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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Jan 13. 2024

뜸 들이다.

적정한 숙성의 시간

 요즘은 가벼운 식사로 흰 죽을 많이 먹고 있다. 가끔 r을 위한 아침식사로도 준비하고, 점심에 주로 먹었지만 저녁에도 자주 내놓았다. 환자식으로 먹는 것은 아니어서 간장과 포 뜬 무짠지와 김치를 기본으로 고기와 보통 식사 반찬들과 같이 먹었다. 흰 죽의 장점은 속이 편하다는 것과 눈 내리는 겨울에 국 없이 따뜻하고 보드라운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료도 항상 준비된 쌀이 있고 이 쌀이라는 놈은 서울 사는 우리의 매일의 식사로 충분하고 건식 자재로 다루기도 쉽다. 여느 때보다 여러 번, 주물냄비 하나를 올려놓고 밥을 해서 물을 붓고 나무 숟가락으로 저어 죽을 끓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다 된 밥의 맛과 그 맛을 풀어내고 한 수저 떠서 입에서 오물거릴 때의 농도 같은 것들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외친다, '잘됐네!'. 관심 가지고 여러 번 하다 보면 이런 즐거운 순간이 온다. 이렇게 한동안 흰 죽을 먹으면 맛의 기준을 잡을 수 있다. 극적인 맛들의 자극이 달려오고 그걸 구분하게된다. 여러모로 적정하게 뜸 들이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쌀을 담가서 불리고, 밥을 하고 저으면서, 맛을 보면서) 생각하는 말이 ‘뜸 들이다’이다. 쌀을 씻어서 물에 불리는 것도 뜸 들이는 것의 하나이다. 밥을 하면서 뜸을 들이고 물을 더해 끓이고 다시 뜸을 들인다. 세 번의 뜸 들이는 시간 동안 마른 쌀 알이었던 것들이 끓어오를 준비를 하고, 익어서 맛이 들고 말갛게 풀어 저서 맛을 퍼트린다.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가 적절한 질서를 가지며 다시 배열되는 시간, 잠시 기다려주길.



뜸-들다

(찌거나 삶는 것이) 속속들이 푹 익다.

뜸-들이다

1. 뜸이 들게 하다. 잘 익게 하다.

2. (하던 일을 잘 다지기 위해) 한동안 두고 기다리다.


익다

1. 열매나 씨 따위가 다 자라서 여물다.

2. 날것이 뜨거운 열을 받아 그 성질과 맛이 달라진다.


동아 새국어사전 제3판


 이런 관련된 말 중에 ‘뜸 들이지 말고’라는 표현이 있다. 이 얼마나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아쉬워지는 순간이 있을까 싶다.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면 조금 더 차분하게 정리된, 어쩌면 적절하게 조율된 필요한 얘기를 말하고 들을 수 있을 텐데. 뜸 들이는 시간은 드립커피를 만들 때도 필요했다. 스테인리스 필터에 간 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을 찬찬히 적시고 시간을 들여서 뜸을 들인다. 약간 익히면서 맛을 주고 그 향과 맛의 농도를 높여서 따뜻하고 맑은 물에 추출되기 좋은 상태를 만든다. '거 그렇게 급하게 말하지 말고, 뜸 들이쇼!'


숙성과 성숙


 몇 번 요리글을 적다 보면 '숙성'이라는 말을 쓰게 되고, '에이징'이라는 말도 맴돌고 또 '성숙' '완숙' 단어를 찾아보고 그것들을 구분해보려고 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에이징'이라는 단어를 숙성과 성숙 둘 중 하나로 고치려고 고민하다가 보다 전문요리 세계에서의 말을 깊이 파악할 여력이 없어서 '에이징'이라고 그대로 쓰기도 했다. 같은 한자를 쓰는 숙성과 성숙이라니 조금 재미있는 부분이다. 뜸-들이기도 짧은 숙성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숙성하기 위해, 충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하던 일을 잘 다지기 위해) 한동안 두고 기다린다."  뜸과 들이기는 띄어 써야 한다고 한다, 비워짐이 필요하다. 겨울은 뜸 들기에 적절한 계절인 것 같다.



아니, 00 가만히 뭐 하고 있어?

잠시만요, 뜸 좀 들일께요! 기다리숑.

그래도 너무 오래인 거 아니요?

그 말도 맞네요.



토요일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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