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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Sep 23. 2020

쉿! 비밀이야...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면 안 된다

8. Secret 비밀

 * Secret(비밀) : 라틴어 secrectus(때어내다, 빼내진)에서 유래


 "이건 진짜 니한테만 이야기하는 거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라이!"


 또 시작되었네요. 그놈의 비밀 타령. 흥겨운 타령이라면 곡조에 맞춰 춤사위라도 선보이겠지만, 그 난해한 곡조에는 어떤 반응도 쉽게 할 수 없네요. 그래서 저런 문구를 서두로 해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향연이 때론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이후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의 무게로 인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더욱 그렇지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비밀을 뜻하는 영어단어 secret의 어원은 '때어내다, 빼내진'을 의미하는 라틴어 secrectus인데, 즉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숨기고 싶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 중 하나를 툭 때어낸 뒤 조심스럽게 빼내서 상대방에게 전달함'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그런 비밀스러운 정보를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엇인가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CONFIDENTIAL'이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있는 기밀문서를 열람하는 CIA 요원이 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라서 '비밀엄수' 서약을 해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해질 때가 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산에 가서 땅 파 놓고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던 이발사의 심정이 이랬을까요? 하지만 저를 믿어준 그 사람을 배신할 수 없기에 입을 꼬매버려야 합니다. 게다가 제 입에 '1톤'이라는 무게추까지 달아주며 새로운 정체성을 씌워주면 꼼짝없이 저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런 과정을 거쳐 비밀이 지켜지기만 하면 크게 문제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새어 나간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기 위한 마피아 게임이 시작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용의 선상에 오르는 사람은 당연히 저 자신이겠지요. "니가 범인이재? 아무리 생각해도 니 밖에 없는데... 와 그랬노" 그러면 모든 용의자들이 의례 그러하듯 발뺌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내 의심하는 거가? 어이없네... 내 진짜 아니다" 이 말은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슬슬 흥미로우면서도 머리 아픈 심리전이 시작됩니다.


  제가 만약 진범이라면 일단 찔려서 되려 흥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비밀은 지켜주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공범을 찾기 위해 머릿속을 복잡하게 굴릴 것입니다. '난 A한테 밖에 이야기 안 했는데... 금마가 다 퍼뜨린 건가?' 이러한 의혹이 확신이 되면 저는 A한테 다시 추궁을 하게 되겠지요. "니가 그 이야기 퍼뜨렸제? 내가 니만 알고 있으라고 했다이가" 이런 꼬리잡기 게임은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고, 그 과정에 얽힌 모든 인간관계는 다 엉망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 반대 경우라면 상황은 조금 괜찮을까요?

비밀 누출의 꼬리잡기 (출처 : Unsplash)


 그 친구도 저한테만 이야기했고 저도 그 비밀을 엄수했음에도 얌체 같은 비밀은 구멍을 통해 도망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몰래 엿들은 사람이 소문을 퍼뜨렸다면? 엿듣는 행위를 영어로는 eavesdrop이라고 하는데, 언어적으로 풀이하자면 '처마(eaves) 밑 낙숫물 떨어지는(drop) 곳에서 몰래 듣다'는 의미가 됩니다. 무엇인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낙숫물처럼 찔끔찔끔 떨어져 흘러내리는데, 목마른 하이에나들이 이를 그냥 지나쳐 갈까요? 이 경우엔 저도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의심받으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야기를 퍼뜨리려는 욕망을 억누르며 참았는데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며 온갖 비난을 받게 생겼으니 안 그럴까요. 결국 제가 진범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밀이 새어나가는 순간 그 친구와의 관계는 다시 좋았던 상태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지요.


 다른 사람이 알면 죽을 만큼 싫은 비밀이라면 그냥 혼자서 삭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만약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가 정신병 걸릴 것같이 힘들면 가장 신뢰 가는 친구 또는 동료에게 털어놓아도 됩니다.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건데'라는 안전장치를 달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단, 이 비밀이 언젠가는 퍼져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분명히 인지해야 하며, 그때 일어날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본인이 힘들어서 털어놓았고 상대방은 이를 들어준 것밖에 없는데,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조금 무책임한 것 아닐까요?


- 2020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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