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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Dec 02. 2023

이곳에서 자란 것들

텃밭

 이미 비운 곳이지만 문이 닫히기 전에 텃밭에 다녀왔다.


 올해만큼 텃밭 일지를 이어서 쓴 적이 없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2020년 여름을 보내고는 두 해 동안은 텃밭을 분양받지 못했다. 우리는 무언가 다른 일이 생기려나 보다 했고, 내가 그중 1년은 외부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글도 올리지 않았던 기간이 있었다. 오랜만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 일곱 번째, 일곱 번의 해를 보낸 텃밭이다. 그래서 자라는 것들을 보면서 그곳에 대해 글을 남기는 일은 새로움을 지켜보는 여유가 있었다. 무언가 알아야 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일도 없었고 그러기보다는 나름의 요령도 가지고 있었다. 큰 설렘보다는 작은 변화를 눈여겨보았고, 가득 채워서 키우자는 생각도 없어져서 편하게 뿌려 놓고 자라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알았던 것을 잊었다는 것을 알았고 잊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너와 나의


 한평 남짓한 텃밭을 j와 나, 그리고 이번에는 마미까지 세 사람이 돌봤다. 때맞춰 식물을 심을 때는 j와 내가 주로 했는데, 내가 수확도 많이 하고 자주 들여다보았지만 밭을 돌보는 것은 세 명이 각자 편한 시간에 훑어보면서 필요한 일을 했다. 역할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j는 가지치기를 했고 마미는 물을 주셨고 나는 잡초를 뽑았다. 어느 때 가보면 땅이 젖어 있었고 어느 때 가보면 말끔해져 있기도 했다. 예전에 이 작은 밭의 잡초를 뽑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로 여겨졌었다. 잡초가 눈에 띄게 자란 날 요령 없이 햇빛 쨍쨍한 오후에 마른땅의 잡초를 뽑겠다고 사서고생하면서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기운은 기운대로 다 쓰고 시간도 쓰고 개운치도 않은 날이었다. 이걸 해 놓고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바쁘고 바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날은 더웠다. 그러나 적절한 날에, 잡초들이 뿌리를 깊이 내리기 전 그리고 비가 온 다음에 가서 슉슉 뽑아내고 나면 신경 쓰지 않아도 관리할 만큼이 되었다. 그러면 어느 때부터는 크게 자라는 것들이 없으니 적당히 같이 지내면 된다.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조금씩 정리가 되어있으니 힘에 부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다른 일들도 생각해 보니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금방 되는 일은 없다는 걸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 같다. 잠시 들러서 바람 소리를 듣고 손으로 바질과 로즈마리를 쓰다듬고는 길을 걸었다. 나는 오전에 주로 갔고, j와 마미는 오후에 주로 갔다.  


 이번에 만난 이웃 밭의 아저씨는 식물들을 정말 잘 가꾸셨기 때문에 그걸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다. 질서 정연하고 빈틈없는 그곳과 우리 밭을 같이 보자면 그와 같은 우연이 또 없을 정도로 대조적이었다. 부지런하게 날에 따라 맞춰지는 세심-수동텃밭시스템, 우리는 없는 식물들과 그 꽃들을 구경하고 덩달아 우리 식물들도 잘 돌보았고, 집에 가져와서 꽃병에 꽂아두기도 했다. 따라온 곤충들 달팽이와 애벌레, 풍뎅이를 다시 놓아주는 일도 해야 했다.


 이런 나의 텃밭 관찰은 지난 시간의 '나름텃밭노하우'가 쌓인 것이다. r이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중학교를 보내고 지금은 고3을 앞두고 있다. 어릴 적에는 밭에도 잘 따라오고 이웃밭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낸다면 '아- 그랬었지~' 말하곤 빠르게 다른 주제로 전환이 될 것이다. 중학교 때는 텃밭 옆이 학교여서 '점심때 밭에 가서 물 줬어?' '서리 해가는 사람 없는지 잘 살피고?' 하며 엉뚱하게 묻곤 했었다. 이번 개장하는 날에 같이 가서 상추 모종을 심었는데, 흙을 파내고 모종을 척척 심는 것을 보고는 조금 놀랬다.


 텃밭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올해의 얘기들을 되짚어보았다. 이맘때는 꼭 작은 마당 있는 집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씩 하게 되지만 크게 아쉬울 것은 또 아니다. 텃밭의 문이 닫히고 땅은 얼었다가 녹았다가 추위가 물러가면 뒤집어지고 흐트러지면서 봄을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관리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개장하는 날 '짠' 하고 준비가 끝나는 것이 나눔 텃밭의 홀가분한 점 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 때를 대비해서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를 의논하곤 한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넣다 보면 마당이 넓어야 할 텐데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되면 감귤나무도 심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수확


 잘 말린 바질 꽃대들을 2리터병 5개 정도에 짧게 잘라서 넣어두었다. 이 정도면 내년의 수확 때까지 충분하게 먹을 양이다. 이걸 향신료로 다양하게 요리할 때 쓴다. 요리 재료를 저장한 것 자체가 든든한 일이지만 이걸 쓸 때는, 그때마다 우리는 초록의 기억과 이어진다. 특히 밭이 없을 때, 작년 재작년에 그랬다. 남은 것들을 아끼고 아꼈다. 올해는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돌보고 하면서 예쁜 모습을 사진에 담고 글을 적는 생활을 한 덕인지 반짝 와서 '잘 자랐군' 한마디 하고 돌아가는 것도 땅콩 새싹을 구경하고 고추 몇 개를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었다. 텃밭 채소를 맛보고 그 맛을 살리고 싶어서 만든 나의 요리법 몇 가지들이 여전하게 식탁에 오른다. 내년을 기대하며,


 2023 텃밭을 종료합니다.



토요일에 썼습니다.

배추와 무 그리고 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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