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나라, 그곳은 나의 또 다른 고향이 되고 있었다
미국 가정에서 지내면서 나는 한국 사회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었다. 나의 정체성을 발달시키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배워나가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 10대의 성장기에 나는 한국에 없었다. 주변 환경 자체가 한국이 아예 없었다. 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가끔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단지 '미국에 사는 외국인' 일 뿐, 한국사회를 배우고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미국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 내 또래는 저렇구나'를 배웠다.
한국이었다면 친구들끼리 학교에서 석식도 같이 먹으며 야자도 하고, 학교가 그렇게 늦게 끝나는데도 또 도서관에서 가서 공부를 하고 놀 때에는 오락실, 피시방, 노래방 등을 가며 놀았겠지만 (물론 나도 방학 때 한국에 들어가 친구들을 만나면 노래방도 가고 했지만, 이는 내겐 경험 정도의 수준이었다) 미국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학교 스포츠팀 연습을 기다렸고, 약 3시간의 연습을 매일 했다. 어디 놀러 가자 할 때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운타운에 가거나, 친구네 집 앞마당에서 농구를 하거나 등이었다. 주말에 만나서 놀 때에도 항상 야외활동이었고, 어차피 차로 부모님이 태워다 주지 않으면 어딘가 가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집' 주변에서 놀았다. 굉장히 작고 사소한 모든 일상 속의 주변 환경이 나를 미국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어른들을 보며 '아 저렇게 생각하는구나'를 배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실 그 사회, 문화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적응하고 동화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살기 위해선 그래야만 했다. 물론 나는 어렸을 때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미국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주변에서 내게 '한국에서는 이래'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선생님, 주변 친구들, 내가 보는 미디어, 진로에 대해 상담하는 홈스테이 부모님, 학교 내의 Counselor 등 어디 하나 내 환경에서 한국은 찾을 수 없었다. 가깝게 지내던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도 더 미국화가 되어 있는... 외모만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10대로서 학교생활을 모두 마치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사고방식, 개념, 인생관, 걸음걸이, 동작, 심지어 체질까지 (체감상) 모든 게 미국화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한국적 영향을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무언가를 설명할 때 한국어로 설명이 어려운 것들이 생겨났고 뇌 속의 언어 영역에서는 이미 영어가 한국어보다 우선이 되어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며 영어를 더 많이 쓰니 사실 당연한 결과이다)
물론 이런 나의 상태 혹은 변화를 스스로가 인지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살던 내겐 이게 정상이었으니까. 완벽한 미국인이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에게서 한국을 버린 것은 절대 아니다. 외국에서 오래 산 한국 사람들은 많이 공감하겠지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은 외국에서 살 때 훨씬 커진다. 길을 걷다가 현대차를 보고, 삼성 티브이를 보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라디오에서 나올 때 나는 늘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태극기만 봐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는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방학 때 한국에 가고 싶어서 기다리던 것은 미국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아마 두 번째 방학 때까지였던 것 같다. 그 이후 방학 때 한국에서 잠깐 지내면서도 2주만 지나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2주는 한국을 잠시 방문하고 여행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House 가 되었고 미국은 Home 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