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의 사상이 미술에 미친 영향
3부 언어와 기호의 관계
15화 이미지의 4원소 - 가스통 바슐라르와 현대미술
예술은 언제나 ‘이미지’를 다루지만, 그 이미지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해선 오래도록 충분히 질문되지 않았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이 질문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밀고 나간 사상가다. 그는 인간의 상상력이 이성적 사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상력은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물질의 감각에서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불, 물, 공기, 대지. 바슐라르는 이 네 원소를 자연의 구성요소뿐 아니라 상상력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물질을 만지고, 불을 바라보고, 물을 건너고, 공기를 마시며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미지란 단순한 시지각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과 감각이 빚어내는 가장 원초적 언어이다. 이 4원소의 사유는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데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대지의 무게는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 )의 캔버스에서 ‘역사의 지층’으로 나타나고, 물의 잔상은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와 빌 비올라(Bill Viola, 1951-2024)의 화면에서 ‘기억과 정화의 심연’으로 변한다. 불의 흔적은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1915-1995)의 태움 작업에서 ‘파괴 속 창조’의 에너지로 나타나며, 공기의 투명성은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과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의 이미지에서 ‘비가시성의 미학’으로 확장된다.
4원소는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물질 → 감정 → 욕망 → 초월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상승 구조를 이룬다. 대지(흙)에서 시작해 물로 흐르고, 불로 타오르며, 공기로 날아오르는 흐름이다. 바슐라르는 이것을 “상상력의 상승 운동(imagination ascendante)”이라 불렀다. 상승의 운동은 현대미술이 물질성을 넘어 감정, 심리, 초월, 비가시성으로 확장되어온 궤적과 깊이 맞물린다.
다행히 한국어 번역된 책이 있어서 바슐라르의 4원소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살펴보고, 원소적 상상력이 어떻게 이미지의 형식·내용·감정·시간성을 변형시키는지를 탐구한다. 브런치북 <그림 속 철학, 철학 속 그림> 연재를 통하여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 대하여 활자화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을 읽어왔다. 이제는 그의 근본이 되는 핵심 원소들을 파헤쳐본다. 나는 흙으로 빚은 도자기를 설명할 때 4원소를 모두 품은 예술작품이라 설명해왔다. 바슐라르의 4원소에 대한 각각의 책을 읽으며 "4원소"에 대한 나의 사고는 '도자기'를 넘어 '모든 예술작품'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대지에서 시작해 공기로 끝나는 네 단계의 여정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긴 답변이 될 것이다. 책 리뷰 형식을 떠나 예술작품 감상으로 이해를 돕는다. 이미지는 사유의 결과인가, 아니면 존재의 진심에서 솟는 감각의 흔적인가?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 내밀성의 이미지 시론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정영란 옮김. 2002, 문학동네
바슐라르는 대지를 상상력의 가장 아래층이자 가장 깊은 층으로 보았다. 대지는 흔들리지 않고, 버티고, 침전하며, 인간에게 ‘저항과 지속’의 언어를 가르친다. 대지를 상상력의 ‘물리적’ 원소로 보았다. 불, 물, 공기가 변화의 이미지라면, 대지는 지속과 내구의 이미지다. 대지는 가장 낮은 곳에 있으나, 모든 것을 떠받친다. 흙과 돌, 금속, 산, 벽돌과 같은 물질 속에서 ‘의지’를 본다.
바슐라르는 "모든 고체는 의지를 지닌다. 인간은 대지를 통해 자신의 끈기를 배운다.”고 예술의 본질을 말한다. 예술은 순간의 섬광이 아니라, 지속의 노동이며, 그 땅 위에 새겨지는 시간의 흔적이다.
"대지"는 바슐라르의 4원소 시리즈 중 마지막 권이지만, 사유의 뿌리로는 오히려 첫 번째에 있다.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공상이나 환상의 차원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물질적 운동으로 보았다. 그에게 ‘대지’는 상상력의 출발점이었다.
위의 책에서 작가는 대지 속에 내재된 "뿌리"에 대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테지만 한 챕터를 할애하여 쓴다고 했다. 상상력의 출발과 뿌리, 뿌리가 이미지가 되기까지를 여러 문장에서 발견한다.
