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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17. 2020

실타래를 풀다 - 바느질

북아트 <풀다>

실타래를 풀다 - 바느질


바늘은 참 잔인하다. 아프게 찌르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아픔이 빚어내는 결과의 아름다움이라니!

갈라진 것을 봉합하고, 색실로 아름다운 수를 놓고. 바늘이 찌르면서 옮기는 한 땀 한 땀이 아름다움으로 피어난다.



변형 동양식 바인딩

몇 가지 동양식 바인딩 공책들.


흔히 전통제본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전통제본과는 다르다. 전통제본은 중국과 일본이 짝수인 4침(네 구멍을 뚫어 꿰맴)을, 우리나라는 홀수인 5침(다섯 구멍을 뚫어 꿰맴) 안정법으로 책을 꿰맸지만 붓글씨로 일일이 쓰던 큰 책에서 인쇄책으로 변하면서 책의 크기가 줄어들어 우리도 4침 제본을 하게되었다.

단순히 책을 묶는 의미에서 좀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바뀐 요즘의 동양식 바인딩을 전통제본이라고 하기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전시회 방명록,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 방명록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일반 공책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기본 바인딩을 응용한 디자인 바인딩.


이러한 작업들이 어느  아주 재미있고,  어느  멍 뚫기가 지겹고 괴롭다.

가능하면 구멍이 적은 디자인으로 하고싶은 마음. 바늘이 네 번 드나드는 구멍과 두번 세번 드나드는 구멍의 크기를 다르게 뚫어야하니까 구멍뚫기가 다 끝날  때까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틀리지 않도록 애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구멍을 일정한 크기로 뚫어버리면 바늘이 여러 번 드나들면서 실이 여러 방향으로 엮인 곳은 타이트하고, 바늘이 두 번만 드나들며 실이 양 방향으로만 엮인 곳은 헐렁헐렁 구멍의 여유분이 눈에 띠기 때문이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멍의 크기에 신경을 써야한다. 


꿰매면서 실이 점점 줄어들면 재미가 붙기 시작하고, 꿰매는 것은 금방 끝난다. 어쨋든 다 꿰매놓고 바라보면 흐믓! 



아름다운 책등

북 바인딩의 기법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종류가 있다.

기본을 배우면 그 후로는 응용 디자인으로 나만의 특별한 노트를 만들 수 있다.


기초바인딩 클라스에서 함께 만든 것이므로 기본 바인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디자인이다. 누구든지 헤링본 스티치, 버튼 홀 스티치, 콥틱 바인딩 이런 기법만 익혀도 디자인의 변화를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덱스 북에서 밴드 위에 들어가는 헤링본 스티치는 아름답지만 늘 책등 속에 갇혀있어서 볼 수가 없다. 이렇게 노출시키면서 표지와 어울리는 색실로 아름다운 노출바인딩 공책이 된다. 

책등이 노출되므로 각 섹션의 겉장 종이는 노출에 견딜만한 것으로 사용한다. 펼침이 부드럽고 편한 것이 장점.


정통 코덱스 바인딩

기존의 책과 같은 형식이다. 수제 종이가 아니라면 책의 노출되는 3면을 단정히 하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

(왼쪽) 속지, 표지, 크기가 다양한 노트들.    (오른쪽) 작은 클라식 앨범들. 부착할 사진의 두께 때문에 책등은 종이를 접어서  꿰맨다.


나는 기초 클라스 수업 때 외에는 공책을 자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기법의 다양화를 많이 시도해보지는 못했다. 이런 바인딩을 사용할 때는 주로 선물용 공책이나 앨범을 만들 때이고, 100페이지 정도가 넘는 글이 모였을 때 책으로 묶기 위해서는 주로 코덱스 북으로 만들고 있다.

작은 그림들이나 사진을 묶을 때는 좀더 다양한 바인딩 기법을 사용하지만 그림이나 사진들은 주로 아코디언 스타일을 이용하여 한 눈에 보기 편하도록 만들고 있다.


엑스자 바인딩, 위빙 바인딩 등 기타 여러가지 바인딩은 기호에 따라 디자인하면 될 것이다. 하고싶은 바인딩이 있는데 그 기술이 내게 없다면  그 바인딩을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의뢰하여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다. 모아놓은 자료나, 글들을 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바인딩은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나의 글과 나의 그림이라고해서 꼭 내가 묶어야 할  필요는없는 것같다.


나는 책의 콘텐츠에 집중하고 싶고,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기초 바인딩 정도는 함께 하고 그 뒤에 책 만들기에 들어가게 된다.

책에 담길 내용에 따라서 책의 모양도 선택해야 하니까 책 디자인이나 바인딩 기법의 기초는 알아야 콘텐츠와 책 스타일이 어울리는 책을 만들 수 있다.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책의 콘텐츠 탐구를 함께 하고싶지, 예쁜 책 한 권 만드는 기술만 가르치고싶지는 않다.



멋쟁이 소녀들

손녀가 다섯이라 어린 여자아이들 취향에 따른 패션 스타일을 만들었다.

면 위에 애플리케 스티치로 그림을 붙였다. 뒷 바탕은 펠트천이다. 아이들이 손에 들고 마음대로 접었다폈다 하면서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놀이책이다.



쇼핑센터에 가면 아동복 코너를 둘러보곤 한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구매로 이어진다. 진열된 옷이 예쁘니 그것을 달라고 한다. 판매원이 싸이즈를 물으면 갑자기 결정이 어려워져서 머뭇거린다. 어떤 손녀 옷을 사겠다는 계획도 없이 진열된 옷이 마음에 들어서 사려고 한 것인데 옷의 크기를 말해야하니 머뭇거릴 수 밖에.

판매원은 내가 싸이즈를 모르는 줄 알고 몇 살이냐고 묻는다. 또 망설인다. 이상한 할머니로 보일 것이다. 판매원의 수다가 길어진다.

"요즘 엄마들은 까다로워서요, 옷 크기가 잘 안맞으면 싫어해요. 할머니가 사 온 옷이 안 맞는다고 바꾸러 오는 엄마들이 종종 있어요."

하,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꾸한다.

"5, 7, 9, 11,13 싸이즈 어떤 것이나 다 괜찮아요."

"예???"

이젠 판매원이 어리둥절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우리 손녀가 다섯인데 아무 크기나 사가면 맞는 아이 누구나 입으면 되거든요."


설마 한 집에서 딸 다섯을 낳았다는 말로 알아듣지는 않았겠지. 세 집에서 난 아이들인데.



황색의 그리스도

고갱의 그림 <황색의 그리스도>를 십자수로 수놓았다.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완성될 그림을 생각하며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빈 공책을 만드는 것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아서 입니다.

하얀 공간에 채워넣고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서입니다.






다음글은 기억의 회포를 풀다 –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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