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끝내고 머리가 젖은 채로 텔레비전 앞에 멍하니 서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대문짝만한 TV 속에서 안경을 쓴, 그리고 칼 각 잡힌 양복입은 중년 남자가 말하고 있다. 머리엔 무얼 발랐는지 결대로 윤기가 흘렀고 똑부러진 은 테두리 안경 하나 툭 걸쳐썼다. 사람 한 명 없는 그 작디 작은 곳에서 혼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걸까?'
알아듣기 힘들었다. 세상엔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걸까?
아니면 아직 내가 어리기도 한참 어려서 알아듣지 못하는걸까?
국가를 넘나들며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 속, 국적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보인다.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이들도 있었고,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끔찍한 사고도 있었다. 또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희소식이 들리기도 했고, 위태로운 이 침체기에 돈값을 떨어뜨렸다는 얘기도 보인다.
뉴스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사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서나마 들을 수 있는 창구라 생각했다. 그래서 뉴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동동 떠다니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주는 흥미로운 게임 같은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은 알지 못하지만 요즘 뉴스에서 말하는 중년 아저씨들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두꺼운 메이크업으로 무너져가는 다크서클을 최선을 다해 가렸지만, 근심걱정이 많은 얼굴이다.
눈을 돌려 엄마 아빠 얼굴을 보니 똑같다. 낯빛이 어둡다. 단전부터 끌어올린 숨을 거하게 내 쉬는 날이 많아졌고, 혀를 끌끌차며 채널을 돌리는 날도 많아졌다. 삭막하고 숨막히고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음이 틀림없다.
아직 포대기에 폭 감싸진 채로 손발 아등바등 하는 내가 살아갈 세상은 이런 곳일까?
머리로 난 숨구멍으로 큰 숨을 가득 쉰다. 가느다라게 자란 잔머리가 살랑이며 그 사이로 고요한 적막감이 흐른다. 문득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해진 나는, 따땃한 우유 120ml를 물며 잠에 들었다.
첫 문장 출처: 삶이 흐르는 대로 / 해들리 블라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