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만남 기록
두 번째 만남 전까지 남은 시간은 7일. 그 일주일 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해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소개팅 다음 날 바로 연락을 주고받기 마련인데, 그날 한 통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연락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연락하는 게 편할 수 있지만, 상대는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어쨌든 다음 만날 날을 당일날 정했으니까, 두 번째 만남 이후에 더 확실해지면, 그때부터 연락을 주고받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 반응은 달랐다. 그래도 매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스몰 토크도 하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서로 일상도 공유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갑자기 마음이 어려워졌다. 그렇게 토요일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온갖 생각에 빠졌다. 상대방은 나를 한번 더 보고 싶긴 한데, 매일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는 아니었나? 이런 생각에 빠져서 마음이 괜히 불안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도 됐지만, 그 연락을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주일 예배 전에 잠시 기도를 했다. 조금 웃기긴 하지만, 만약 우리가 만나게 돼서 서로에게 신앙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지지하신다면 오늘 예배가 끝나고 먼저 연락이 오게 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나도 내 걱정을 내려놓고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확신을 가져도 주님의 지지하심이 없으면 멈추는 게 나으니까.
믿음으로 기도는 했지만, 사실 기대는 안 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정말로 연락이 와있었다.
"교회 잘 다녀왔어요?"
너무 놀라서 입을 틀어막고 옆에 있는 친구한테도 연락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두 번째 만남 전까지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매일 연락은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큰 확신은 사실 없었다. 오빠는 일단 표현에 서툰 사람 같았다. 연애를 너~무 오래 쉬어서 감을 잃은 것 같다고 하긴 했지만, 어쨌든 표현이 부족하니까 이 오빠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연락만으로는 확신을 얻기에 쉽지 않았다. 아마 이전의 나였다면, 이런 상태에서 내 마음을 더 열지 않았을 것 같다. 표현을 받고 싶은 게 여자의 당연한 심리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내 반응이 달랐다. 처음 만났던 날 오빠는 자신이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하다고, 대신 한번 마음을 열면 다 쏟아붓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전까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차갑다고 오해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 연락을 주고받는 것만 두고 생각했을 때는, 내 이전의 연애와는 너무 다르긴 해서 나도 낯설고 아리송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다고 이 오빠의 마음에 대해서 나 혼자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참 신기하다. 내 성향상 그게 안 되는 사람인데 말이다.
일주일 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래도 서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친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 당일, 오빠는 퇴근하고 내 회사 앞으로 왔다. 오빠는 살면서 코엑스에 처음 와본다고 했다. 그 처음을 내가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밥 먹으면서 서로 말도 놨다. 그리고 연락에 대해서 내가 어떤 점을 아리송하게 느꼈고, 심지어는 살짝 서운하기까지 했는지 나눴다. 오빠는 앞에서 계속 웃었다. 이런 감정이 너무 오랜만이라 이상하고 또 이상하다고 신나서 웃었다.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지켜보겠다고, 나도 좋은 마음이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고 웃어넘겼다.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말한 것 자체가 이미 안 적당한 걸 수도) 어쨌든 밥 맛있게 먹고 코엑스 필수코스인 별마당 도서관도 구경했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책도 선물해 줬다. 오빠가 올해 책 10권 읽는 게 목표라고 해서 꼭 주고 싶었던 책을 선물해 줬다. (문상훈-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오빠는 책 선물 처음이라고, 엄청 감동받았다며 너무 고마워했다. 내일 일본 여행 갈 때 이 책을 갖고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오빠의 그런 반응이 참 고마웠다.
금요일마다 송도 본가로 가는 나를 배려해서, 오빠는 어차피 집으로 가야 하니까 같이 송도로 넘어가자고 했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센트럴파크로 갔다. 대중교통을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같이 갔는데, 혼자였으면 지루했을 법한 길이 멀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지하철을 갈아탈 때마다 벽 쪽에 기대라고 배려해 주는 오빠에게 고마웠다. 센트럴파크에 도착해서 우리는 가볍게 산책을 하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 집 앞에서 오빠가 다시 돌아갈 버스를 같이 기다렸다. 그런데 오빠가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때? 나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갑작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나눈 이야기라 그 앞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나는 오빠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왜 버스 2분 남았을 때 해~"
"다음 버스 탈게."
"우리 되게 청춘 같다. 학생 때 연애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만 누릴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정류장에 앉아서 마저 이야기를 나눴고, 오빠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사실 걱정이 됐어. 너는 취미도 많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면서 지내는데 내가 그걸 다 맞춰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어."
"오빠 생각보다 걱정이 되게 많구나. 나 생각하는 것만큼 부지런하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야. 그냥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에 잡생각 안 하려고 취미생활을 했던 거고. 그리고 그걸 난 다른 사람한테 강요하지도 않아. 나는 그동안 연애할 때 맞춰주는 게 더 익숙했던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거 때문에 날 만날 수 있을지 말지 고민했다는 거야?"
"아니, 내가 널 만나는 걸 고민하진 않았어. 그냥 내가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나를 두고 한 고민이었던 거야. 나는 너 만나보고 싶어. 그래서 더 만나고 싶어."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당돌해!"
"내 주변에 이렇게 겸손한 사람 처음 봐. 그리고 무엇보다 기독교 가뭄의 시대에 이런 사람 만나는 거 쉽지 않아."
그리고 오빠는 내 손이 너무 차갑다며 살짝 잡아줬다. 오빠를 버스에 태우고 그렇게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연락만 할 때는 이런 오빠의 마음을 느끼기 쉽지 않았는데, 대화를 하니까 확실히 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 부모님과 마저 나눈 대화는 내게 더 힘이 됐다.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만남은, 나의 멘토 목사님, 부모님의 지지가 필수적이고 다음으로 상대방이 주는 표현과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날 대화는 조금씩 그 안정감을 채워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 연애에 대한 상처는 누구나 안고 사는 법이지만 나는 그 상처 때문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게 두려웠는데, 오빠와 만나서 보내는 시간이 주는 즐거움은 그 두려움을 뛰어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알아가면 되겠다.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하면서.
(그런데 오빠는 이날의 대화가 고백이었다. 그리고 이날부터 만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날부터 만남이 시작된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