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환 Oct 09. 2020

터미널은 끝나는 곳이 아니다

30. Terminal 터미널

1. Terminal (터미널) : 라틴어 terminus(끝, 가장자리)에서 유래. "끝나는 지점"

cf. Terminale : 프랑스 고등학교 3학년
2. January (1월) : 로마신화 문의 신 Janus(야누스)에서 유래. "한 해를 닫고 여는 시점인 1월"


  2019. 05. 15(수) ~ 여행을 끝내면서 (3)


 ‘한 달 순식간에 지나가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처음 도착지였던 런던을 경유한 뒤 다시 인천으로 오는 긴 비행을 마치고 마침내 인천공항 터미널(Terminal)에 도착했다. 마침내 한 달간의 여행이 끝난 것이다. 비행기 안에선 갑갑하고 몸도 뒤틀렸기에 빨리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터미널로 나오니 뭔가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같이 여행했던 동행들과 간단하게 한식으로 속을 달랜 뒤 작별 인사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Terminal이라는 단어는 ‘끝,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terminus(테르미누스)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일종의 여정이 ‘끝나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테르미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경계를 다스리는 신’이기도 하다) 라틴어 terminus에서 유래한 단어 중에는 용광로에 빠지면서 엄지를 치켜올리는 엔딩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주인공인 ‘The Terminator(터미네이터)’도 있다. 이는 ‘끝내다’라는 의미의 영어단어 terminate에 ‘~하는 사람’을 뜻하는 어미 ‘-or’을 붙인 형태로, 터미네이터는 ‘끝내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터미널은 그 어원과는 달리 단순히 끝나는 지점이 아니다. 공항이나 항만의 터미널에 가면 알 수 있듯이 그곳에는 departure와 arrival, 즉 출발과 도착이 다 있다. 누군가에게는 출발점 혹은 시작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착점 또는 끝이 되는 이중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터미널은 여행의 시작일까 아니면 끝일까 (출처 : 직접 촬영)


 사실 나의 유럽여행 시작에도 터미널이 있었다. 런던으로 가는 직항을 타기 위해서는 인천공항에 갔어야 했었는데, 아침 비행기라 당일 새벽에 부산에서 출발하면 이동시간도 부담되고 피곤할 것 같았다. (새벽 3시에 부산에서 출발해서 4시간 반 버스 타고 올라간 뒤 바로 12시간 동안 비행기 타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전날 오후에 인천공항에 올라가서 캡슐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탑승수속 밟고 간단한 출국심사를 거쳤다. 이 모든 것들은 공항 터미널에서 진행되었는데,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나름의 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비행기 탑승 후 1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 끝난 뒤 도착한 곳도 (런던 히트로 공항의) 터미널이었는데, 그곳은 다른 의미에서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장소이기도 했다.


 공항 터미널은 단순히 출발과 도착, 시작과 끝의 이중성뿐만 아니라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만남과 헤어짐도 어떤 관계의 시작과 끝으로 볼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tv에서 곧잘 방영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과도 같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보면 다음의 대사가 나온다. “Whenever I get gloomy with the states of the world, I think about the arrivals gate at the Heathrow airport (세상 돌아가는 것에 울적해질 때면, 난 히트로 공항의 입국장을 떠올린다)” 공항 터미널의 출국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장소이지만, 입국장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헤어짐 끝에 다시 만나는 애틋한 장소인 것이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프랑스에선 고등학교 3학년을 terminale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은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정규과정이 모두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대학 아니 사회로 나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것만 봐도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님 울타리에서 보호받던 학창 시절은 끝이 나고 일정한 자유는 얻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하는 성인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없는데 로마 신화에는 Janus(야누스)라는 문의 수호신이 있다. 그는 특이하게도 머리의 앞쪽과 뒤쪽에 모두 얼굴이 있는데, 아무래도 '문은 앞뒤의 개념이 크게 없기 때문에 문의 수호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누스는 한 때 강력한 로마의 신이었는데, 로마 사람들은 그가 앞뒤의 두 얼굴로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야누스가 한 해를 닫고 여는 1월을 관장했던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1월을 뜻하는 January도 Janus에서 유래한 것이다.  


 터미널은 아무래도 야누스의 속성이 있는 듯하다. 머리가 앞뒤에 모두 달려있는 야누스와 같이 터미널도 출발과 도착, 만남과 헤어짐 등이 한 장소에 있는 것이다. 인천공항 터미널로 돌아왔다고 ‘행복한 시간이 다 끝났다’고 낙심하지는 말자. 다시 일상생활이 시작된다고 할지라도 언젠가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주중의 힘든 시간이 있어야 주말의 달콤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듯이, 일상생활에서의 바쁨이 있어야 여행에서의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배가 될 것이다. 다시 공항 터미널로 향할 생각을 하며 일상의 바쁨을 누리도록 하자.

그러다 보면 조만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또다시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터미널로 향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전 29화 남는 건 사진뿐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