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에서 여러 번 기회의 순간을 만난다.
삶이 고달프고 현생에 쩌들어 힘들어 죽을 것만 같을 땐 왜 내겐 기회가 없느냐 울부짖지만, 세상은 공평하게도 내게 기회를 주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기회를 놓쳐 아쉬웠던 순간도 있었고, 제대로 낚아챘던 적도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약 3년전. 아니 4년전인가?
행정학과를 전공했던 나는 졸업하기가 무섭게 취업 시장으로 팔려갔다. 선배들은 궁뎅이 붙이고 앉아 진득하게 공부하는 공무원의 길을 택하긴 했으나, 재미 없을것만 같았다. 밝은 성격을 가진 나는 왠지 모르게 사람들과 하하호호 회의하고 파워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기에 공무원 준비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긴 1년이라는 재수생활을 기숙학원에서 보냈던 탓에 또 몇 년이라는 시간동안 공부만 할 자신도 없었기에.
뭘 해야하지? 고민했지만, 알 길은 전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깐. 사회에 내동댕이 쳐졌지만 또 꼴에 대기업은 가고 싶었다. 그럼 행정학과니까 공무원이 아닌 다음으로 잘 갔다~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는 뭐지? 하고 보니 공기업이었다. 공기업이니까 회사니까 나도 꿈에 그리던 직장 라이프를 누릴 수 있겠군 하며 공기업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땠냐고? 죡 (지옥) 같았지 뭘. 틀에 박힌 시험 준비를 해야했고, 면접관들에 눈에 띌만한 글빨 좋은 자소서도 써야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없는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무가내로 그냥 썼다. 네이버 검색창에 ‘취업 자소서 피드백’ 등 내 자소설을 빼어난 글로 탈바꿈 시켜줄 컨설팅 업체도 두루두루 봤다. 몇 만원인가 내고선 피드백을 받아본 적도 있지만, 다시 써주는 곳은 없었다. 빨간 줄 직직 그으며 ‘이 항목엔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합니다.’라는 짧은 문구와 함께 되돌아오는 허접한 답변 뿐. 컨설팅 해준다면서 나보고 다시 쓰라는 이 어이없는 사기극은 급히 막을 내려버렸다.
발로 쓴 듯한 자소서로 놀랍게 한국전력 인턴에 합격했다. 뭐지? 나 진짜 못쓰긴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채용팀이 잘못 읽은게 틀림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진짜 지원자들 자소서 날리고 그중에서 뽑기식으로 채용한다는 카더라가 맞았던걸까? 그래도 다행이다. 그 종이들 위에 내가 깔릴 수 있어서.
그 후로 나는 약 2개월간 인턴 생활을 했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첫 문장 출처: 감정은 사라져도 결과를 남는다 /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