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지요, 이렇게 쓰는 줄 23

이젠 당신도 없을 거고 당신 이후도 없을 거야.

by 김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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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소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기독교인. 꿈에서 나오고 이게 꿈인 줄 그때 알았다.


332. 자리를 비켜줬는데도 앉지 않는 이유. 그건 고집일까. 자존심일까. 양심일까. 변명이다. 난 당신의 자리를 뺏으려는 게 아니라는.


333. 버스에서 편한 자리가 나면 그 자리로 이동한다. 카페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리는 자리일 뿐 거기에 누가 앉든 기능한다.


334. 당신이 없고 당신이 있는 자리에는 오로지 당신뿐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무엇이든 해보라는 말. 무엇이든 잘 되지 않았다.


335. 우리가 이뤄낸 속기. 다 날아가버린 문장. 살아내는 방법 다음에 사라지는 방법도 같이 배웠는데 생각해 보면 온 곳에는 불화였다.


336. 가슴 아픈 평화와 긴 침묵. 벽돌로 쌓은 세상과 어는 날 전부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줄곧 이어졌다. 사랑이었나. 사랑이었다고 믿으면 그게 전부 사랑처럼 느껴지는 나날들이었다.


337. 자주 당신이 없듯 굴었다. 나는 당신 아닌데도 당신이 아니라고 소리치는데도 돌아보면 전부 그곳에 있었다.


338. 이젠 당신도 없을 거고 당신 이후도 없을 거야. 옛이야기. 지난 소문들을 쫓아 확인해 보면 전부 덧 없이 느껴졌다. 시린 이름들. 영혼을 닮은 문장들.


339. 실은 싫은 얘기를 하기 싫어서 나쁜 인간이 되기 싫어서 모든 방법들이 유보되거나 유기되었다.


340. 참 착하게도 말해줬구나. 왜 그렇게 심한 말은 하지 않았니. 난 그게 궁금했어. 네가 있는 곳에서는 늘 내가 있었는데 말이야.


341. 오늘의 노래. 오늘의 노래라고 하니 정말 오늘 불러야 할 거 같은 노래.


342. 두 손을 잡고 정답게 대화를 하고 있는 연인들이 모두 떠나고, 지나가고 남은 기억들이 발 밑에서 뒹군다는 상투적인 표현과 회상.


343. 나는 잘 가라고 하고 싶었네. 끝내고 나서 전부 내던지고 싶었어. 바라는 일이 바라는 대로 이뤄지고, 결정적으로 취소되기를 바랐어.


344. 누군가에게는 결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결정적인 사람을 두고 싶지 않았다.


345. 첫과 첫 다음이 자꾸 일궈졌다. 멍한 인간과 흐리멍덩한 인상이 남아서 고작 이런 게 남고 말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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