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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24. 2020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 북아트 1

북아트 <풀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 북아트1


북아트 작품 제작자로서, 북아트 강사로서 북아트에 대해 느낀 점들을 이야기한다. 꽁꽁 싸여있던 보따리를 풀어 북아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드러낸다. 북아트는 기능인가, 예술인가?



북아트 – 예술에 자격증이라니.


무명작가로 북아트 작업을 하면서 가끔은 답답한 마음이 든다.

배우려는 사람이 하는 질문중에 가장 진지하게 묻는 많은 질문은 "자격증 주나요?” 이렇게 자격증에 대한 문의이다. 수강생에게는 가장 중요한 핵심일 수 있다고 이해한다. 배운 후에 어떤 계획을 세운 사람들에겐 자격증을 따야하는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적정 수준 이상이라 여겨질 때 무언가 증명서를 줄 수는 있다.  열심히 수강하였고, 작품의 질도 훌륭하다고 증명해줄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자격증>이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그건 아닌 것 같다. <수료증>이면 족하다.


북아트도 엄연히 예술의 한 장르인데 어떻게 예술작품에 대해 자격증을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가 누구에게 자격증을 준단 말인가? 자격증을 주는 사람은 분명히 자격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자격증을 줄 수 있는 건데, 그렇다면 그 자격증을 주는 사람은 누구에게 자격을 인증 받았단 말인가?

자격증을 따려면 여러 가지 항목의 체크 리스트가 있을 것이고,  그 체크 리스트에는 기능 뿐 아니라 예술성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예술성>이 바로 자격증이라는 이름하에 점수화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예술>이 평가받는 방법은 많다.

급수를 정하여 자격을 취득하는 평가가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콘테스트를 열어서 경쟁에서 우월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수상한 사람은 그 상이 명예롭고 자랑스러우면 된다.  수상자는 그 경력이 북아트를 직업으로 삼을 때 실질적인 도움도 될 것이다. 수강생 모집이나 수강료 책정에서 유리할 것이다.

예술에 어떤 자격이 있고, 누군가가 그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많은 협회들이 있는데 그 협회에서 권위있는 상을 제정하고,  공모를 통하여 훌륭한 작품을 시상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참 웃기는 예를 들자면,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은 3급, 자화상은 2급, 별이 빛나는 밤에는 1급. 이런 식으로 급수를 정할 수 있을까??? 그럴수는 없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써커스> 별 북


개념주의 예술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예술가는 무엇을 얼마나 잘 그리고 잘 만드느냐는 기능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설정한 키워드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생각을 보여주는 시대가 되었다. 잘 그리고 잘 만드는 것은 기계에게 맡기고, 기능 좋은 사람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은 북아트에 급수까지 지정하여 자격증을 준다는 것은 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북아트의 위치를 기능적인 생산품으로 여기도록 하는 역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북아트기능사 자격증>이라면 괜찮지만 말이다.

북아트 예술가가 디자인하고 북아트 기능사가 제작하는 경우를 가정해보면 북아트 예술가는 자격증이 필요없는 사람이고, 북아트 기능사는 자격증으로 평가받고 제작 의뢰를 받아야 하므로 자격증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북아트를 예술의 장르라 생각하고,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고 싶은 나로서는 북아트를 하나의 솜씨좋은 기능으로 보는, 기능으로 여기는풍조가 안타까울 뿐이다.

<써커스> 별북 펼친 모습


영국에서 앨범 만들기


영국의 대학 썸머스쿨에서 배웠던 앨범만들기 사진을 본다. 그 땐 열심히 하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어느새 게으름이 나를 점령했다. 새로운 각오로 그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West Dean College Summer School.


제일 앞 줄 왼쪽(사진에서)이 Abbott Kathy 선생. 지독하게 철저한 가르침에 재미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얼마나 꼼꼼히 가르쳤는지, 그 선생에게서 배운 이후로 여러 해동안 제법 많은 앨범(그때와 똑같은 스타일)을 만들었는데 내 앨범 작품은 배웠을 때 만들었던 첫 번째 것과 지금 만든 것의 차이가 없이 다 똑같다. 발전이 없는 것인지, 처음 것을 완벽하게 만든 것인지.


해가 거듭되면서 더 나아지고 발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똑같은 작품을 만들 경우엔 나중에 만든 것이 처음 것보다 나아질 이유가 없다. 솜씨가 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맨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만드는 과정의 방법에 있어서 능숙해지고 요령이 생기기는 하지만 완성품은 처음 것도 나중 것처럼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Abbott Kathy 선생. 그에게서 나는 0.5mm의 중요성과, 1mm도 안되는 종이 한 장의 두께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고, 책을 만들 때나 상자를 만들 때나 종이 재단할 때는 늘 그것을 염두에 두고있다. 끝나는 날 수강생이 선물한 와인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


우리들이 만든 클라식 앨범과 슬립 케이스. 슬립 케이스에서 앨범을 뺄 때 뻑뻑하지도 않고, 헐렁하지도 않고, 그 정도의 차이는 정말 1mm도 느껴질 만큼 민감하다.


앨범과 슬립 케이스를 만드는데 하루 3시간씩 4일동안의 과정이었다.

첫 시간에 이론을 듣고, 속지를 접어서 꿰매기 시작. 

두 번째 시간은 다 꿰매어서 북 블록을 완성. 그리고 북 바인더리 재료숍에 가서 커버 용지와 북 클로즈를 선택하여 구매한다. 선생은 재료숍에서 여러가지 재료들을 설명해주는데 숍의 마케터처럼 설명을 하는 모습이 어찌보면 재료숍과 유착하여 재료 판매를 유도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정말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나중에 북아트를 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북아트 강사와 수강생이 함께 재료숍에 가서 강사로부터 모든 재료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되면 좋겠다. “강사가 장사한다”는 뒷말이 무서워서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쉐프가 요리를 배우는 제자를 식자재 마켓에 데리고 가지 않고 조리기법만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다.

셋 째 시간은 앨범을 완성하여 프레스에 누르고 슬립 케이스 재단을 한다.

넷 째 시간에 슬립 케이스를 완성하고 수강생 각자의 작품에 대한 품평회를 하고 마친다.


보너스로 첫 째날 저녁에 Abbott 선생의 북 바인딩 작품 영상을 보고, 선생이 직접 그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아트, 북 바인딩에 대한 눈이 떠지는 시간이었다.


지금 내가 정통 북 바인딩 작업을 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작품을 만들든지 나름 최선을 다하며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다짐해본다.


다음 글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 북아트 2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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