 속이 상했다.
여기저기 빈틈없이 아내 배에 튼살크림 잘 발라주고, 아기가 태어나면 튼 살들도 최대한 없앨 수 있게 해 줘야겠다. 용돈을 긁어모아서, 비싼 크림을 사주면 되려나.
임신을 하고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아내의 몸에는 변화들이 생겼다. 배도 나오고, 몸무게도 늘고, 살도 트고, 손발이 붓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기를 만나기 위한 기분 좋은 변화 들일 수 있겠지만, 아내는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의 몸을 많이 걱정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금세 예전처럼 날씬해지고 위로해주는 것뿐이다. 출산 후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줘야겠다. 용돈을 더 많이 모아놔야지.
임신 후 아내의 신체 변화 중 가장 신기한 것은 먹는 것이었다.
아내는 나는 너무 다른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와 내가 가장 큰 선호 차이를 보이는 음식은 빵이었다. 빵이라면 눈이 뒤집혀서 먹는 나인데 반해 아내는 빵에는 일절 손도 안 댔다. 한 번씩 장을 볼 때면, 아내는 먹어 보고 싶게 생겼다며 직접 빵을 고른 적이 자주 있었다. 먹고 싶다고 사놓고도 정작 아내는 한 입 먹어보고는 맛없다며 내게 빵을 내밀었다. 그러면 나는 또 그 빵을 좋다고 먹어치웠다. 어쩌면 내가 결혼하고 나서 살이 찌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아내의 또 다른 특이한 식성은 귤을 아예 안 먹는 것이었다. 귤뿐만 아니라 귤 비스무레한 종류는 아예 입에도 안 댔다. 밀감, 오렌지,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등. 내 입맛에는 그저 맛있기만 한데 아내는 한 번 베어 물기만 하면 얼굴을 팍 찡그리면서 셔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못 먹겠다며 마다했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결혼까지 한 아내였지만 막상 그런 모습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귤, 밀감, 오렌지들은 쳐다도 안 보던 아내는 임신을 하더니 엄청 잘 먹게 되었다.
먹기 시작한 건 입덧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아내는 욱, 욱 하면서 구역질을 하는 입덧을 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입덧이 아예 없지도 않았다. 아내의 입덧 증상은 속이 어쩔 땐 타는 듯이 쓰리고, 또 어쩔 땐 느글느글 느끼한 기운이 도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니라서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입덧을 하는 시기에 아내의 속은 그랬다고 한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이런 것 또한 입덧의 한 증상이라고 했다. 증상이 심해는 아내는 입덧으로 고생을 좀 했었다.
아내가 입덧으로 인한 타는 듯한 속이나 느끼한 속을 달래는 방법은 이를 조금이라도 잡아줄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그 시기 아내가 가장 많이 찾았던 음식이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들과 밍밍하면서도 짭조름한 아이비라는 비스킷이었다. 이것들 말고도 아내의 속을 좀 달래줄 음식들이 이것저것 있었는데 그 당시 아내는 채소 듬뿍 담긴 샌드위치와 과자를 많이 먹었었다.
또 속을 좀 편하게 해 줄 음식을 고민하다가 찾은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귤이었다. 평소에는 손도 안 대던 귤이 먹고 싶다면서 하나를 까먹더니 아내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묘한 표정을 지었었다. 아내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귤을 먹으니까 속이 상콤(?) 해지는 게 매우 개운하단다. 과일 한쪽에 속이 편해지는 것도 신기한데, 평생 먹지도 않을 것 같았던 귤이 이렇게 맛있는 게 너무 신기하며 아내는 눈을 똥그랗게 떴었다.
쳐다보지도 않던 각종 귤류 과일들을 아내는 볼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엄마네 집이나, 동생네 집에서 식사 후 후식으로 나오던 오렌지도 하나 먹어보고, 천혜향도 하나 먹어보고, 밀감도 하나하나 까먹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나에게 귤 사러 마트에 가자고 까지 했다. 마트에 간 아내는 한 망, 한 봉지도 아니고 통 크게 밀감 한 박스를 사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내 돈 주고 내가 밀감을 살 줄 몰랐다면서 스스로를 의아해하던 아내는 시간 날 때마다 주섬주섬 밀감을 깠고, 한 박스도 금세 먹어치워 버렸다.
아내와 밀감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신기한 조합이다
결혼하고 4년 넘도록 본 적이 없었던 아내의 손발이 붓는 모습을 최근에야 봤다. 30년 넘게 안 먹던 귤을 냠냠 잘 먹는 모습도 봤다. 확실히 임신이 보통 일이 아닌가 보다. 나야, 아무리 옆에서 같이 있어준다고 한들 결국은 관찰자일 뿐이다. 10개월 채 안 되는 시간에 이 모든 변화들을 저 작은 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는 아내는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마트에 서서, 더 달달할 것 같은 밀감을 고르며 두리번두리번거리는 아내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해맑게 우유에 오레오즈를 말아먹고 있는 아내 이마에 뽀뽀를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