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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게 남은 것들

가벼웠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



  아이를 낳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는 아이를 낳기 전으로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혼자서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떠 돌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등에 업고 앞가슴에 하나를 안은 채 땅바닥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1년, 5년, 10년의 일이 아닌 평생의 프로젝트인 것을, 물론 알았다.

알기는 알았다. 모르고 한 일은 아니지만 아는 것과 실전은 늘 다른 법이다.

그 갭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들이 있고 그 갭이 엄청 큰 일들이 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의 그 갭은 상상했던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멋도 모르고 뛰어든 전쟁터, 피 땀 눈물이 가득한 곳, 그곳에 그 어떤 사전 교육도 없이 훌쩍 선을 넘어 뛰어들었다. 그리고 28년이 지났다. 기쁨이 있고 슬픔도 기꺼이 힘이 되는 시절을 견뎌왔다.

후회는 없다. 나는 늙어가지만 아이들은 자랐다.  건장하고 아름답다.  아이들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맘이 어떤 것인 지 알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전부인 존재들이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기적과 같다.

훌륭한 육아를 하지는 못했다. 때로는 가슴 저미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나는 경험이 없었고.. 물론 되돌려도 여전히 힘들고 동분서주하며 맨땅에 헤딩하듯 아이들을 키우겠지만.









지구를 덮을 유전자의 그물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유전자의 영역 같은 거고 대물림 같은 거다. 모성의 대물림으로 인해 나의 경험과 무의식에 새겨지고 쌓이는 것, 그것의 시작은 나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한테까지 올라가야 하는 문제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떤 아버지인지도 중요한데 그 아버지는 역시나 그를 키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 유전자의 그물은 펼쳐놓으면 지구 하나를 덮을 만큼이 된다. 물론 나는 재능도 없었지만 나의 dna에는 훌륭한 모성의 유전자도 기대할 수 없었다. 다행한 것은 나의 부모는 평범하지만 측은지심이 있고 가난하지만 온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너무 가난했다. 그때는 다들 가난했다고 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너무 가난해서 어린 나는 늘 홀로 방치됐었다. 내가 좀 더 단단한 아이였다면 이문제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단단하고 심지가 강한 아이는 아니어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아이에게 유년시절의 외로움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나는 평생을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됐다. 우울감은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에너지가 부족하고 늘 힘이 달렸다. 우울감은 전염이 강한 감정이라 아이들에게 이 우울감이 전달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더 우울했다. 우울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대체로는 다 허사였다. 두 아이를 사랑했다. 내게는 목숨과도 같은 아이들이었다. 어찌 됐던 내 앞에 떨어진 , 내가 불러 낸 이 두 생명체를 키워내야 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육아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만난 것은 나의 아이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 무의식에 깊게 내려가 있던 나의 어린애, 울고 있던 8살의 나였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나를 대면할 일이 없었다. 나는 그냥 내 맘대로 살면 됐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살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럴 수 없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들여다보면서 나는 이중적인 감정에 시달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사실인걸 알았지만 아이들은, 바라보고 있는다고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집안을 깨끗이 정리해야 하고 포근하게 늘 안아줘야 하고 책을 읽어줘야 하고 걷고 뛰고 그 모든 것이 나의 영향 아래 있었다. 우울감에 에너지가 딸리는 날에도 있는 힘을 쥐어짜서 일어나야 했다. 내게는 참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자랐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도 자랐다.




 나는 시대에 비하면 결혼이 늦었고 첫 출산도 늦었다. 이 아이들을 언제 키워서 어른을 만들고 나는 쉴 수 있을까 한숨이 나기도 했으나 아이들은 자랐다.

둘째가 중학생이 되던 해, 45살의 나는 일을 시작했다. 2022년 내 나이는 59세이고 두 아이는 모두 성인이고 제 밥벌이를 한다. 동갑인 남편은 내 후년쯤엔 은퇴를 해야 해서 이미 마음 한편이 은퇴를 향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59세의 나이는 아직 일을 할 나이인지 은퇴를 할 나이인지 가늠해 본다. 누구는 한창이라고도 한다. 에이, 한창은 아니지라고 손사래를 쳐보지만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내일이 소중하다. 이일을 사랑한다. 아이들을 다 키워내고 이젠 정말 일만 하고 살 수 있을까 싶은데 나이가 좀 많은 것이 억울하기는 하다.


저 어린 두 아이가 언제 저렇게 컸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래도 내 품에서 자라준 저들이 참으로 내게는 은인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도 자라고 진짜 어른이 됐다.

어쩌면 두 아이가 나를 키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를 먹일 줄 안다. 두 아이가 밥벌이를 하면서 온전히 내 시간이 내 것이 됐다. 그동안 내 것이었지만 날 위해 쓰지 못했던 시간들을 돌려받았다. 그 돌려받은 시간들을 오롯이 날 위해 쓸 수 있게 됐다.

우리 부부는 이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은 둘이 다니며 먹고 마시고 여행도 갔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다니며 동지애를 느꼈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니다. 누구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운다. 하지만 그 별거 아닌 일을 이룬 것이 마치 큰 전쟁을 치러내고 살아남은 병사 같은 기분이 들었다. 퇴근 후에 그리고 아이들이 없는 주말에 우리는 느긋하게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커피도 여러 잔 내려서 먹으면서 서로를 물끄러미 봤다. 날이 좋은 날엔 계획 없이 교외로 나가기도 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전쟁이 몰려와도 연합해서 잘 치러낼 거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그러고도 내게 남은 시간들




 아직도 내게 남은 시간이 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고 있는 일이 많은데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욕심껏 그 일을 다 해보고 싶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보면서 남은 시간들을 쓸 것이다.

영화 "돈 룩 업"에서 처럼 어떤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온다고 하다라도, 그래서 설령 지구가 6개월 후에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그냥 오늘처럼 하루를 살아갈 거다.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노라는 스피노자의 심정으로 남은 나의 시간을 야금야금 느껴가며 내 인생을 살 거라고 다짐한다.

© melissaaskew,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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