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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Dec 24. 2023

흰죽과 간장

쌀을 불려서

밥을 하고

물을 더하고

불을 올려서 끓인 후

죽을 담습니다.



흰 죽 한그릇과 간장 종지를 앞에 두고 맛을 본다. 숟가락으로 뜨면 김이 모락 난다. 입 안에서 부드럽고 말간 것 사이로 서걱이는 밥알이 바스라진다. 간장을 조금 떠서, 죽 위에 얹고 또 한스푼 떠서 맛을 본다. 달여진 검은 맛이 퍼저나 가면서 단 것도, 담은 것도 같은 것이 흰 죽과 맛의 교환을 시작한다. 서로가 스며들어서, 꿀떡.


얼마 전에는 밤밥을 해서 밤죽을 했었다. 잘 익은 밤과 밤맛이 스며든 밥을 먹는 것도 좋았는데, 거기서 더 묽게 풀어지면서 밤의 맛이 맑아졌다. 밥으로 먹었을 때 보다 밤의 맛을 더 알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해서 그 다음에는 밤을 두배로 넣고 만들어보았는데, 왠지 모르게 매력적이지 않아서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먹었던 밤죽은 환상적이었는데, 그 맛이 다시 나질 않는 건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흰죽은 맛을 포용한다는 것이다. 죽을 힘으로 맛을 흐트러트리고 나는 그 맛을 오물오물 뜯어본다. 


얼마 전에는 계란을 삶아 간장에 달였다. 간장에 삶은 달걀을 넣고 볶다가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무를 넣고 같이 졸였다. 내가 간장절임 해 본 다른 것으로는 바질잎이 있다. 바질잎과, 콩잎, 방울토마토와 다시마를 채우고 간장을 끓여서 부었다. 간장에 재워진 맛들은 오래 무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간장을 살 때는 성분이 제일 단순한 것으로 산다. 우리 윤여사님은 간혹 집에서 간장을 달이기도 했는데, 그 간장의 진하고 투박한, 달여진 메주의, 콩의 그리고 소금의 맛이 요리를 살렸다. 그렇게 좋은 것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가 명절이나 제사 때 짠하고 나타난다. 간장은 자기 맛을 나누면서도 본래 재료의 맛을 단단하게, 오래 유지하게 해주는 ‘살리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 두 대단한 음식의 만남인 흰죽과 간장은 단순한 조합이지만 강력하다.



흰죽과 간장


살림의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 한그릇.



오늘의 요리 조리

첫째는, 재료의 맛을 알고 싶으면 흰죽을 끓입시다.

둘째는, 재료를 오래 먹고 싶으면 간장에 달입시다.


자세하게 적어 본 요리법 2인분

쌀 100gX2인분 (종이컵 2/3)을 씻어서 300리터 정도 물을 더해 10분 불린다. (손등 인체 계량)

솥에 쌀을 안치고 뚜껑을 덮고 중간 불로 끓이다가 4-5분 후 끓는 소리가 나면 뚜껑을 열어 한번 저어주고 불을 약하게 줄인다. 10분 기다렸다가 뚜껑을 열고, 다 된 밥을 섞고 물을 두 배 600리터 정도 넣고 불을 올려서 끓인다. 한번 끓은 후 불을 줄이고 가운데 모인 거품을 걷어낸 후 3분 정도 더 익히고 잘 저어서 담는다.


밥을 해서 죽을 하는 것은 j의 방법이었는데 

밥이 잘되어서 구수한 맛이 더해지면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흰죽을 한 그릇씩 나눠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j가 말했다. 

'산의 계곡, 꽁꽁 언 냇가 아래로 물이 또로롱또로롱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동파방지를 위해 부엌 수전을 열어 놓아서 물이 흐르고 있다. 

산장에 사는 것 같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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