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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어둡지 않게

by 글벗

그 일이 있고 며칠 뒤가 할로윈이었다.

밤이 되자 아이들이 "Trick or Treat"을 외치며 사탕을 받으러 골목을 누비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사탕을 받으려고 벨을 누르는 아이가 있을까 걱정했지만, 아들의 일이 동네에 알려졌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남편은 "우리 집이 할로윈보다 더 무서운 집인가 보네" 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죽음의 현장, 더구나 자연사가 아닌 죽음의 흔적은 으스스하다. 세상을 떠야 했던 본인의 아픔과 남은 가족의 비애가 똑바로 마주하기 어려운 어둠을 느끼게 한다. 그런 일을 겪은 우리 가족이 지금 예전보다 어둡지 않게 살고 있음을,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익숙한 삶이 통째로 사라졌고, 여전히 아프고 때로는 울컥하더라도.


돌아보면, 기적은 불행을 '숨기지 않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뭘 숨기지 말아야지” 그런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아무 정신이 없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생살을 드러낸 것뿐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자존심이나 체면 쯤은 깡그리 잊고, 내가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을 내보인 것이 회복의 출발이었다. 아픔을 위로하러 온 사람들은 오래 묵힌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수십 년을 가슴에 담은 이야기를 밤이 늦도록 들었다. 평범한 삶 속에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갖가지 아픔이 배어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 아픔의 생살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들이었으며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알려지고 나니 마음껏 슬퍼할 수 있었고, 괜찮은 척 연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교민사회가 크지 않은 곳이어서 이 충격적인 사건은 빠르게 퍼졌다. 나를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길에서 낯익은 누군가 나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면 잠깐 시선을 받아준 뒤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지나가면 되었다. 거의 1년 동안은, 처음에 달려와서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해준 친구 몇 명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 친구들과는 슬픈 와중에도 큰 소리 내어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삶이 잠시 가벼워지는 소중한 웃음. 좀 살만해진 다음에는 모임 자리에 나가 짧게 얼굴을 비칠 수 있었다. 모임 중간에 슬며시 가서 가볍게 인사만 하고 나오는 정도로.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동시에, 모인 사람들의 즐거울 권리를 존중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 짧은 만남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요한 단계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을 거고, 얼굴에 드리운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는 걸 보았을 거다. 그리고 나에게서 어둠을 볼까 두려워했던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을 거다. 5년이 지난 뒤에는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갈 수 있었지만 그런 자리는 여전히 불편하며, 예전처럼 편해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새로운 삶의 측면은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면 된다.


사람의 마음 주머니가 모두 다른 모습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누구나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을 지니고 살지만 그 따뜻한 마음이 든 주머니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것. 어떤 사람의 마음 주머니는 불행을 당한 사람 곁을 지킬 만큼 튼튼한 반면, 그런 아픔을 담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먼저 달려와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던 사람들 중에도 막상 장례가 끝난 후에는 연락을 피하는 사람이 있었고, 소식을 안 뒤로 연락을 뚝 끊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곧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이의 아픔을 담기에 마음 주머니가 연약한 이들도 있다는 것. 사건을 듣고 마음이 아파도 마땅히 해줄 말을 찾지 못하거나 친구의 얼굴의 어둠을 볼 용기가 없어서 다가오지 못하기도 한다는 걸. 이렇게 이해하자 서운한 마음이 가셨다. 그렇더라도 그때 주위에 이런 이들만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 가족은 없었을 것이다. 따뜻한 마음과 튼튼한 마음 주머니를 가진 친구들에게 평생 감사할 수밖에 없다.


삼 년 뒤에는 남편이 직장을 옮기며 로뎀나무 같은 마을을 떠나야 했다.

새로운 곳에서 사람을 만날 때 자녀가 몇이냐고 물을까봐 두려웠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조언을 들었다. 어떤 미국 엄마들은, "천사가 된 아이가 하나 있어요"라고도 하고, 어떤 심리치료사 분은, "지금은 셋인데, 나중에 친해지면 알려드릴게요"(그분은 둘을 잃고 나중에 한 아이를 입양했다) 하기도 한다. 나는 굳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딸 하나”라고 답하고, 아이들 이야기가 오가는 대화가 시작되면 슬며시 자리를 뜬다. 그럴 수 없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딸에 대한 물음에만 간간히 답하면서 주로 이야기를 듣는다. 단, 사실을 감추는 것이 마음에 걸릴 만큼 가까워진 사이이고, 이야기를 듣고도 터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마음 주머니가 있다고 느끼는 한두 명에게는 아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가 어떻게 자랐고, 어떻게 삶에서 걸어나갔는지.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아들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아도 마음에 어둠이 되지 않는다.