역동적 이미지로 고려될 때 뿌리도 더없이 다양한 힘을 부여받는다. 뿌리는 지탱하는 힘인 동시에 찌르는 힘이다. 사람들이 대기와 대지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서 대지의 자양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뿌리를 상상하는가, 아니면 죽은 자들의 땅에서 죽은 자들 쪽으로 움직여갈 뿌리를 꿈꾸는가에 따라 뿌리의 이미지는 역설적인 양 방향으로 생기를 띠게 된다. 320쪽. 3부 9장 "뿌리".
뿌리는 언제나 하나의 발견이다. 뿌리란 못 보는 만큼 더욱 꿈꾸게되는 법. 실제 발견된 뿌리는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한다. 뿌리는 바윗 덩어리이자 머릿단이고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필라멘트 같으면서도 단단한 목재가 아닌가? 그런 뿌리에서 사물들에 내재한 상충성의 예증을 보게 되는 법이다. 상상력의 세계에서 반립의 변증법은 서로 구별되는 질료, 잘 물화된 질료들의 대치 속에서 오브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321쪽.
안젤름 키퍼 ― 대지로 쓰는 역사
안젤름 키퍼는 대지의 상상력을 가장 강렬하게 구현한 작가다. 연재글 참고 "안젤름 키퍼와 마르틴 아이데거" https://brunch.co.kr/@erding89/416
그의 캔버스는 더 이상 평면이 아니라 역사의 지층이다. 진흙, 납, 회, 밀짚이 두텁게 쌓인 화면은 시간의 무게를 끌어안으며, 독일 현대사의 상처를 침묵 속에 품는다.
url을 클릭하여 이미지를 정당하게 감상하세요. 공정 이용(fair use) 작품입니다.
https://www.sfmoma.org/artwork/FC.595/
<Margarete>에서 황량한 들판과 새겨진 이름은 바슐라르가 말한 “대지의 기억”을 그대로 드러낸다. 흙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증언자이다.
그의 캔버스는 평면이 아니라 기억의 지층이다.
대표작 <마르가레테>(1981)는 독일 현대사의 상처 ― 홀로코스트의 그림자 ― 를 다룬 작품이다. 황량한 들판 위로 희미한 밀짚빛이 남아있고, 그 위에 ‘Margarete’라는 이름이 새겨진다. 이는 파울 첼란의 시 〈회색의 머리카락을 한 마르가레테〉를 시각화한 것이다.
바슐라르가 “흙은 인간의 죄를 기억한다.”라고 했던 그 구절처럼, 키퍼의 흙은 침묵 속의 증언자다. 키퍼의 화면은 회화라기보다 기억의 지리학이다. 그는 역사적 죄책과 존재의 무게를 흙으로 눌러 놓는다. 흙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상처의 피부이며, 무게의 철학이다.
바슐라르의 철학이 ‘존재의 감각’을 묻는다면, 키퍼의 회화는 그 감각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한다.
박서보 ― 반복 속의 의지, 동양의 대지학
박서보의 "묘법(描法)"은 대지의 이미지를 동양적 감각으로 변주한다.
https://parkseobofoundation.org/media/?bmode=view&idx=16656551
박서보의 ‘묘법(描法)’ 연작에서도 대지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한지 위에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행위는, 흙을 고르고 밭을 일구는 노동의 리듬과 닮았다. 그 행위 속에는 바슐라르가 "대지"에서 설명한 ‘지속의 의지’가 있다.
반복은 노동이 아니라, 호흡이며 수양이다. 박서보는 이를 “생명의 리듬을 한지에 스며들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선들은 바슐라르가 말한 ‘의지의 꿈’과 같다. 바슐라르는 대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버틴다고 했다. 인간의 손은 대지의 버팀을 닮아간다고.
묘법의 선 하나하나는 흙 위를 갈아엎는 농부의 손길, 돌을 깎는 장인의 인내처럼 보인다. 물질과 정신이 만나, 흙이 곧 명상이 된다. 박서보의 한지는 서구의 대지와 달리, 관조의 땅이다. 그의 회화는 “가만히 있는 시간”을 쌓아올린 대지의 시학이다.
대지의 상상력 ― 시간의 두께와 존재의 저항
바슐라르에게 대지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의지의 비유다. 불은 타고, 물은 흐르고, 공기는 날지만, 오직 대지만이 버틴다. 그는 “대지의 이미지는 의지의 상상력이다.”라고 썼다.
예술가가 붓을 드는 행위는 바로 그 버팀의 변주다. 키퍼가 흙으로 역사를 증언하고, 박서보가 선으로 시간을 새기듯, 예술은 대지의 인내를 닮는다. 인내는 곧 창조의 힘이다. 인내란 무엇인가? 인내는 시간의 가장 깊은 형태이다.
