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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19. 2020

기억의 회포를 풀다 - 여행 1

북아트 <풀다>

이 글은 여행 위주의 기행문이 아니라, 북아트 작품 위주의 여행편입니다.


기억의 회포를 풀다 - 여행 1


여행을 다니면서 늘 느끼는 것은, 사람들 사는 모습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찌 그리 비슷할까, 사는모습이 어쩜 그리도 다를까, 이런 생각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을 넘나들며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저장한다.



앱비 로드

어디론가 떠나고싶은 가을.

잠시 런던을 생각해본다. 런던에 있을 때의 살림은 참 팍팍했었는데...

튜브(지하철) 스테이션의 깊은 터널 속에서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비틀즈의 노래를 연주하는 악사들을 만나게 된다.

좋은 콘서트홀의 명연주는 아니지만 내게는 감성적인 연주였다.


막내 아들이 대학시절에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는데 그 밴드가 앱비로드 스투디오에서 녹음을 하였다.

아마튜어지만 앱비로드 스투디오에서 녹음, 편집했다고 흥분하며 자랑을 하던 아들의 모습도 생각난다.

지금 나는 다른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데...

Abbey Road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비틀즈 멤버들. 터널 북.



자, 떠나자


많은 시인들이 흘러가는 구름을 노래했다.
하늘 위에 높게 뜬 구름을 올려다 보며 시를 끄적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구름의 자유를 갈망하듯 나도 늘 구름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소년기를 보냈다. 손 닿을수 없이 높은 곳에 둥실 떠 있는 구름을 타려고 나는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발돋움을 했던가. 그래도 구름은 언제나 내가 올려다 보는 자리에만 있었다.


어느 날, 까치발을 들지 않고도, 발돋움에 안간힘 쓰지 않고도 그 구름을 훌쩍 넘어 구름 위로 올라 갈 수 있게 되었다. 늘 구름을 올려다 보며 글을 쓰던 나는 그 날 이후론 구름을 내려다 보면서도 글을 쓰게 되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불투명한 구름을 뚫고 그 위에 펼쳐진 세상을 보는 투시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곳을 그리려고 붓을 들고 있을까. 아마도 그 환상의 도시는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름보다 더 높이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여행 길에 나서면 나는 늘 물음표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된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나선 이 숱한 여행자들은, 빵이 없어서 살수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들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여행을 끝낼 때까지 이 물음표를 떨쳐버릴 수 없다. 암스테르담에서 고흐 미술관을 향하여 걷던 중 가슴에 와서 박힌 물음표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행렬을 따라가며 나는 내내 그 물음표를 곱씹고 있었다.

먹이를 잡는 도구, 생존을 위한 도구에 왜 옛 사람들은 문양을 새겨넣어 장식을 했을까. 생존은 본능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도 본능이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마음 또한 본능이겠지…

끼니 걱정을 벗어날 길 없었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왜 창호지 문 바를 때 단풍잎 하나를 거기 끼어 바르셨을까. 화가는 왜 굶주리면서도 물감을 사야 되는 것일까. 나는 아무런 물음표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꾸준히 여행을 다닌다. 내가 이 여행에서 얻는 추상적인 양식이, 구체적인 식량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값어치가 있기를 바라면서.



실루엣, 그 도시의 기억 - 페이퍼 컷팅 작업


일생이 선택의 점철로 이어지듯이 여행에서도 많은 선택이 필요하다. 선택은 계획을 짤 때부터가 아니라 계획을 세우기 전부터 시작한다. 어떤 여행을 할 것인가.

첫째, 여행 계획을 철저히 세운다. 이미 책상 앞에서 모든 여행을 다 한 후에 그 길을 따라 몸이 답사를 하는 정도로 계획을 세운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혼란이 없고, 가슴은 지적 충만감으로 뿌듯하다.
둘째, 때로는 무작정 떠난다. 젊은 날 내 정신이 방황하던 모양 대로 내 몸이 보헤미안이 되어 낯선 곳을 방황한다. 추위도 굶주림도 아름다운 낭만으로 승화함을 느낀다. 일탈의 매력이 넘친다.
셋째, 사전에 세운 계획의 덕을 보기도 하고, 보헤미안의 자유도 누린다. 가장 모범적인 여행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종류의 선을 정확히 그을 수는 없다. 철저한 계획의 시간표에도 자유 시간이 포함되어 있고, 무작정 떠난다해도 장소와 시간의 계획은 있게 마련이다.

