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본 요람에서 무덤까지 6
종이책 <삶의 미술관> 출간으로 이 브런치 북에는 도슨트 설명만 남겨둡니다.
Raffaello Sanzio <The School of Athens> 1509-1511, 500X770Cm. Fresco on wall.
Stanza della Signature Room), Vatican.
도슨트 설명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1503-13)는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를 바티칸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교황의 방을 장식하는 일을 맡기기 위함이었죠. 이 그림은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가 브라만테가 친구인 라파엘로를 추천했다고 합니다. 이때가 르네상스 시대(c.1490-1530) 였어요.
교황이 집무실과 서재로 사용하는 방에 라파엘로는 철학, 신학, 예술, 법학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어요. 그림으로 교황의 지성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원근법을 어찌나 잘 이용했는지, 저 그림을 보세요. 천장이 보이는 아치를 몇 개 거듭 그림으로써 거리감이 더욱 멀어집니다. 양 옆에 지혜와 이성을 대표하는 그리스 신 아폴론과 아테네를 그려넣었는데요, 실제 조각이 있는 건물같아요. 몇 걸음 발짝을 떼면 저 건물 속으로 걸어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전체 방의 그림의 일반적인 주제는 세속적(그리스) 및 영적(기독교) 사고의 종합이며 고전적으로 영감을 받은 르네상스 예술의 가장 훌륭한 그림으로 손꼽힙니다.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 54명이 등장합니다. 철학자를 중심으로 산술, 문법, 음악, 기하학, 천문학, 수사학, 변증법 등 모든 학문이 특정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인문학 위주의 학자들은 상단에, 자연과학 학자들은 하단에 배치됐네요. 이성을 통해 얻은 자연의 진실을 표현한 것이지요. 이상론자 플라톤과 현실론자 아리스토텔레스, 두 사람의 철학적 분열이 바로 핵심주제인데요, 그 중요성에 따라 두 주인공은 아치 밑의 통로와 그림의 소실점에 배치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그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끌어들이는 구도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할까요? 오른쪽 아테나여신상 아래부분에 무언가 열심히 쓰고있는 사람이 앉아있는데요, 그가 누군지는 모릅니다. 위치로 봐서 철학자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지요. 이름모를 그가 500여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로스엔젤레스에 나타납니다. 놀랍죠? 예술가 코스타비(Mark Kostabi)가 음악앨범 <유즈 유어 일루전 Use your illusions>의 표지그림에 이 철학자를 불러온 것입니다. 90년대에 유명했던 보컬그룹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를 아시나요?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이 인기곡이었었죠.
등장인물들이 각자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사람의 얼굴로 그려졌는지는 "조금 더 알기"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낱낱이 신경쓰며 살펴봐야하는데요, 그 사람의 본래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렸기 때문이죠. 예를 들자면 왼쪽 하단에 서있는 여성은 고대 수학자 히파티아인데요, 얼굴은 라파엘의 연인 마르게리타 루티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각 인물이 누구인지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습니다. 모든 학자들이 한결같이 인정하는 인물은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나머지 인물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기록입니다.
1,왼쪽 - 왼쪽에는 올리브 토가(가운)를 두른 소크라테스가 크리시포스, 크세노폰, 아이스키네스, 알키비아데스 그룹에서 논쟁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어린 알렉산더인데 시대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왼쪽에 화려한 의상을 입고 서있는 사람이 선동정치가 알키비아데스이다. 그는 적국 스파르타로 망명하여 아테네를 패배하게 만들었다.(펠로폰네소스 전쟁)
2.오른쪽 - 그림의 가장 중심부에 서로 다른 학파의 두 철학자가 배치되었다. 흰 수염의 플라톤은 왼쪽에 서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그 모습은 '형태이론(The Forms)'을 나타내는 제스처이다. 플라톤의 이론은 실제 세계가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추상적 개념과 이데아의 영적 영역이라는 주장이디.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실제 얼굴을 그려넣었다. 왼손에 끼고있는 책은 <티마이오스>이다. 소크라테스와 티마이오스 등 세 사람이 우주와 인간, 영혼과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대화체로 쓴 책이다.
그 옆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보는 사람을 향해 오른 팔을 직접 뻗으며 단축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손에 들고있는 책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지식이 경험에서 나온다는 그의 믿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하며 물리적 세계에 기초를 두고있다는 이론이다.
3,왼쪽 -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책을 보고 있는 피타고라스이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적 과학적 발견으로 유명하지만 정신분열증에도 조예가 깊다. 모든 영혼은 불멸이며 죽으면 새로운 육체로 이동한다는 철학을 확고하게 믿은 피타고라스를 라파엘은 플라톤 쪽에 배치했다.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메모를 하며 들여다보고있는 사람은 피타고라스의 스승 아낙시만드로스이다. 뒤쪽에 서있는 사람은 스페인의 아랍계 철학자 이븐 루스드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작의 주해를 완성한 사람이다.
4.오른쪽 - 피타고라스와 반대편에는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가 배치되었다. 그는 나침반으로 무언가를 시연하고 있고, 어린 학생들은 열심히 그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있다. 정확한 답이 있는 구체적인 정리를 논하는 유클리드는 아리스토텔레스 쪽에 배치했다. 유클리드의 얼굴은 브라만테의 초상이라고 한다.
5,왼쪽 - 노란색 가운을 입고 손에 지구본을 들고있는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이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그 옆에서 천구를 들고있는 수염난 남자는 천문학자 조로아스터이다. 그 바로 옆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사람은 바로 라파엘이다. 전체 그림으로 볼 때 오른쪽 맨 끝쪽에 아주 작은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지혜자들과 지식인들의 무리속에 자신을 슬쩍 동참시킨 것이다.
6.오른쪽 - 냉소 철학자 디오게네스이다. 그는 문명을 반대하고 자연적인 생활을 실천했다. 평생을 한 벌의 옷, 한 개의 지팡이와 자루를 가지고 통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에게 다가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을 때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조금만 비켜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7.왼쪽 - 턱을 괴고 홀로 앉아있는 사람은 미켈란젤로이다.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모델로 그렸다. 예비 도면에는 없었고, 석고를 분석해보니 나중에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리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독학으로 지혜를 개척했으며 우울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않아 이렇게 고립된 위치에 홀로 배치한 것이다.
8.가운데 - 항상 거문고를 들고 있는 형상의 아폴론이다. 그의 위치는 문학을 대표하는 <파르나서스> 프레스코화와 가까이 있다.
9.오른쪽 - 아테나. 항상 머리에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들고있는 모습이다. 법학에 대한 프레스코화 쪽에 가까이 있다.
스탠자 델라 세그나투라(시그니처) 방에는 라파엘로의 가장 잘 알려진 세 작품인 아테네 학당, 파르나서스, 성례전 논쟁이 있다.
왼쪽 - 거스 앤 로지스 음악앨범 표지. 오른쪽 - 이름모를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