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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Oct 07. 2020

남는 건 사진뿐일까?

29. Picture 사진

1. Picture(사진) : 라틴어 pingere(그리다)의 과거분사형 pictus에서 유래


  2019. 05. 15(수) ~ 여행을 끝내면서 (2)


 나의 가장 의미 있는 기념품인 사진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큰 추억이 될 것이다. 유럽에 가보면 알겠지만 도저히 사진 찍는 것을 쉽게 멈출 수 없다. 요즘은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좋기에 대부분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사진 하나 찍고 주머니에 넣어두기 무섭게 다시 꺼내서 잠금장치 풀고 또 찍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너무 사진만 찍지 말고 눈으로 한번 담아봐라’는 조금은 진부한 조언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거의 모든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는 간판이나 표지판 등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사진도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수 있다 (출처 : 직접 촬영)


 사진은 실제로 나중에 추억여행을 하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매개체가 된다. 사진을 한 장씩 넘겨 보다 보면 그 당시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진은 모든 순간을 저장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Capture the moment with picture) 그런데 어느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진을 찍으려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블랙아웃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더 공감이 되는가?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고 자신이 보고 있는 풍경을 마음속 깊이 담고 싶다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필사란 극단적으로 느린 독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문장에서 ‘필사’를 ‘그림’으로, ‘독서’를 ‘사진인화’로 바꾸면 어떨까? “그림은 극단적으로 느린 사진인화의 방법이다” 사진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picture가 ‘그리다’는 뜻을 가진 pingere의 과거분사형 pictus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림을 그리려면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 앉아서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시간과 공간, 날씨와 분위기 등 모든 것이 그림 안에 담기게 된다. 굳이 잘 그릴 필요는 없다. 실제로 캔버스에 드러나는 결과물보다 마음속에 아스라이 담기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줄기차게 쉬지 않고 찍던지 눈으로 담던지 아니면 그림으로 그려서 남기던 지는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결정할 사항이기에 내가 왈가불가할 권리는 없다. 단, 지나치게 사진에만 집착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크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한 장소에서 몇 백장 찍고, 또 조금 옮겨가서 그만큼 찍은 후에 다른 동행들도 똑같이 찍어주고 다 찍어줄 때까지 기다리고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기 때문이다. 여행은 사진 화보 촬영이 아니다. 즐기러 간 것이지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자신은 화보의 모델이 아닐뿐더러 같이 간 동행은 사진작가가 아니다. 자신 역시도 그들의 인생샷을 찍어 줄 사진작가가 아니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사진에 담기는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연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도시 간 이동할 때에는 동행들과 같이 움직였어도 도시를 구경할 때에는 혼자 움직인 적이 많았다.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또 찍어준 호의를 생각해서 나도 찍어주는 것을 반복하는 시간이 조금은 아깝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인생샷 하나 건지기 위해서 한 두 번 정도 위의 과정을 거치긴 했었다) 사진 찍는 것, 물론 중요하다. 특히 내가 잘 나온 사진 남기는 것은 특히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느 정도껏만 찍으면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에 공감한다. 사진으로도, 눈으로도 모두 담을 수 있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사진 찍을 때마다 포즈가 매번 비슷하다. 나름 자연스럽고 엣지있는 자세를 연구해봤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결국 손가락 두 개를 수줍게 들며 V자를 그린다. 그런데 이 포즈를 할 때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영국을 포함하여 호주나 뉴질랜드 등 한 때 영국령이었던 국가들에선 손등이 보이게 V 표시를 할 경우 가운데 손가락 욕(Fxxx you) 두 번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전쟁을 하던 당시 영국이 장궁을 쓰는 공병들을 앞세워 프랑스 기사들에 대적했는데,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검지와 중지를 피며 ‘이 두 손가락으로도 이길 수 있다’고 조롱했다고 한다. 여기에 화가 난 프랑스인들은 영국군들을 포로로 잡으면 이 두 손가락을 잘라버린 뒤 다시 보내는 무서운 형벌을 내렸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른 영국군들이 끝까지 손등을 보인 채 두 손가락으로 상대방을 자극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이 포즈가 모욕적인 의미가 되는 것이다. V 포즈를 취할 때 유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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