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나 어제 옷 질렀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옷장엔 컬러풀한 옷이 가득했고,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 역시 휘황찬란해 보인다. 포즈는 또 어디서 배웠는지 세상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사진 속의 나를 사랑한다. 어쩌면 나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꾸민 나를 좋아하는 불특정 다수의 반응을 좋아했던 것일지도.
그때의 나는 참으로 당당했다. 하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당당함이다. 지난 시절의 나는,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한 나를 사랑했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지나치게 신경썼다. 사진 속의 나는 본연의 내가 아니었음에도, 그 모습을 마치 내 진짜 모습인듯 착각한 채로 그 삶에 취해 살아갔다.
지그재그나 에이블리 같은 채널에서 산 옷은 왠지 질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블유컨셉이나 29CM같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런칭된 판매 채널을 애용했다. 똑같은 스트라이프 티셔츠 임에도, 브랜드 로고가 없다며 질이 다르다며 쓸데없는 허세로 나를 칭칭 감았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음에도, 설사 그 옷이 브랜드의 옷이 아님에도, 눈치채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허접한 속사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철저한 눈속임 작업이었던 것이다.
내로라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특정 브랜드 옷을 광고하고, 리뷰하면 괜시리 우아해보였고, 이뻐보였다. 저 정도는 내가 입어도 되지, 브랜드 옷이니 이정도 가격대는 합리적이라며 합리화했다. 매달 말일이 되면 숨통이 조여가는 통장잔고가 빨간 눈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음에도 모른체했다. 하지만, 과시하는 삶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템포에 맞추기엔 나의 모든것은 마냥 느리기만 했다.
한 달 바짝 벌어 한 달 내리쓰는 인생은 하루 충전해도 방전해버리는 낡은 배터리와 같았다. 하지만 그 배터리는 시간이 흘러 성능이 점점 떨어졌고, 또 그런 삶을 전전했다. 한계가 오고 만 것이다.
첫 문장 출처: 돈 공부를 시작하고 인생의 불안이 사라졌다 / 할미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