여행 계획을 유동적으로 짜서 상황에 따라 적응하며 여행하는 것이 현명한 계획이긴 하지만, 자칫 게을러질 수도 있다. 이러니까 저러니까 하는 핑계거리가 생기게 된다.
계획을 세우든, 무작정이든, 적당히든 선택을 해야만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여행의 테마를 정하는 것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다. 큰 관광 도시들을 구경할 것인지, 취미에 따른 주제를 정해서 여행을 할 것인지 정하는 일은 남이 도와줄 수가 없다. 내가 할 일이다.

도시, 성당, 역사 박물관, 과학 박물관, 미술관, 성, 자연환경, 음악회, 쇼핑, 기념관(문학가, 화가, 음악가, 과학자…), 휴양…이런 식으로 테마를 정하면 그 다음엔 장소를 정할 수 있다.
여행에서 일정, 테마, 경비를 다 맞추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일정에 맞추다보면 갈 곳을 다 못가서 아쉽고, 테마에 맞춰 다 둘러보자면 경비가 넘치게 들고, 이런 식으로 어렵다.


그 도시의 기억, 프라하의 거리(수채화)


책상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는 지금은 여행을 가상 체험할 수도 있다. 음식 메뉴에서 숙소 침대 사진까지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목적지의 계절별 풍경도 미리 보고 여행 시기를 정해도 된다.

그 도시의 공식 싸이트에서는 웹캠으로 실시간 도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교통수단의 시간표와 운임, 호텔의 위치와 숙박료, 방문할 곳의 문 열고 닫는 시간, 입장료, 이런 것들을 다 정확히 아는 것은 기본이다.

준비를 하다보면 이미 그 도시에 언젠가 가봤던 것처럼 익숙해진다. 머리에는 시내 중심지의 도면이 그려져 있어서 '성당을 돌아서 이리 이렇게 가면 미술관이 있고 ~ ' 이런 식으로 훤히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그 도시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편이다. 극장 관람(연극, 뮤지컬, 오페라) 한 번을 위해서 며칠씩 극초절약을 하고,  번듯한 디너 한 번을 위해서 며칠간 값싼 음식으로 버티기도 한다. 극장 갈 때와 고급 식당 갈 때 입을 옷을 넣기 위해 다른 짐은 초간단하게 꾸린다. 

누군가는 이런 일을 허영심이라고 비웃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다른 면에서 희생시키는 부분도 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여행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는 것이다. 여행 전의 삶과 여행 후의 삶의 모습은 뭔가 작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물리적인 생활의 변화는 아니더라도 시야가 넓어졌으니 생각의 폭도 넓어지게 될 것이다. 편협했던 세계관이 넓어진다거나 그런......



파리 1999년 12월 31일 자정

밀레니엄 파리 야경


1999년을 보내며 새 천년을 맞이하며 나는 이방인으로 파리에 있었다. 

그 시점은 오래 지났지만 기억이 바랜 것은 아니어서 해마다 송구영신의 절기가 오면 한 번 씩 생각이 난다. 


파리의 상징인 에필탑을 마음에 담아 보았다. 

천 년의 마감과 시작의 의미가 어떤 의미일까........ 그 시점을 경험한 세대는 특별한 기회였다. 왜냐면, 새 천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한 세기의 마감과 새로운 세기의 출발을 맞이할 수 있는 지금 사람들도 천 년이란단위의 시점에 서있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림은 샌드 페이퍼에 크레파스로 그리고 픽사티브로 마감했다. 색감을 살리기 위해 바탕은 블랙 종이. 화려함을 느끼도록 오픈 아코디언북으로 만들었다.

특별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공유하게 될 아름다운 감동의 장소와 시간. 다음 천 년 후엔 절대로 함께 하지 못할 사람들, 시간, 장소.

그 벅찬 감정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의 그림놀이를 재현해 보았다.


파리 미술관 기행 <내 인생은 무슨 색깔일까> 발행문.

파리 미술간 기행문 



다음 글은 기억의 회포를 풀다 - 여행 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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