내 소중한 아들의 이야기는 아무나 듣고, 아무렇게나 해석되어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실제로 아들의 일이 처음 동네에 알려졌을 때 루머가 돌았다. 한 친구가 미용실에서 내 아들이 ADHD가 있는 동성연애자였다는 대화가 오가는 걸 들었다고 한다. 친구는 남의 이야기 함부로 하지 말라고, 자신의 아들과 친구여서 잘 아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해줬다. ADHD나 동성연애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아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사실 무근의 소문은 이내 잠잠해졌지만, 내 아들의 이야기가 사려 깊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내 아이의 마지막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이 아이가 얼마나 고운 심성을 지녔는지, 얼마나 자연을 사랑했는지, 우리 가족 안에서 얼마나 큰 사랑을 주고받았는지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시간이 흐르길 간절히 바라던 어느 날, 우연히 <손 더 게스트>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첫 장면은 동해 바닷가에서 시작한다. 남루한 차림의 여인이 길에 서서 전단지를 돌린다. 여인의 표정은 절박해 보인다. 휴가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더러는 전단지를 받아 들고, 더러는 전단지를 던지며 여인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비웃는다. 그때 초라하게 짓밟힌 여인의 마음에 어두움이 스며든다. 어두움은 악령인 손(Guest)을 불러들인다. 다음 장면에서, 칼을 든 여인이 해변에 모여 앉아 떠들썩하게 여흥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향해 다가간다. 손에 사로잡힌 여인은 젊은이들을 무참하게 칼로 찔러댄다.


이 장면에서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지금 내 마음은 이 여인의 짓밟힌 마음보다 더 참혹하고 어두울 것 같았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손이 찾아오는 설정은, 억울하지만 어떤 면에서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할 수 있고, 내가 불행을 겪는 동안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질투할 수 있다. 솔로몬에게 다른 여자의 아기를 나눠달라고 나왔던 여자도 자신의 아기가 죽은 뒤였다. 이것이 어둠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몇 장면이 더 지나갔지만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TV를 끄고 벌렁대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 장면이 한동안 마음을 괴롭혔다.


그러다 문득, 햇볕이 들지 않는 깊은 숲에서 자라는 버섯들이 떠올랐다.

죽은 나무에서,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버섯들. 무서운 독을 가진 버섯도 있지만, 향기로운 송이, 능이, 표고도 모두 그늘진 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썩은 낙엽이 만든 양분을 먹고 자란다. 환경이 같아도 전혀 다른 산물을 내놓는 거다. 아들을 잃은 나의 마음이 찢기고 그늘졌더라도 그 그늘 속에서 자라는 버섯은 향기롭기를 기도했다. 이 짙은 아픔이, 짙은 향기가 되게 해 달라고. 내 기도가 신의 마음에 들었는지 마음이 아프지만 어둡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서운함을 잊게 되었으며 이 사건을 실존적인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힘든 사춘기를 이겨내고 세상을 향해 씩씩하게 나가는 모습이 진심으로 대견해 보인다.


오래전에 읽은 애니타 다이아먼트의 소설, <The Red Tent>(여자들에 관한 마지막 진실)이 떠올랐다.

소설에서 치유자가 된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이나 그 시대 여자로서 겪는 여러 아픔을 받아들이고, 산파, 힐러로서 다른 이를 위한 공감과 치유의 도구가 되는 길을 걷는다. 이 소설을 떠올리면서, 먼 옛날에는 의녀, 무녀, 마녀가 같은 아픔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서, 외모가 특이해서,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어서,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려울 만큼 큰 아픔을 겪고, 박복하다고 외면당한 여자들. 그 여자들이 겪은 아픔이 저주가 되지 않고, 그들이 달이는 약초에 스며들 때 병든 이와 산고를 겪는 이와 마음이 지친 이들을 달래주지 않았을까? 모든 약에 들어가는 건 감초가 아니라, 치유자의 인생에 찾아온 아픔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픔도 작은 버섯 하나 키울 수 있는 아픔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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