대지는 우리에게 저항을 가르친다. 그 위에서 건물이 서고, 그 위에서 인간이 살아간다. 그렇기에 바슐라르의 대지는 존재의 은유이며, 예술의 기초다.
흙에서 피어난 언어
대지는 침묵한다. 대지의 침묵 속에는 언어가 있다. 흙, 돌, 납, 종이, 한지 ― 이 모든 재료는 말하지 않아도 시간을 말한다. 바슐라르는 침묵의 언어를 읽어내려 했다. 예술가들은 그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 안젤름 키퍼의 흙은 죄와 기억의 언어로, 박서보의 한지는 명상과 생명의 언어로 변한다.
바슐라르의 철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상상력은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가?”
그 대답은 어쩌면, 한 줌의 흙 속에서 들려올 것이다. 대지는 말없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 속에서 예술이 자란다.
<물과 꿈> -질료에 관한 상상력 시론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김병욱 옮김. 2020, 이학사
물은 우리 안에서 흐른다 ― 상상력의 가장 깊은 장소
바슐라르는 “물이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비춘다."고 한다. 물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아 있다고.
바슐라르는 네 원소 중에서도 ‘물’을 가장 내면적인 원소로 다뤘다.
특히 물은 힘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주제들을 예시하기에 가장 적절한 원소이다. 그것은 많은 실체를 동화시키지 않는가? 많은 본질을 자신에게 끓어당기지 않는가? 그것은 설탕과 소금 같은 상반된 질료들도 여느 것과 다름없이 쉽게 받아들인다. 물에는 온갖 색깔, 온갖 맛, 온갖 냄새가 배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고체가 물에 용해되는 현상이 상식적인 화학이자 약간의 꿈이 곁들여지면 시인들의 화학이 되는 그러한 천진한 화학의 한 주요 현상임을 이해한다. 156쪽. 제 4장 구성된 물들.
물은 고요하면서도 불안하고, 투명하면서도 어둡다. 그는 물에서 모순과 복합성을 발견한다. 물은 “인간 감정의 심연을 반사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물을 바라볼 때 언제나 ‘보이는 표면 너머’를 느낀다. 물의 깊이는 우리 내면의 깊이이며, 물의 흐름은 우리 감정의 흐름이다. 바슐라르에게 물은 단순한 자연의 재료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의 저장소, 무의식의 거울이다. 유리 거울 앞에 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는가? 자연의 물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는가?
"나르키소스가 거울 앞에 있다고 상상해보라. 유리와 금속의 저항이 그의 시도들을 가로막는다. 그는 거기에 이마와 주먹을 부딪치게 된다. 거울 뒤를 둘러보아도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거울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배후 세계를 내부에 가둬두고 있다.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을 보지만 붙잡을 수 없다. 그 세계는 좁힐 수는 있어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가짜 거리에 의해 그와 분리되어 있다. 반면 샘은 그에게 열린 길이다." 42쪽. <The Dilemma of Narcissus (L'erreur de Narcisse)> p.11, 루이 라벨(louis lavelle)지음. 재인용.
바슐라르의 해설을 들어본다.
방의 환한 빛 속에 있는 유리 거울은 너무 안정된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것을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물과 비교할 수 있을 때, 다시 자연화된 상상력이 샘과 강의 경관들의 참여를 수용할 수 있을 때, 그 거울은 살아 있는 자연스러운 거울이 다시 될 것이다. 43쪽. 1장 "맑은 물, 봄의 물, 흐르는 물, 나르시시즘의 객관적 조건, 사랑에 빠진 물".
모네의 수면(水面) ― 빛에 잠긴 기억의 회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은 바슐라르의 물의 상상력을 회화적으로 해석한 대표적 작품이다. 모네의 연못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기억과 시간의 표면이다. 수면(水面)은 빛을 반사하면서도, 그 아래의 깊이를 암시한다. 바슐라르는 이를 “장면이 아니라 꿈의 표면”이라고 했다.
클로드 모네 <녹색반사> 1914-1926. 캔버스에 나란히 배치된 두 개의 유화 패널. 200x850Cm. 오랑제리 미술관, 파리, 프랑스
모네의 수련을 바라보면, 우리는 풍경을 본다기보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감정의 흔들림을 체험한다. 빛은 흘러가고, 색은 번지고, 형태는 사라지며, 오직 시간의 잔향만 남는다.
바슐라르는 모네의 회화에 대해 물은 형태를 지우고, 감정을 드러낸다, 물 위의 이미지는 외부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반사라고 해설한다.
이에 따르면 모네의 연못은 ‘풍경화’가 아니라 ‘감정화(感情畫)’다. 그는 물을 그렸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본다.
빌 비올라 ― 물속으로 잠기는 의식, 다시 태어나는 감정
빌 비올라(Bill Viola)는 물을 영상의 언어로 확장한 현대미술가다. 그에게 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탄생과 죽음, 침잠과 부활의 은유다.
대표작 〈The Reflecting Pool〉(1977)
https://lefifa.com/en/catalog/the-reflecting-poolhttps://youtu.be/CSEkrV2TLs8
한 남성이 물가에서 뛰어오르는 순간, 화면은 멈춘다. 순간 물은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를 열어젖힌다.
수면은 흔들리지 않고, 남자의 몸은 사라진다. 그 순간 물은 거울이 아니라 문(門)이 된다.
시간이 멈추고, 현실이 흔들린다. 문 너머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넘어선 의식을 느낀다. 물 속으로 가라앉는 인물은 정화·탄생·소멸의 이미지를 동시에 품는다.
비올라의 물은 “물은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로 데려간다.”는 바슐라르의 역설을 시각화한다. 인물은 물속으로 사라지며 다른 상태로 이동하고, 감정은 물속에서 정화되고 격렬해지며 다시 태어난다. 그의 후속 작업들에서도 인간은 물속에서 떠오르거나 가라앉으며 ‘경계의 순간’을 통과한다. 바슐라르가 말한 “물의 의례성”, 즉 정화와 변화의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The Reflecting Pool〉은 동영상(7분).
물의 감정학 ― 망각과 회복, 상처의 반사
바슐라르는 고요한 물은 망각이며 흐르는 물은 기억이라고 한다. 물은 잊혀짐의 이미지이자 치유의 이미지이다. 물이 흔들릴 때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고, 물이 고요할 때 우리는 자신을 잊는다. 미술적 이미지 이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네의 고요한 수면은 기억의 침전을 상징하고, 비올라의 흐르는 물은 감정의 변형을 상징한다. 물은 감정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뒤흔들기도 한다. 물이 지닌 양가적 감정성이다. 물의 이미지는 언제나 심리적 깊이를 가진다. 바슐라르는 물을 단순한 사물로 보지 않고, 사람의 내면이 스며드는 심상(心象)의 공간으로 본다.
그 점에서 물의 이미지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비춘다.
예술가들은 왜 물로 돌아오는가 ― 감정의 원소학
예술가들이 물을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물은 이미지 이전에 감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모네는 색이 사라질 때까지 물을 그렸고, 비올라는 물속에서 ‘의식의 장면’을 연출했다. 그 둘은 다른 시대와 다른 매체지만, 공통적으로 물에서 감정의 뿌리를 찾고 있다.
물은 존재의 가장 깊은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원소라는, 물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만난다는 바슐라르의 말과 닿아있지 않은가. 모네와 비올라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진술이다. 그들의 물은 단지 아름답거나 서늘한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장치이다. 물은 감정을 흔들고, 비추고, 지우고, 되돌린다. 예술은 그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다.
물은 모든 상상을 낳는 심연이다
바슐라르의 <물과 꿈>은 감정의 학문, 이미지의 심리학, 상상력의 형태학에 가깝다.
그에게 물은 ‘자연’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쪽에 있는 감정의 물질이다.
모네의 물은 시간의 잔향을 품은 기억이며,
비올라의 물은 의식의 변형을 기록한다.
그리고 바슐라르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의 감정은 지금 어디에서 흐르고 있는가?”
물은 그 모든 흐름을 알고 있다.
물은 감정의 심연이며, 그 심연 속에서 예술은 다시 시작된다.
4원소를 한꺼번에 읽어야 할 독자들의 지루함을 생각하여 두 번으로 나눕니다. 다음엔 "불"과 "공기"에 대한 글입니다. 4원소에 대한 책의 통합적인 정리와, 가스틍 바슐라르에 대한 작가 소개도 다음 글에 포함됩니다.
최소한 한 달에 네 편의 멤버십 글을 발행하기로 하였으나 '이사' 관계로, 고백하자면 글읽는 안경을 못찾아서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멤버십 독자들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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